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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총림 범어사, 부산 금정구 범어사로 250 금정산,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이다.
백년 노송들에 둘러싸여 있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華嚴十刹)중의 하나로 신라 흥덕왕 때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며, 또 왜구를 진압하는 비보사찰(裨補寺刹)의 하나로서 중요한 가람이 되었다.
의상대사 외에도 원효ㆍ표훈ㆍ낙안ㆍ영원ㆍ매학ㆍ묘전스님 등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로서 그 역사적 의미가크다 . 삼층 석탑, 대웅전, 조계문, 당간지주, 일주문,석등 등 많은 문화재도 보유하고 있다.
설화에 나타난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영험담은 부처님의 신력으로 왜구를 막고자 하는 신앙적 기원과 사찰의 무력적 기반을 이용하고자 하는 국가의 의도가 결합된 것으로 한국 호국불교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범어사는 지역사회의 종교 중심지로서의 한정된 기능만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동해안의 안위(安慰)를 책임지고 있던 국가비보사찰(國家裨補寺刹)의 기능을 가졌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가 범어사를 사령부로 삼아 승병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일제강점기 3.1운동 때는 이곳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범어사 학림의거’라는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고, 만해 한용운이 공부하던 학생들과 전국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범어사 암자에서 만들었다. 또한 서울과 동래, 김해 등에 포교당을 세우는 등 불교진흥운동과 근대교육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일제시대 때 주석하셨던 오성월 스님은 경허, 용성스님을 모시고 수행정진하며, 금강암, 내원암, 안양암, 원효암, 대성암, 계명암, 원응정사, 금당선원, 청풍당선원을 개설, 명실상부한 선찰대본산으로의 위상을 세워 호국 사찰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수행도량으로서 수많은 도인을 배출하였다. 특히, 1950년대 동산스님은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한국근대불교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선불교의 사상적 맥락을 뚜렷이 하였다.
구한말, 성월스님이 범어사 주지로 있을 당시,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으로 명명하고 당대의 최고 고승 경허스님을 범어사 조실로 초빙하였다. 선찰대본산은 마음의 근원을 궁구하는 수행도량 이라는 뜻으로 참선을 통해서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잡념과 망상을 쉬게 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의 참다운 불성을 깨닫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2012년에는 금정총림으로 지정, 지유스님을 초대방장으로 추대하였고, 2020년에는 범어사에 소장된 삼국유사 4~5권이 국보 306-4호로 승격.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의 꼭대기에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는, 금빛을 띤 우물이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가 그 물 안에서 놀았다고 한다. 이에 산 이름을 '금빛 우물'이라는 뜻의 금정산(金井山)으로 짓고 그곳에 사찰을 세워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 라는 뜻의 범어사(梵魚寺)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범어사는 창건 이후 임진왜란과 화재 등으로 소실되기도 하였지만 몇 차례의 개수 및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로 꼽힌다.
역사를 기록한 문헌으로는 1700년(숙종 26)에 동계(東溪)가 편찬, 간행한 목판본 『범어사창건사적(梵魚寺創建事蹟)』이 현존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 절은 당나라 문종 태화(太和) 19년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당시 왜인이 10만의 병선을 거느리고 신라를 침략하려 하였으므로 대왕이 근심하고 있었는데, 문득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의상(義湘)을 청하여 화엄신중기도를 할 것을 권하였다.
신인은 “태백산 속에서 의상이 3,000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화엄의지법문(華嚴義持法門)을 연설하며, 화엄신중(華嚴神衆)들이 항상 그의 옆을 떠나지 않고 수행하고 있다. 또 동국해변에 금정산이 있고,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이나 되는 바위가 솟아 있는데, 그 바위 위에 우물이 있고 그 우물은 항상 금색이며 사시사철 언제나 가득 차 마르지 않고, 그 우물에는 범천으로부터 오색구름을 타고 온 금어(金魚)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왕이 의상을 청하여 함께 금정산 아래로 가서 7일 동안 화엄신중을 독송하면 왜병이 자연히 물러갈 것이라고 하였다. 왕이 그대로 하였더니 왜선들끼리 서로 공격하여 모든 병사가 빠져 죽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의상을 예공대사(銳公大師)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적기의 창건연대인 흥덕왕 때는 826년에서 835년까지이므로 의상사후라 신빙성이 없다 . 범어사의 창건은 의상이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670년(문무왕 10) 이후일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678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라때 창건 당시에 미륵석상과 좌우보처 및 사천왕이 각각 병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여 모셨던 2층의 미륵전(彌勒殿)을 중심으로 서쪽에 3칸의 비로전(毘盧殿)을 세우고 비로자나불상,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병기를 든 향화동자상을 모셨다. 미륵전 동쪽에는 3칸의 대장전(大藏殿)을 세우고 대장경과 삼본화엄경(三本華嚴經) 및 석가여래상을 모셨다.
이 밖에도 천왕신전(天王神殿)·유성전(流星殿)·종루(鐘樓)·강전(講殿)·식당(食堂)·목욕원(沐浴院) 및 33천(天)을 조성한 철당(鐵堂), 중료(衆寮) 360방사가 양쪽 계곡에 늘어섰으며, 사원의 토지가 360결(結)이고, 소속된 노비가 100여 호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10여 년을 폐허로 있다가 1602년(선조 35)에 관선사(觀禪師)가 중건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묘전(妙全)·현감(玄鑑)·계환(戒環)·법인(法仁)·천원(天元)·덕균(德均) 등이 법당 및 요사채, 불상과 시왕상(十王像), 중창하였다. 그 뒤 범어사는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면서 사원의 규모를 넓혔으며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란 이름 아래 현재 경상남도 3대사찰로 발전하였다.
이 절과 인연이 깊은 고승으로는 창건주인 의상과 신라십성(新羅十聖) 중의 한 사람인 표훈, 일생을 남에게 보시하는 것으로 일관한 낙안(樂安), 구렁이가 된 스승을 제도한 영원(靈源), 근대의 고승 경허(鏡虛), 한용운(韓龍雲), 동산(東山) 등이 있다.
특히 「선찰대본산범어사안내」에는 1613년에 묘전이 중건한 이후의 역대 주지와 그 임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① 주지시대(住持時代) 132년간 87대, ② 승통시대(僧統時代) 166년간 177대, ③ 총섭시대(摠攝時代) 14년간 11대, ④ 섭리시대(攝理時代) 4년간 3대, ⑤ 주지시대 39년간 8대로 구분하여 1947년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주지라는 사찰의 책임자에 대한 호칭이 조선시대에 승통·총섭·섭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이 절은 산지가람(山地伽藍)으로 특이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금정산 동쪽의 넓은 산지를 이용하여 그 아래부터 일주문(一柱門)·천왕문(天王門)·불이문(不二門) 등을 차례로 배치하고 다시 7m 높이의 축대 위에 보제루(普濟樓)를 배치하였다. 보제루 좌우에는 심검당(尋劍堂)·비로전·미륵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일반 사찰의 경우에는 심검당과 대칭이 되는 곳에 강원인 강설당(講說堂)과 같은 건물이 놓이는 것이 통례이지만, 이곳에 법당이 있어 특이한 가람배치법을 보이고 있다. 비로전과 미륵전의 뒤쪽에는 선원(禪院)이 배치되어 있으며, 선원 바로 아래 낮은 지역에는 요사채들이 있고 그 옆에는 종무소 건물이 있다. 또 심검당 뒤쪽에는 강당(講堂)이 있고, 강당의 뒷건물들은 승려들의 일상생활에 편의를 제공하는 후원(後院)의 건물이 있다.
그리고 이들 건물보다 7∼8m 높은 축대 위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을 향하여 우측에는 관음전이 있으며, 관음전 옆에는 노전승(爐殿僧)의 거처인 일로향각(一爐香閣)이 위치한다. 대웅전 좌측에는 명부전(冥府殿)이 있고 그 뒤쪽에는 서향각(西香閣)과 작은 요사채가 있으며, 그들보다 한 단 높은 곳에 비켜서 팔상전(捌相殿)·독성각(獨聖閣)·나한전(羅漢殿)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뒤쪽에 산령각(山靈閣)이 있음도 특색이다.
절의 가람배치는 상·중·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일 상단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가람배치, 중간부분인 보제루 주위의 당우들, 하단의 건물인 보제루 아래쪽의 일주문·천왕문·불이문을 중심으로 하는 건물들이다. 이와 같이 건물이 세 부분으로 나뉘는 것은 산지가람의 지형에 따르는 배치방법이다.
일주문
만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 있는 '삼해탈문'이라고도 불린다. 돌기둥이 일렬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 특징이며 맞배지붕에 처마는 겹처마, 정면 3칸에 공포는 다포 양식으로 되어 있어 옛 목조 건물의 공법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광해군 6년(1614년)에 건립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숙종 44년(1718년)에 명흡 대사가 돌기둥을 바꾸고, 정조 5년(1871년)에 백암 선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진다.
부산 범어사 조계문(보물 제1461호)
절 입구의 일주문은 범어사의 정식 출입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이룩된 3칸 건물로서 건물의 기둥은 아랫부분 3분의 2 정도까지 석주로써 조성, 그 위에 다포(多包)의 맞배지붕을 형성하고 있다. 건물의 우측에는 ‘禪刹大本山(선찰대본산)’, 좌측에 ‘金井山梵魚寺(금정산범어사)’, 중앙에는 작은 글씨로 ‘曹溪門(조계문)’이라는 현판이 있다.
천왕문 전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서 벽에는 신장의 벽화를 그려 천왕문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문의 내부 좌우에는 사천왕의 탱화를 안치하였다.범어사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이며, 동방 세계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남방 세계를 수호하는 증장천왕, 서방 세계를 수호하는 광목천왕, 북방 세계를 수호하는 다문 천왕이 모셔진 전각이다. 2010년 방화로 소실이후 ,원형 복원하였다.
불이문 전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절로 통하는 마지막 문이다. 이 문의 기둥에는 근대의 고승 동산(東山)이 쓴 주련이 있다.사찰로 들어가는 세 번째 문 '부처님과 중생은 본래 둘이 아니며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그 근원은 모두 하나다'라는 뜻을 가진 문으로 차별하지 말고 문 안으로 들어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숙종 25년(1699년)에 자수 스님이 천왕문과 함께 창건한 건물로 동산 스님이 쓴 주련이 걸려 있으니 유심히 살펴보자.
보제루는 모든 법요식(法要式)이 행해지는 곳이다. 전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서 범어사의 가장 큰 건물이다. 법회 등이 진행되는 곳. 부처님의 맑은 진리와 가르침으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예불, 법화, 각종 법요식이 진행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보제루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는데 어리석은 중생이 수행을 통해 해탈의 세계에 이르는 장면을 열 개의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종각 그리고 보제루 북쪽에는 사방 3칸의 종루(鐘樓)가 있다. 범종과 대북 등의 의식용구가 갖추어진 2층 누각건물이다.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종소리. 숙종 25년(1699년)에 명학 스님이 중건한 것으로 2층 누각으로 되어 있다. 종을 치는 것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맑게 해 주는데 때때로 사찰 의식을 행할 때 치기도 한다.
미륵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서 내부에는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을 한 목조불상을, 전면과 좌우에는 영탱(影幀)을 봉안하였다.
용화전 ( 자씨전으로 불리는 곳) 석가모니 다음에 올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을 모신 곳이다. 법당에 모셔진 불상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화재로 소실되었던 미륵전을 파 보니 미륵불상이 동쪽을 등지고 앉아 있어서 그대로 안치하였다고 한다.
비로전의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내부에는 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건물의 초석은 잘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당간지주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 문화재 제15호)
당간이란 사찰에서 의식이 있을 때 당을 걸기 위해 세운 깃대를 말한다. 범어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는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간석과 기단부는 없어지고 지주만이 남아 있으며 지주에는 문양이 조각되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준다. 지주의 좌우 기둥은 모두 가로 50cm, 세로 87cm, 높이 4.5m 되는 거대한 돌로 되어 있고, 두 기둥의 간격은 79cm이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보물 제434호)은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02년에 중건, 1613년에 중수한 맞배집으로서 다포식 건물이다.범어사의 중심 건물로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의 삼존을 모시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광해군 6년(1614년)에 묘전 화상이 건립한 것이며 숙종 39년(1713년)에 다시 건축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 공포는 다포 양식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조선 중기 목조 건물의 좋은 표본이 되고 있다
대웅전 왼쪽의 명부전은 전면과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서 주존불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이다. 지장보살의 주위에는 판관(判官)·녹사(錄使) 등의 상을 배치하고 있다. 관음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서,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상과 불경이 봉안.
지장전 지장보살을 모시는 곳.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 구제하는 지옥 세계의 부처님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맹세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지장전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하여,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시왕(十王)이 함께 모셔져 있다.
관음전 옆에는 노전승이 거처하는 일로향각이 있으며, 명부전 뒤쪽에는 서향각이라는 조그만 건물이 동향하고 있다. 이 건물 내부에는 부처님의 탱화가 있고 그 곁에는 동래 정희조 내외의 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들은 대웅전 옆 칠층석탑의 건립 등 범어사의 대시주였다.
팔상 ・ 독성 ・ 나한전 (부산 지정 유형 문화재 제63호)
300여 년 전의 건축 양식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어 한눈에 눈길을 끄는 곳으로, 서향각 뒤쪽에 하나의 건물에 세 불전을 모시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팔상전에는 삼존상과 부처님의 일생을 8가지로 나눈 팔상탱화를 봉안하고 있으며, 독성전은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하고 계신 나반조자를 모신 전각이며, 나한전은 석가여래 삼존과 아라한인 16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전면 6칸, 측면 1칸의 길다란 건물이다.
이 밖에도 조그마한 산령각과 해행당(解行堂) 등 수십 칸의 요사채가 있고 종무소가 현존하고 있다.
휴휴정사 템플 스테이 장소
불교 수행법으로 가장 높이 평가되고 있는 참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이다. 사찰 예절 배우기, 발우공양, 저녁 예불, 108 참회, 스님과의 좌담, 산행, 새벽 숲길 걷기 등의 프로그램이 있고 산사에서 참선을 직접 해 보고 참된 나를 찾고 싶다면 한번 참여해 보고싶다.
이 절의 석조물로는 보제루 앞 뜰에 신라시대 석탑인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제250호)이 있고, 대웅전의 남쪽에는 거대한 칠층석탑이 있다. 이 칠층석탑은 근세 인도승이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한 탑으로서 전통적인 신라 석탑 형식에 다소 변화를 주어 새로 건립한 것이다. 삼층석탑에서 약 20m 남쪽에 위치한 곳에 범어사 유일의 석등(石燈)이 있는데 건립시기는 고려 말로 추정된다.
삼층 석탑 (보물 제250호)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3층 석탑으로 탑의 층급받침이나 기단에 새겨진 코끼리 눈 모양의 조각 등으로 보아 9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이나 탑신의 면석에 조각이 장식되는 신라 하대 석탑의 특색을 보여 준다. 이 탑은 제일 아래쪽에 한단의 석재를 첨가하고, 그 위에 탑의 몸체를 세웠기 때문에 우뚝 솟아 보이며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석등 (부산 지정 유형 문화재 제16호)
신라의 의상 대사가 문무왕 18년(678년)에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지나 양식상으로 볼 때는 9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통일 신라 시대 석등의 전형적이고 기본적인 양식에 속하는 이 석등은 원래는 미륵전 앞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 밖에도 괘불(卦佛)을 시설하는 석조괘불대가 있고, 일주문 밖에 소형 석조폐탑(石造廢塔) 등이 있으며, 일주문 옆 숲속에는 수많은 비석이 있고, 그 비석 아래쪽에 고승 동산의 석조부도(石造浮屠)가 있다. 이 부도는 최근의 작품이지만 고려 이래의 전통적 석조부도의 형태에 각종 장엄을 가미함으로써 매우 아름다운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보물(寶物)로는 전의상대사옥인(傳義湘大師玉印)과 구룡병풍(九龍屛風)·삼층석탑·옥와(玉瓦)·석존사리탑(釋尊舍利塔)·금강저(金剛杵)·목조미륵불(木造彌勒佛)·범종(梵鐘)·어병(御屛)·오동향로(烏銅香爐) 등이 있다.
이 중 옥인은 원효의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산내암자인 원효암(元曉庵) 우물 보수중 발견한 것이며, 널리 화엄의 그물을 펴서 인간과 천상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을 지닌 ‘張大敎網鹿人天之魚(장대교망녹인천지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성보 박물관 범어사 내에 있는 박물관으로 조선 후기 불화를 비롯하여 각종 불기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삼국유사〉, 〈주범망경〉, 〈불조삼경〉, 〈금장요집경〉 등도 전시되어 있다.
총림이란?
총림(叢林)은 빈댜바나(산스크리트어: Vindhyavana)의 의역으로 음역하여 빈다바나(貧陀婆那)라고도 하며,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이 마치 나무가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총림이라 한다.
현재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승가대학,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이며, 총림의 최고지도자를 방장(方丈)이라 부른다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동화사, 범어사, 쌍계사를 8대 총림이라고 하며, 범어사는 2012년 동화사, 쌍계사와 함께 총림으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