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효상의 나와 가톨릭 생활성서 2022-12 p46-51
빈자의 미학
승효상 건축가, 이로재 대표, 동아대 석좌교수
-전략- 그러한 20세기 초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의 결과로 수많은 이들이 신분 상승과 물질 획득의 기회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끊임없이 몰려들던 때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도시 인구를 좁은 길이 거미줄처럼 얽힌 중세의 도시 구조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리버풀은 도시 인구의 반 이상이 지하에 거주했다고 하며, 런던에서는 3평 남짓한 방에 10명의 식구가 기거하는 일이 보통이었습니다. 거리에는 오물이 넘쳐나고 공장과 집에서 땐 석탄의 매캐한 먼지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질병의 창궐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공포의 스페인독감이 물러간 후, 그 원인이 열악한 도시 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식한 일단의 학자와 건축가들이 주목한 단어가 있었는데 '기능'입니다. 기계 문명이 꽃을 피우던 시기였고 기능과 효율이 새로운 시대의 좌표라고 믿은 '세계 건축가 연맹'의 회원들은 1934년 아테네에서 도시 헌장을 발표하며 도시를 주거, 노동, 교통, 위락의 4개 기능으로 개편할 것을 주장합니다. 바로 오늘날 주거 지역, 상업 지역, 공업 지역, 녹지 지구 등으로 구분하는 용도 지구제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도시는 물론 오랫동안 살았던 역사적 도시들도 모두 용도로 구분, 재편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도시는 자동차 위주의 도로로 구획되고 건물들은 고층화되어 밀집되었으며 건축은 밀폐되고 그 속에서 접촉은 더욱 밀접해졌습니다. 더구나 20세기 말고도 산업 사회는 전대미문의 기후 위기를 초래하여 우리는 그 위기를 피하느라 더욱 밀집·밀폐·밀접한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고 그 결과 코로나라는 재앙에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서로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며 살아갑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를 밀실로 몰아넣고 비대면의 가상 현실속에서 일상을 보내게 했습니다. 마스크, 비대면, 거리 두기. 이들은 무너진 공동체의 다른 이름이며 이로 인한 사회의 붕괴는 당연한 수순으로 곳곳에서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32년 전 한국 현대 건축의 대들보였던 김수근 선생의 문하에서 15년간의 건축 수업을 마치고 독립한 후, 저 자신의 건축을 모색하다 작은 책 한 권을 내었습니다. 『빈자의 미학』, 누구는 이를 선언문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이들을 위한 건축 지침서인 이 작은 책에서 제가 앞으로 해야 할 건축의 내용을 미리 밝힌 까닭에, 이 책은 저 스스로 자초한 족쇄가 되었지만 저는 그 안에만 있으면 너무도 자유로웠으니, 제게는 진리였습니다. 물신주의의 포로가 된 당시의 현실을 개탄하며 이에 대항하고자 건축의 실천 방안 네 가지를 밝혔습니다.
첫째는 붙어사는 동네가 아니라 모여 사는 동네를 만들기 위해 건축이 지녀야 마땅할 공공적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도시의 섬이된 아파트 단지, 비 피할 곳 하나 제공하지 않는 빌딩, 이웃을 배척하는 높은 담장들…… 모두 우리의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나쁜 건축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잃어버린 우리 옛집의 마당을 상기시키며 공간을 채우지 말고 비우자고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주체적 삶을 살게 됩니다. 다음으로 기능과 효율을 따지며 냉랭해진 관계를 회복하도록 오히려 반기능적 건축을 하자고 했습니다. 불편함 속에 궁리도 싹트고 사유도 출발합니다. 누군가 이를 즐거운 불편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잘난 체하느라 난장이 된 우리의 환경을 질타하며 침묵하자고 했습니다. 건축물은 오로지 우리 삶의 수단일 뿐입니다. 단순한 건축을 배경으로 해야 우리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제대로 돋보일 것이라고 썼습니다.
올해가 이 '빈자의 미학'을 말한 지 딱 30년째입니다. 이 기간 동안 적지 않은 건축 설계 작업을 쌓아가면서 실천 방안 두 가지를 더 보탰습니다. 기억과 영성입니다. 새 역사 창조라는 헛된 구호를 지적했습니다. 새집을 지을 때라도 그 땅에 남겨진 사실들을 들추어 미래와 연결시켜 역사적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기억하게 되면 운명을 알게 되고 따라서 겸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개발의 광풍이 초래한 물신의 시대를 떠나 우리들 모두의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을 찾아, 잃어버린 영성의 풍경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연대하는 공동체, 비움의 공간, 불편한 삶, 침묵의 형태, 죽음에 대한 기억 그리고 영성의 풍경, 이 여섯 가지 실천항목은 물신주의의 교리와 정반대의 가치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 '빈자의 미학'은 우리들 삶을 파편화시킨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래전 이 주장을 했을 때, 틀린 방향일 수 있다며 걱정해주는 이도 있었고, 더러는 비아냥거리는 이들까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속에 울리던 성경 구절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스스로를 비우는 삶, 실제로 저는 그 실체를 가난과 순결과 순종을 좋은 수도자들의 건축에서 너무도 많이 찾을 수 있었고 그 흔적들을 무수히 좋아 배웠으며 결국 수도의 공간은 제 건축에 중요한 교본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지난 세월 제가 실천한 내용을 모아 '빈자의 미학 재론'이란 책을 펴낼 수 있다면 아마도 제 건축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깁니다.
저는 생활성서」에 글을 싣기 시작할 때, 어릴 적 신학을 전공할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는데, 어느 분이 승효상은 건축으로 신학하는 자라고 말씀한 걸 들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건축은 한갓 예술이나 기술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을 조직하는 일입니다. 설계일을 시작한 지 반백 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제 건축 속에 살게 되는 귀한 생명들이 제 잘못으로 잘못된 삶을 살까 늘 두려워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생활성서」에 글 써줄 것을 요청 받았을 때, 어쩌면 개신교도로서 가톨릭 잡지에 객관적일 수 밖에 없는 글을 쓰며 제 건축을 다시 점검하고 다짐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라는 욕심으로 시작했는데, 그게 과욕이었음을 한 해를 지나며 깨닫습니다. 여전히 편견과 아집에 찬 제 글이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에게 상처를 드렸을 수 있다고 여기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저 한 무지한 개신교도 하나가 난입하여 어지럽히다가 제 힘에 부쳐 도주한 것으로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지난 한 해 이 칼럼을 허락해주신 편집부 선생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생활성서』의 번창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늘 평화하시길 빕니다. 도나 노비스 파쳄 ‘나와 가톨릭’은 이번 호를 끝으로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칼럼을 아껴주신 독자님들과 교회 건축에 얽힌 아름다운 사연과 성찰로 감동을 선사해준 승효상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