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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헌] 클레멘트의 저서들과 그 특징
2018-05-04 강도헌
클레멘트의 생애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심지어 그가 성직자 혹은 사제로 임직을 받지 않은 것으로도 많은 학자들은 추론하기도 합니다. 그 특징으로는 그의 저서들이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관한 토론을 무시했고, 대신에 개별 성도들의 영성과 사색적인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가 성직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매우 비약적인 추론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클레멘트가 순교자 유스티누스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여러 면에서 클레멘트의 그리스도교 철학은 유스티누스의 연장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클레멘트가 쓴 다섯 권의 책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이단들에 대한 훈계』(Exhortation to the Heathen), 『교사』(The Instructor), 『잡록』(Stromata), 『구원 받아야 할 부자는 누구인가?』(Who is the rich man that shall be saved?), 『테오도투스로부터의 발췌』(Excerpts from Theodotus) 등입니다. 대부분이 그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교리문답 학교 교장으로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되기 원하는 젊은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저술된 것들입니다.
『이단들에 대한 훈계』는 이교도들에 대한 논쟁으로서 특별히 클레멘트가 미신적이며 우상숭배적인 신앙과 예배로 간주하였던 이단들을 논박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그리스 철학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 철학이 그리스도교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철학의 진리들은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고 히브리 사람들의 문화와 종교들로부터 그리스인들이 빌려온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페다고게』(Paedagogus)로 알려진 『교사』는 하나님의 신적인 말씀, 즉 로고스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책에서 클레멘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주적인 말씀하과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구원에서 우주적인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의 주요 역할은 부자연스러운 열정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또 순종, 묵상, 합리적인 행동과 같은 순수한 영적인 삶을 살 것인가를 훈계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인의 순종적인 삶은 이성에 따라 이성에 상응하여 사는 삶이라고 강조합니다. 즉, 말씀에 의하여 교육된 모든 것들의 체계,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르는 확실한 에너지로서 이성은 합리적인 행동체계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나중에 살펴 보겠지만 클레멘트가 영지주의자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고, 또한 그가 영지주의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단편들』(Miscellanies)로 알려진 『잡록』은 포괄적인 그리스도교 철학을 구성하려는 클레멘트의 기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비체계적이고 절충적인 철학을 발견하게 되는데, 클레멘트는 수많은 근원들로부터 다양한 사상들을 이끌어내어 혼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클레멘트의 태도는 “우리 책은 철학이나 다른 가르침에서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하는 일에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잡록) 라는 문구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171912
목회/신학
초대교회 변증가들(3) - 클레멘트
국제신대 라은성 교수의 재미있게 배우는 교회사학교
▲클레멘트의 모습
지금은 1~2세기의 교부들을 지나 2~3세의 교부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 세기의 교부들을 가리켜 우리는 ‘변증가들’이라는 칭호를 특별히 붙입니다. 그 이유는 핍박을 받는 분들을 위한 변증, 핍박하는 자들에게 기독교를 변증, 그리고 이단들에 반대하는 변증 등을 행하면서 작품을 남기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동방교회, 즉 안디옥과 서머나에서 태어나신 분들, 저스틴과 이레니우스를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무대를 북아프리카로 옮겨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두 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두 분들은 클레멘트와 그의 제자 오리겐입니다. ‘클레멘트’라고 하니까 아마 복습하신 분들은 “로마의 클레멘트와 혼동할 수 있겠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 교회사를 배울 때 혼동되었습니다. 아마도 혼동하실 분이 있을까 봐서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교회사 책들은 1세기의 교부인 클레멘트를 ‘로마의 클레멘트’라 부르고 2세기의 클레멘트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라 부릅니다.”
1.1.1.1. 생애
“클레멘트를 생각하면, ‘윤리학’이 시작되었다고 기억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분의 본명은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입니다. 2세기 중엽에, 즉 약 150년 경에 태어났고 211년과 216년 사이에 세상을 떠난 분이십니다. 태어난 곳은 북아프리카이기보다는 아마도 아테네라고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그의 탁월한 그리스어 실력 때문입니다. 그리스 철학자들과 시인들에 대한 수많은 인용들은 그가 그리스인임을 증명하는 듯합니다.”
▲300B.C에 세워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클레멘트는 그리스, 이태리,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집트로 여행하여 이곳에 정착했다고 믿어집니다. 그러면서 저스틴처럼 하나님에 대한 문제로 고민했으며 마침내 기독교인들의 교리와 숭고성, 도덕성을 통해 개종되었다고 믿어집니다. 여행을 하면서 기독교 교사들을 만나기를 염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약 18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고 약 190년 경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 학교장 판타에누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로가 되었습니다. 판타에누스의 이름의 뜻은 ‘시실리아의 벌’이라는 뜻입니다. 클레멘트는 그를 이어 그 학교의 학교장이 되었습니다.”
▲톨레미가 그린 알렉산드리아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공관복음의 저자 마가에 의해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역사 기록상으로 교리문답 학교가 언제 설립됐는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 진리와 신앙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알기를 원했던 교리문답자들을 위한 학교였음에는 분명합니다. 약 180년경에 설립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판타에누스가 최초의 교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오늘 우리가 배우게 되는 클레멘트이죠.”
“그런데 로마제국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의 핍박으로 인해 교리문답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클레멘트는 202년 또는 203년경 캅파도키아로 가서 알렉산더라 불리는 감독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215년 또는 216년경 알렉산더는 예루살렘 감독이 되었습니다.”
1.1.1.2. 저서
“그리스인, 철학자, 여행자라는 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클레멘트는 열린 마음과 귀족적 마음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친절을 늘 베풀었습니다. 박식한 그는 비범했으며 어느 누구도 그만큼 이교도 저자들과 기독교 저자들의 글을 인용한 사람이 당대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명한 그의 제자 오리겐도 그에게 미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폭넓은 지식을 갖기 위해 많은 독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렇게 박식한 그였지만 그는 자신이 다루는 주제를 논리적으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문법적 오류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의 신학적 입장은 정통신앙과 조금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그의 주요한 목적은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짓는 것이고, 철학으로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기독교 계시를 과학적 신학으로 바꾸는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정통에서 벗어난 갖가지 이론들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가 쓴 작품들은 세 가지입니다. 『권면』, 『교사』, 그리고 『잡록』 등입니다. 『권면』은 이교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오류들을 저버리라는 권면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개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모두 12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2세기 다른 작품들과 유사합니다. 이교도들이 믿는 신앙들의 비진리성을 나타내고 그것들이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 무의미할 뿐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완전한 진리는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두 번째 작품인 『교사』는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기독교적 삶을 살도록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 작품은 먼저 어리석은 영지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기독교인들이 완전에 이를 수 없다고 하며 보다 나은 지식, 즉 영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클레멘트는 세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고 주장하고, 그 결과 완전에 이를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영지는 단순히 신앙의 발전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분에서 그는 실천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다양한 삶의 현장들을 언급하면서 덕스러운 삶에 대한 지침을 줍니다.”
“그가 도덕가임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작품은 세 번째 작품인 『잡록』에서입니다. 완전한 기독교인을 참된 영지주의자로 묘사하면서 다양한 기독교 교리들을 교육적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모두 8가지 수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데오도레스에게 보낸 클레멘트의 서신의 한 부분
“그 외 그가 쓴 작품으로는 『개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신ㆍ구약성경에서 발췌된 구절들을 주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바울서신, 요한서신, 그리고 사도행전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주석적 방법은 주로 알레고리칼, 즉 풍유적입니다. 그 외에도 『구원받는 부자는 누구인가?』는 마가복음 10:17-31에 대한 설교입니다. 그리고 데오도레스에게 보낸 서신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의 올바른 삶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학식이 높은 알렉산드리아인들을 전도하기 위한 마음의 소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해롤드 브라운(Harold Brown)이라는 학자는 클레멘트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습니다
“클레멘트가 가진 두드러진 결점들은 신약성경의 전 정경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기독교 신조의 초기 형태인 믿음의 도에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비밀적 전통을 싫어했던 이레니우스와는 달리, 클레멘트는 비밀적 전통을 언급했으며 영지주의에 대한 그의 호감은 영지주의적 단어들을 빌려와 사용한다는 수준을 훨씬 넘는 것처럼 보인다. 주로 그는 윤리학 교사로 알려져 있다. 클레멘트 덕분에 기독교 교리신학은 홀로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고 잘 발전된 윤리학의 조직과 함께 동반자 관계에서 들어갔다. 클레멘트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도덕신학은 교리신학과 함께 나란히 왔으며, 실제로 기독교 신학이 꽃필 때마다 윤리학 뿐만 아니라 교리에도 관심을 가졌다.”
라은성 교수(국제신대원 역사신학, eun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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