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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선지자란?새언약의 일꾼(이겨레)
본문: [고후3:6]
설교: 나균용 목사님
설교 요약
세례 요한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의 등장으로 인해 메시아의 도래가 임박했음을 선포했습니다. 이로 인해 신약 시대가 시작되었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으며, 그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진리가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이며, 그의 희생을 통해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의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진리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구원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곧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신약 시대의 은혜와 진리를 믿고 따르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신약의 일꾼들은 긍휼을 입어 낙심하지 않으며, 숨은 부끄러운 일들을 회개하고, 속임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으며, 오직 진리를 나타내어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진리를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약의 일꾼은 첫째로 긍휼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긍휼하심을 입은 자는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신약의 일꾼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냐?
둘째는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양심에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음으로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속임으로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다섯째로 진리를 나타내며 양심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진리를 사모하며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해 스스로 추천해야 합니다. 또한 마지막 시대에 진리를 따르는 자가 되기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1장 31절과 에스겔 38장에서도 새 언약에 대해 언급되고 있으며, 신약성경에서는 히브리서 8장 8~10절에서 새 언약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은 두 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기둥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역사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인류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기둥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여 마귀와 싸워 이기게 하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지혜롭게 전파할 수 있게 만듭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구원의 새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두 기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기둥을 깊이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도의 자격에 관해서도 언급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후, 열한 명의 제자만 남았기 때문에 사도행전 1장에서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기 전에 그의 자리를 맛디아라는 사람으로 채웠습니다. 새 사도의 자격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까지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그와 함께 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 제자의 자격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도행전 1장 8절과 바울의 전도에 나타나며, 이 두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역할로 구성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예배는 성령에 의한 예배와 진리로 하는 예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1장 8절에 나오는 "십자가의 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구원에는 성령의 역할과 십자가의 도가 필요하며, 이것은 마태복음 6장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설명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절부터 나오는 말씀은 새 언약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받아들이고, 성령 충만함을 통해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얻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리며, 믿음에 서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가 더욱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 산 위와 산 아래
본문: [막9:20-29]
설교: 나균용 목사님
설교 요약
예수님은 평소 산 아래에 계실 때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변화산 위에서는 완전히 변형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세상에서 그 누구도 희게 할 수 없는 매우 흰 옷으로 변했고, 예수님의 몸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였는데, 그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면 변화산 위에 어떤 신비가 나타났느냐?
첫째로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보다 뛰어난 존재로 여겨졌지만, 변화산에서 그분이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님이며, 그분은 신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이 비밀은 변화산에서 드러났습니다.
둘째로,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하였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며,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이 만남은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셋째로 십자가와 부활을 예고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복음의 핵심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 진리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곧 진리입니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의 신성을 밝히 드러내며, 그분이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는 분임을 보여주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복음의 핵심 진리를 전합니다.
반대로 산 아래에는 이 세 가지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풀리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도 전혀 풀리지가 않습니다. 그냥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경이 없습니다. 율법과 선지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들이 싸구려 복음을 가르칩니다. 율법 안 지켜도 된다. 예수만 믿으면 된다. 듣기는 좋은데 그거는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우리가 이 산 위에 올라가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으면 교회는 다니지만 성경이 없는 신자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셋째로 이 땅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진리잖아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는구나, 그러니까 이 세상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하는 이 표적을 갖지 못하면 인간에게는 진리가 없는 거예요. 표적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 살아계시다는 걸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신다는 걸 모릅니다. 하나님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계신다는 거를 모르는 겁니다. 이 다음 세상에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전부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가는 방향과 반대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멸망이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읽으며, 기도와 함께 이 말씀을 깨닫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면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고 기도하지 않으면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식과 기도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산 위의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해야 합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체험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23.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본문: [사 40:9]
설교: 나균용 목사님
설교 요약
선지자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 소식은 천국, 구원, 그리고 죄 많은 세상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주며, 신약에서는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로,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름다우신 분이며, 그분을 전하는 것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기쁨과 감사로 가득하며,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자신이 아름답고 행복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소식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사가 전하는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과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인 임마누엘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우리가 함께 있는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하나님과 함께하여 주님의 동행을 원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며, 이런 사람이 되어야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대상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시온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로는 예루살렘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하며, 셋째로는 유다의 성읍들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대상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아름다운 소식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세 가지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는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지식의 높은 산에 올라가서 열심히 공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은 지식, 인격, 그리고 영적 성장을 통한 신령한 삶의 높은 수준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둘째,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는 소리를 높여서 외쳐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 도덕적으로 강건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령의 계시를 받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셋째, 아름다운 소식을 유다의 성읍들에 전하는 자는 너희 하나님을 보여주라고 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며,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 성령 충만함을 받아 살아가야 하며, 신령한 일꾼으로서 충성하고 신실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24. 나귀의 비밀/본문: [마21:1-7]
설교: 나균용 목사님
설교 요약
본문에서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갔던 이유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귀를 타고 가는 것은 성경에 여러 이야기로 나타나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민수기 22장에 나오는 발람의 이야기입니다. 발람은 모압왕 발락의 초청을 받아 왕을 만나러 가던 중에 나귀를 타고 갔습니다. 그러나 나귀가 갑자기 길에서 서서 발람의 발을 다치게 하자 발람이 나귀를 때리자 나귀가 말을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명령을 분순히 따르는 나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발람을 책망한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사무엘을 위해 나귀가 사용된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암나귀를 찾기 위해 사무엘을 찾았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인도와 계획을 나타내며, 나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스가랴서 9장 9절에서 메시아가 겸손하게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상징으로,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신약성경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개와 돼지는 부정한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이른바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고 있는데, 이 양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리는 것은 바깥 세상에서 예수님을 거부하고 그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무리를 향해 말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뱀들과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비유하며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들은 모두 우리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나귀는 성경에서 여러 의미로 나타납니다.
첫째로, 나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신의 소리와 귀 기울이는데 신경을 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가련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둘째로, 나귀는 고집이 강한 자를 나타내며,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인간들을 상징합니다.
셋째로, 나귀는 음란한 욕망을 나타내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음란함을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넷째로, 나귀는 여러 가지 환경에 잘 적응하고 견디는 강인한 체력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겸손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으며, 이는 우리가 자신의 영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집중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모습은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어린 양으로 자신을 대속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깊이 깨닫고 우리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산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어린 양으로 대속되기 위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의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주님 안에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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