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육봉 풍경[2008· 6· 6 (흐림· 맑음) 한국의산천] 유월은 호국 보훈의 달 그리고 오늘은 현충일. 육봉 슬랩에 오르자 뚜~우 하고 현충일 묵념 시그널이 울렸다.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을 추념하며 잠시 묵념 후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 관악산 육봉(6봉)능선 ⓒ 2008 한국의산천 ▲ 관악산 육봉(6봉)능선상에 위치한 제 5봉의 위용 ⓒ 2008 한국의산천 ▲ 육봉능선의 제5봉에서 내려 올때는 홀드는 양호하나 안전을 위해 위에서 자일로 확보를 해주는것이 안전하다. ⓒ 2008 한국의산천
관악산 바위투성이의 산인 관악산은 산세가 미더워 조선 태조에 의해 북한산, 용마산, 덕양산과 더불어 외사산(外四山)으로 꼽혔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도를 깨닫고 성불했다는 삼성산도 관악산과 더불어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합천 가야산과 산세가 더불어 석화성(石火星·바위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형상) 형상으로 꼽히는 관악산(冠岳山)은 서울 남부(관악구, 금천구)와 경기(과천시, 안양시)를 가르는 산줄기로, 대도시와 위성도시를 끼고 있어 찾는 이들이 매우 많고 그로 인해 등산로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닥으로 나 있으며 암봉이 많이 솟아 있고, 암릉이 여러 가닥 뻗어 있어 험난하다. 그로 인해 아기자기 하면서도 스릴감 넘치는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戀主臺)는 고려가 망하자 10명의 고려 충신들이 관악산에 숨어살면서 간혹 정상에 올라 송도를 내려다보며 통곡을 했다는 애틋한 사연이 흐르는 곳으로 그런 사연에 따라 지명도 임금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그리워할 연 "‘戀"자를 써서 연주대( 戀主臺)로 이름지어졌다 한다. 아래쪽에 있는 사찰인 ‘관악사’의 이름도 "연주암(戀主庵)"으로 바뀌었다. 봄에 관악산 입구 쪽에 벚꽃이 만발하고, 철쭉이 필 때 철쭉제가 열리기도 한다. 관악산 서쪽에는 무너미고개를 사이에 하고 삼성산이 솟아있는데 남쪽 계곡에는 문화 테마공원(안양유원지)이 조성되어 있다. ▲ 석화성(石火星·바위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형상) 형상의 바위가 많은 관악산(冠岳山)
서울 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동쪽에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 서쪽에 돈의문(敦義門), 남쪽에 숭례문(崇禮門), 북쪽에 숙청문(肅淸門·숙정문으로 개명) 등 사대문과 동북의 홍화문(弘化門·혜화문으로 개명·현재의 동소문), 동남의 광희문, 서남의 소덕문(후에 소의문으로 개명·현재 서소문), 서북의 창의문(자하문) 등 사소문이다.
정도전은 '불은 불로써 다스린다'는 이화치화(以火治火)의 논리로, 관악산의 화기와 정면으로 맞서도록 성의 정남쪽에 세운 대문의 이름을 숭례문(崇禮門)으로 정했다. 례(禮)자는 발음상 오행으로 볼 때 불(火)에 해당하며 여기에 불꽃의 형상과 비슷하면서 ‘높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숭(崇)’자를 더해 현판을 수직으로 써내림으로써 타오르는 불꽃 형상을 이루도록 했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의 양 옆에 해태상을 세운 것도 관악산의 불기운을 피하거나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해태는 물기운을 몰아온다는 바닷속에 사는 상상의 동물이다. 이것으로도 안심할 수 없어 숭례문에서 지금의 서울역 광장 방향으로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만들었다. 지금은 연못터가 메워지고 표석만 남아 있지만 ‘남지’는 숭례문이 관악산의 화기를 막다가 자신이 화를 당했을 때에 대비하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숭례문마저 불타고 없어졌으니...
▲ 문원폭포 문원폭포를 지나면 넓은 마당바위를 지나 서폭포에 이른다.
육봉능선의 출발점은 과천시 공업진흥청 옆을 지나 국사편찬위원회 바로 옆 소로길을 따라 들어간다. 소로를 지나 화장실 앞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아치형 다리가 설치되어 있는 계곡을 건너 30분 정도 오르면 계곡을 건너며 10m의 2단폭포인 문원폭포를 만나게 된다. 폭포 바로 위쪽으로는 넓은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이곳 마당바위에서 바위를 따라 오른쪽으로 오르면 케이블카 가 지나는 능선길로 이어지며, 계곡을 따라 계속오르면 직벽에 가까운 서폭포를 지나 왼쪽으로 길이 이어지며 육봉능선으로 오르는 길이다. 그리 험하지 않은 암봉인 제1봉에 오면 오른쪽으로 연주대가 있는 관악산 정상과 그 주변 능선이 보인다. 2봉은 완경사의 슬랩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암사면을 올라서면 3봉으로, 양쪽이 기둥처럼 버티고 선 좁은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관악산(冠岳山)은 태고 이래로 과천시(果川市)의 변천 모습을 묵묵히 지켜온 명산(名山)이다. 관악산(冠岳山)은 또 서울의 조산(朝山)이다. 내룡은 경상도 태백산맥으로 마이산(馬耳山)에서 갈라져 충청도 속리산으로 중조(中祖)가 되어 역으로 치달아 한강을 지계선(地界線)으로 과천 벌판에 우뚝 솟아 삼각산과 마주하고 있다. 그 형상이 마치 관(冠)처럼 뾰족하다 하여 관악(冠岳)이라 이름한 것이다. 관악산은 역사적으로 풍수지리학상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王都南方之火山)이라 하여 쳐다보기조차 꺼려했던 산이었다. 조선 초기에 왕궁터[宮基]를 정하는 데, 관악산을 정남(正南)으로 하면 궁성(宮城)을 위압하여 국가가 평안치 않다는 무학(無學)의 주장과 남면(南面)에 한강이 있어 무방하다는 정도전(鄭道傳)의 주장이 양립되었음은 유명한 사실이다. 아무튼 관악산이 불산(火山)인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불의 산인 관악산과 삼성산의 불기(火氣)를 끊는다는 풍수설에서 서울 숭례문(崇禮門:현 남대문) 바로 앞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팠다. 연못 뿐만 아니라 모든 성문의 액명(額銘)이 가로로 되어 있음에 비하여 숭례문의 액명이 세로로 되어 있음도 이 불의 산에서 옮겨 붙을 서울의 화기를 막는다는 뜻에서였다. 예(禮)는 오행(五行)으로 따져 화(火)에 해당하고, 오방(五方)으로 따져서는 남(南)에 해당한다. 숭(崇)은 불꽃이 타오를 상형문자이기에 숭례(崇禮)는 세로로 붙여야 불이 타오를 수 있고, 또 타오르는 불로 불산(火山)에서 옮겨 붙을 불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
대원군 집정시에 경복궁을 재건할 때 관악의 화기(火氣)를 극복하기 위하여 물짐승인 해태 조각상을 궁전에 안치했다고 하며, 또 관악산 꼭대기에다 우물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龍)을 그 우물에다 넣어서 화기를 진압했는가 하면, 관악의 주봉(主峰)인 연주봉(戀主峰)에 아홉 개의 방화부(防火符)를 넣은 물단지를 묻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전설지(傳說誌), 과천문화원-)
▲ 문원폭포 바로 위에 위치한 서폭포 ⓒ 2008 한국의산천
▲ 육봉능선 바윗길 ⓒ 2008 한국의산천
▲ 관악산 연주대 ⓒ 2008 한국의산천 ▲ 관악산 일명사지터 ⓒ 2008 한국의산천
▲ 육봉능선~ 케이블카 능선을 돌아 원점회기하여 마당바위에서 휴식 ⓒ 2008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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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의산천 원문보기 글쓴이: 한국의산천
첫댓글 석화성(石火星)바위가 불타오르는 추상미술품입니다 숭례문을 이 바위와 정면 대결로 불길을 막으려고 세웠다는 것이 이제는 불타 없어 졌으니 국보 1호를 불태워 없에 버렸다는 속설이 나올법합니다. "서울을 하느님께 받치겠다"고 한 인사의 말 그대로라면,... 숭례문 쯤이야 별 것이 아니 었을 것 입니다. 꽃삽 어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