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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회 주일말씀 요약
- 5월 1일. 이현래 목사
이번에도 아주 응급한 상황에서 영대병원에 갔는데 어떤 형제가 병원장에게 연락을 해서 급히 외과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중환자실에 갔다 왔고 죽었다가 살아난 것 같다.
나는 우리교회가 천하에 없는 교회라고 자랑하였다. 이런 교회가 없다. 편안하고 자유롭고 안정되고 서로 사랑하는 이런 교회가 세상 다른 곳에는 없다. 그래서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로지 이 한 길밖에 없었다.
여러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내게는 오직 한길밖에 없다. 아브라함을 소개 받았을 때 심취된 이유가 나와 너무 똑같아서 그랬다.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었는데도 약속의 자녀를 얻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그래서 주어진 아들이 이삭이다. 어쩜 나와 똑같아서 좋아하게 되었다. 한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노화도에서 출발한 것과 똑같다. 지금도 그렇다. 구약을 이야기 할 때 이런 맥락에서 말씀을 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길 그리고 400년 후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생활 할 때 모세를 불러 이끌어냈고 물도 양식도 길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길이 되고 양식이 되고 생수가 되셨다. 이 길이 내 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을 살아왔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를 이야기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분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되어진 예수는 말씀했지만 내가 모르는 예수였다. 유명한 신학자들은 초대교회 당시의 우매한 사람들 속에 있던 신화를 모아서 짜집기해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연구를 통해 그런 말이 나왔다. 그러니 신약성경에 나온 기록이 사실이 아니라 그 시대에 전해진 이야기로 쉽게 말하면 심청전 같은 것이다.
그 말이 일리도 있지만 그럼 우리는 누구를 봐야하는가? 그 사람의 신화적인 것을 벗겨내고 실체를 내놓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어떤 사람은 신화라고 하며 따르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대책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완전히 배격도 완전히 수용도 아니다. 결국은 그분이 행하신 일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교회에 필요한 것을 골라다가 여러분께 제공을 했다. 그것을 내 좋을대로 해석을 했으니 편리하게 나도 할 수 있고 남도 할 수 있는 것을 다 모아 놓았으니 천하에 없는 교회가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가 점점 커 갈수록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나는 이 사람을 모를까?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 부스러기가 남았다는 사람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여러 성경 이야기 중 우리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를 우리교회에 공급하니 나도 편하고 형제들도 편하고 아주 편한 교회가 되었다. 이보다 더 편한 교회가 없다.
이제 내가 한 가지 말을 하니 교회가 뒤숭숭해졌다. 나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이다. 내가 그 사람을 알려고 갈망하다가 만난 지점이 생기니 너무 감격했다. 내가 여기서 이 사람을 만나는구나! 이적을 행사하던 예수에게서 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못 찾는다. 그러다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것은 당연한데 내려오지 못한 그 자리가 내게 보였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은 많다. 그런데 내려오지 못했다. 내려올 수 있을만한 사람인데 내려오지 못했다. 그것이 나와 만나지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 한자리를 남겨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이것을 모두가 이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처음에는 내게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이럴 수가 있나? 이보다 쉽고 편하고 완전한 예수 만남이 없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 있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오던 길을 계속 이야기하지 않고 교회만 이야기 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천하에 없는 교회라도 무너지려면 한방에 무너진다. 원칙상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무너질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리스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있다. 그러니 바람만 한번 세게 불면 무너져버린다. 전에도 교회를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교회는 아직 그리스도만 있지 않다. 내가 큰 잘못을 했다. 모두 나 때문에 큰 고생을 하고 있다. 나 때문이다. 교회가 고생하는 이유는 모두 나 때문이다. 깊이 그렇게 뉘우쳤다. 오늘은 이 말을 하려고 나왔다.
나는 한 길밖에 없는 사람이다. 벼랑 끝에서 나를 찾으신 하나님 밖에는 내게 없다. 그런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잘나가는 예수만 보았다. 그러니 사람들도 그런 예수를 따랐다. 각자 자기 소원을 두고 예수를 따랐지만 자기 소원에 안 맞으니 예수를 버렸다. 버리는 게 당연하다. 자기 기대에 맞지 않으니 버림받는 게 당연하다.
처음으로 예수가 버림받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모두 십자가에 달아놓고는 하나님 아들이면 내려와 봐라 그러면 믿겠다고 한다. 꼭 이스라엘뿐 아니라 인간이면 다 그 생각을 할 것이다. 각자 예수에게 바라던 게 있으니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부활로 넘어왔다.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나는 그것이 안 믿어진다. 부활한 예수를 본 일이 없다. 그 후로도 부활한 사람을 본 일이 없다.
부활에서 은혜 받고 감사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나는 안 되었다. 바울은 이 어리석은 자들아 씨를 심은 것은 열매를 심는 게 아니니 나중에 하나님이 그 씨에 맞는 열매를 주신다고 말했는데 아주 애매모호하다. 신약에 나오는 그 많은 약속들은 ‘보혜사가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 자기 마음속에 예수가 늘 있다는 사람도 있다. 다 진실이다. 그런데 나는 안 되었다. 그런 사람들끼리는 되겠지만 나는 안 되었다. 여러분도 그것이 되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럴 수가 없다.
놀라운 은혜를 입은 사람도 있지만 그 은혜가 모든 사람과 함께하지는 못한다. 나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다른 사람은 못 들었다. 그것이 사실일 수 있지만 내게는 적용이 안 된다. 만민이 함께할 수 있는 복음은 한자리 밖에 없다.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든 간에 상관없이 그분 자신의 정체를 보여주셨다.
그분에게 일어난 일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정해진 일이다. 예수도 그렇게 되기 싫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예수로서는 부끄러운 자리인데 그것이 예수의 진실이다. 예수의 진실이 발견되고 보니 이제 나도 살게 되었다. 그 자리 외에 나는 예수를 만날 자리가 없다. 그래서 감히 마지막 복음이라고 한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깊이 사과하고 싶은 것이 그동안 나도 교회에 취해서 내 기본 노선을 잠시 동안 이탈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더 중요한 게 있었던 것 같다. 예수 없어도 되겠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목사님만 있으면 되지 예수 없어도 되겠다고 하는데 내가 기뻐야하는데 기쁘지 않고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더욱더 예수와 거리가 생기게 되고 더욱더 예수를 알고 싶었다.
볼트만처럼 신화라 해 버릴 자격이 내게는 없다. 결국 예수로 돌아가야 한다. 그 시대의 예수는 그렇게 만들어졌지만 오늘날 예수는 다시 만들어져야한다. 우매한 민중을 위해 만들어진 신화나 이성을 가진 이 시대에 만들어진 예수나 실체가 없으니 마찬가지이다. 난 차라리 그때 만들어진 예수가 낫지 요즘 만들어진 예수는 진짜 못 믿겠다. 사람은 안보이면 보이는 것을 만든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만들든 안 만들던 내 길은 아브라함이 100세까지 아들을 얻지 못한 그 노선이다. 그 길이 내 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길이 있는지 몰라도 내게는 이길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길이 있어도 내 길이 아니다. 말 타고 활 들고 천지를 움직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길이 어니다. 많은 길이 있어서 고려해볼 여유가 내게는 없다. 그런 길이 있다면 어찌 아브라함의 길을 가겠는가? 길이 많은 사람은 길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내게 길이 많을 때는 참 여유가 많았다. 하나님이 있는가 없는가를 찾느라고 몇 년을 버렸다. 그런데 내일 일을 모르게 되니 하나님 찾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 단순해졌다. 하나님이 나를 그런 길로 이끌어 왔다. 내가 잠시 천하에 없는 교회에 안주했다. 여러분도 거기에 좋은 방석을 깔고 잘 지냈다. 물론 나도 최선을 다한 것이다. 장난으로 한 것이 아니다. 내 일생이 거기에 다 들어가 있다.
오늘 내가 교회를 그렇게 만들고 여러분을 그렇게 만든 것을 깊이 사과한다. 옛날 내가 8년간 충주에서 목회를 하면서 아무것도 제시한 것이 없었다. 내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너무 미안하다. 나를 믿고 내 설교를 들었을텐데 내가 한 것이 없다. 충주에서 내가 마지막까지 그럴 뻔 했는데 나중에 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충주 형제들은 잠시 이 말을 들었다.
정말 하나님 앞에 내가 잘못하고 여러분 앞에 내가 잘못했다. 교회는 그 목사 된 만큼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 목사 모습이 그 교회 모습이다. 별 수 없다. 오늘 대구교회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다. 어떤 사람은 김 목사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데 김 목사는 내가 좋아서 따라온 사람이다. 김 목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내 잘못이다. 내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정말 미안하다. 잠시 동안이지만 내가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이제 내 길은 한곳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길을 가면 된다. 그러나 내 길은 한 곳밖에 없다. 왜 갑자기 이 말을 하는가?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받았다. 이것이 예수가 내려오지 못한 것과 똑같다. 이스라엘이 종 된 이것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한 예수이다. 내가 갑자기 한 말이 아니다.
이제 내가 이 자리를 찾았다. 나는 너무 좋아서 그동안 조심도 없이 말을 했다. 다말도 라합도 룻도 살기위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길을 택했다. 누구나 다 똑같다. 나는 거기서 예수를 만났지만 조금 헤매었다. 그분을 너무나 몰라서 조금 헤매었다. 그러니 교회만 좋았다. 예수는 몰라도 교회는 좋으니 성경에서 좋은 것만 빌려다 썼다. 예수없는 교회가 지금 유럽의 교회이다. 미국도 지금 그렇게 되어간다. 교회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결국 교회는 없어지게 된다.
교회 없이 그리스도는 있어도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저절로 없어진다. 나는 순교자도 못된다. 순교라는 게 대단히 귀한 일이다. 모두 자기 살 길을 갔더라도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그런 순교는 아무나 못한다. 나는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다.
조미경 자매가 밤에 전화가 왔다. 너무 답답해서 죽고 싶었다고 한다. 그때 갑자기 십자가의 빛이 오면서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고 간증을 하면서 이번에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더욱 좋습니다 한다. 그래서 조미경 자매에게 넌 정말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구나 했다. 십자가의 빛을 보고 돌아선 조미경 자매 같은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너는 너무 좋은 것을 보았지만 그것은 너만의 것이지 남에게 나누어줄 수 없다고 했다. 네가 받은 은혜는 너만의 것이지만 내가 말하는 예수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만민의 것이니 복음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조미경 자매는 아틀란타 교회에서 정말 중요한 자매이다.
우리 가운데 은혜 받은 사람이 많다.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온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내가 이 아브라함의 길로 인도하지 못했다. 거기서 끝났다. 그러니 모두 내 책임이다. 앞으로 나는 이 빚을 갚아야한다. 그래서 내가 오늘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사과하러 나오려했다. 하필 내 옆머리를 너무 쳐서 어색하다. 그렇지만 그냥 나왔다.
내가 진심으로 후회를 한다. 이 마음을 받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나는 이번 3.5일 동안이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 6개월 전에 좀 걸어 다닐 것 같았는데 갑자기 병만 형제가 너무 좋다고 찾아왔는데 10센티 높이에서 굴러서 고관절이 부러져서 6개월을 고생했다. 아직 돌아다닐 수가 없다. 이상하게 걸리고 또 걸리는 일이 생긴다. 이쯤 되면 풀릴 것 같은데 또 무엇이 생긴다. 내가 단단히 당해야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긴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 서로 탓하지 말기 바란다. 내가 잘못해서 그렇지 누가 잘못한 사람이 없다. 서로 간에 네가 잘하니 내가 잘하니 하지 말기 바란다. 원망하려면 나에게 하라. 내가 주범인데 서로 잘잘못을 따지면 안 된다. 여러분은 한 형제이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다 받은 은혜가 있을 뿐이다. 앞으로 교회 안에서 내가 잘했니 네가 잘했니 하지 말기 바란다. 내 책임인데 왜 여러분이 고생하는가.
먼저 간 사람이 있고 나중 간 사람이 있을 뿐이다. 모르겠다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알겠다는 사람은 알겠다는 대로 다 각자 가면된다. 앞으로는 누가 잘하고 못하다는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하나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입혀갈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길은 이미 창세전에 준비된 길이다. 예수가 새로 만든 길도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만약 더 좋은 길이 새로 있다면 다 취소하고 가겠다. 예수를 만날 더 좋은 길은 없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가 필요 없는 사람도 만나보면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창세전에 예정된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와 우리가 하나 되도록 정해진 길이다. 그가 만유의 주가 되도록 정해진 길이다. 우리는 아무 할 것 없이 보기만 하고 관심만 가지면 된다. 아무 할 일이 없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길 바란다. 불쌍한 인간을 위해 함께 하시길 빈다.
나는 여러분이 싸우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서로 옳으니 그러니 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미안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