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벨 소리를 컬러링이라고 합니다만 이게 참으로 다양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소울음 소리가 나요. 음메에, 나는 소다? 니가 소다?
어느 사장님은 직원회의를 하는 데, 그만 휴대폰을 끄지 못했대요. 60넘으신 분인데, 전화가 왔어요. 컬러링이 아무 묘해요. 젊은 아가씨 음성인데, ‘자기야 전화 받어, 빨리 좀 받어, 애인이야,’ 직원들이 와 하고 웃었대요. 바람나셨나?
더 황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분이 초상집에 문상을 갔어요. 상주들에게 인사를 하는 데, 전화가 왔어요. 컬러링이 정말 경우에 함당하지 않아요.“와이리 좋노, 와이리 좋노.”부모님 돌아가신 상가집에서 상주들에게 얼마나 슬프십니까? 하는 데, 와 이리 좋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엄청난 실례를 범하고 만 거지요.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 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정말입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아요. 말도 먹고 살아요. 우리는 함부로 말하지만 그 말을 먹어요. 그 말이 선하면 선을 먹어요. 그 말이 독이라면 독을 먹는 거지요.
오늘 말씀처럼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각만 해도 반갑지요. 생각만해도 힘이 나겠지요.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경우에 합당하지 않는 말 중에 하나가 누군가를 공격하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지적질 하는 일입니다.
“엄마는 반성 중”이란 책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남매를 두셨는 데, 모두가 전교 1,2등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들이 자퇴를 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딸도 자퇴 선언을 했습니다.
엄마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결론은 자녀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못 마땅한 일에 대해서 사정없이 공격하고 지적하는 엄마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걸 반성하고 고쳐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그걸 공격하고 지적질 한다면, 마음을 닫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지요.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책의 바로 밑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맞장구 쳐 주면서부터,
맞장구만 쳐 줬는 데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의 특징은 ‘공격하지 말고 맞장구 쳐주는 일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지요.
이런 말로 맞장구 쳐 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잘했어요. 좋아요.”
조금만 잘하는 것을 보더라도 잘했어요. 좋았어요 표현해 줄 수 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가 좀 실수 했어요.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조건. “괜찮아. 괜찮아.”
내가 좀 부족했을 때는 ‘미안해, 죄송해요.’라고 할 수 있다면, 마음이 녹지 않을까요? 말에도 온도가 있다고 하는데요.
물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는 맞장구 쳐 줄 수 있는 필수 단어지요.
만약 누가 나에게 맞장구 쳐 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에게 맞장구 쳐 주면 되지요.
내가 나에게 ‘잘했어, 괜찮아. 미안해, 고맙습니다.’하면 되지요.
주님은 오늘도 탕자를 맞이해 주듯이 우리를 맞이해 주십니다. 괜찮아 하시면서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날마다 우리 입 속에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을 담고 살아감으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