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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인생을 사는 지혜 시37:1-7, 약4:13-17
인생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도 있으며, 생명 길과 사망 길도 있고, 빛의 길과 어두움의 길도 있으며, 성공의 길이 있는가 하면 실패의 길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가야합니다. 갓 낳아서는 등으로 가고, 조금 후에는 배로,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가다, 어느 순간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늙으면 지팡이를 의지해서 걷다가 그 걸음이 멈추는 때가 오고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길을 걸어가는 동안 기뿐 일, 좋은 일, 보람 된 일도 있고, 때로 답답한 문제, 풀기 어려운 문제, 고통을 안겨주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따릅니다. 경제문제가 따르고, 정치문제, 교육문제, 전쟁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질고의 문제, 죽음의 문제 등이 쉴 사이 없이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의 원하는 대로 풀리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러나 문제들이 원치 않은 때에 원치 않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몸과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생을 살아 갈 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일까요?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인생을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을 사는 지혜는,
1.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길을 걸어 갈 때 어려운 것은 그 길이 하나 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 길 중에 선택해서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셔서 선택하여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꽃길도 있지만, 눈, 비가 오는 굳은 날도 있는데 비가 오는 날도 마른 땅을 선택해 딛고 가듯이 우리가 가는 길을 골라서 가야합니다. 바른 선택을 하여 옳은 인생길을 선택하여 간 자는 주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고, 본인에게도 복이 되고, 후대에도 높은 추앙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본받아 그 길을 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살면서 항상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신약 본문 15절에 허탄한 자랑을 경계 하며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주의 뜻을 알기 위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가운데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시편 1편에 나오는 말씀대로 복 있는 자는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독하고 그 말씀을 묵상 하며, 중요한 말씀에 밑줄을 긋고 암송 하여 마음에 새겨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아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주님의 뜻을 바로 알 수 있고, 그 말씀에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바른 믿음의 길을 가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선과 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리의 길, 의의 길, 생명 길, 선한 길, 빛의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굽은 길, 악한 길, 죄의 길, 타락의 길, 어두움의 길, 멸망의 길로 미혹하여 가게 합니다. 그래서 이 미혹에 덧에 걸린 사람들은 어두움의 길을 걷다가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미혹에 빠져 죄악 중에 사는 자는 자기가 바른 길을 간다고 착각하며 자꾸만 죄 속으로만 빠져 들어갑니다. 다른 사람을 미혹의 길로 빠지게 만드는데 열심을 냅니다. 마치 영적 치매에 걸린 사람과 같아서 자기는 즐거운데 건강한 사람이 볼 때 안타깝고 괴롭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기 때문에 감동, 감화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도록 이끄시지만, 사단에게는 인격이 없습니다. 사단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바른 믿음의 길에서 떠나 미혹의 길로 가게 만들어 그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신앙인 가운데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듭나 바른 신앙위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미혹이 되는 것입니다. 이단이 가르치는 내용을 보면 겉으로는 아름답게 꾸며 언 듯 보기에 매우 매혹적이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신세계처럼 보이고, 매우 달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서운 속임 수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만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진리의 말씀은 맹물처럼 느껴지고,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가르치고, 사랑과 섬김의 길을 가라고 가르쳐 별로 매력이 없는데, 이에 비해 이들의 가르침은 너무 교묘하게 가미해 달콤하고 짜릿한 자극을 느끼게 합니다. 자기 속에 있는 욕망을 충족시킬 만큼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게 꾸며 놓았으니 너무 좋게 느껴지고, 그 가운데 악한 영이 역사하기 때문에 한 번 빠지게 되면 그 어두움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한 성도는 그 가르침 속에 얼마나 속임 수가 많으며, 그들의 속성이 얼마나 악하고, 교묘하고, 무자비하며, 그 결국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기에 처음부터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단에 빠진 자들을 권고 하여 돌이키지 않으면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성도는 그들을 대항해서 싸울 영적 무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자가 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진리에서 떠나 자기를 위해 많은 선생을 두고 미혹의 길로 가기 때문에 미혹하는 자들이 나쁘지만 미혹에 빠지는 자들도 나빠 똑같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때가 악할수록 더욱 근신하는 믿음으로 무장하여 빛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단 마귀를 대적하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매사에 주님을 의뢰하고 겸손히 도우심을 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시37:5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했습니다. 여기 ‘맡기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옮기다’, ‘굴리다’, ‘신뢰하다’ 등의 의미로 삶의 모든 여정뿐만 아니라 그 여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 즉 계획이나 행동, 그리고 그 계획에 따르는 결과들을 말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주님은 나 보다 더 복된 길이 무엇인지 알기에 모든 것을 위임하고 겸손히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달라는 겁니다.
신약 본문 약4:16에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니라.”했는데, 여기의 ‘허탄한 자랑’의 원어의 뜻은 ‘오만한 태도에서 나오는 자랑’을 의미합니다. 잠27:1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했습니다. 인생은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한 일을 만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께 앞날을 맡기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의 오만함, 지혜와 능력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요, 허풍에 불과합니다. 확실하지도 않은 내일 일을 자랑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사랑뿐입니다.
나폴레옹이 패망하게 된 워털루전투에 관해 나폴레옹 시대의 위대한 시인인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격전이 있던 날 아침, 작달막한 키의 전제 군주 나폴레옹은 싸움이 벌어질 벌판을 바라보며 그의 사령관에게 그 날의 작전에 대해 우리는 여기에 보병을 배치하고, 저쪽에는 기병을, 그리고 이쪽에는 포병을 배치할 것이오. 날이 저물 때쯤에는 영국은 프랑스에게 굴복돼 있을 것이며 웰링톤 장군은 나폴레옹의 포로가 될 것이요.
이 말을 듣던 사령관 네이(Ney)장군이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각하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작달막한 그의 몸을 쭉 펴서 키를 늘이며 자신만만하게 말하기를, 장군은 나 나폴레옹이 친히 계획을 세웠다는 것과 나폴레옹이 성패를 주장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라오.
위고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부터 이미 워털루 전투는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나님께서 비와 우박을 퍼부었으므로 나폴레옹의 군대는 계획한 작전을 하나도 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전투가 벌어진 그날 밤에 나폴레옹은 영국의 웰링톤 장군의 포로가 되었고 프랑스는 영국에 굴복하고 말았다. 우리는 나폴레옹처럼 모든 것을 우리의 손아귀에 쥐고 있는 듯이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그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우리는 날마다 경험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완벽한 계획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전혀 쓸모없다는 것을 나폴레옹은 그 당시에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으면 하나님의 처분만을 온전히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매사에 주님을 의뢰하고 겸손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기회 있는 대로 선을 행하며 죽음을 잘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시편 본문 시373에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속히 없어질 악인들을 인하여 불평하지 말고 묵묵히 하나님을 의뢰하며 자기가 해야 할 본분을 성실히 행하는 자가 마침내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이달리야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사람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고, 매사에 성실하고,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며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보시고 사자를 보내시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 되었다.’고 말하며 베드로를 그의 가정에 보내어 은혜 주실 것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본문 약4:14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안개처럼 짧은 순간에 사라지며 죽음이 찾아옵니다. 모든 인생에게는 죽는다는 것과 심판이 있다는 사실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을 잘 준비하여 맞이하는 것입니다. 돈이, 성공이, 권력이나 명예가 인생의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 하다가 많은 재산을 모으고, 성공하고, 권력이나 명예를 얻어도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이라는 책은 모리 슈워츠(M. Schwartz) 교수와 제자 미치 앨봄(M. Albom)이 나누었던 대화입니다. 미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돈과 일에 매달려 시간을 보냈습니다. 30대가 되어 무심결에 루게릭이란 불치병에 걸린 모리 교수의 인터뷰 장면을 방송에서 목격합니다. 그 순간 대학 졸업식 때 모리 교수에게 자주 찾아뵙겠다고 했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미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모리 교수를 매주 화요일마다 찾아갑니다. 그때 모리 교수는 삶과 죽음에 관한 강의를 통해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를 미치에게 들려줍니다. ‘모두 죽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모리 교수는 불치병으로 인한 죽음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남은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는데, 불가피한 죽음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결정됩니다. 우리 역시 죽음에서 멀지 않았음을 알고 야고보서 본문의 말씀대로 허탄한 자랑을 버리고 믿음 안에서 기회 있는 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이 지혜롭게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 약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했습니다. 우리 모두 기회 있는 대로 선을 행하며 죽음을 잘 준비하며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인생을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인생을 사는 지혜는,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입니다.
◆.매사에 주님을 의뢰하고 겸손히 도우심을 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 선을 행하며 죽음을 잘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멘.
<2014. 04. 24. 호현낙선>
첫댓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