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포럼에서/靑石 전성훈
인문학 강연 또는 관공서나 민간단체에서 거행하는 학술세미나에 자발적으로 참석한다는 게 쉽게 마음먹는 일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학술세미나에 참석해 본 지도 몇십 년 전 일인 것 같다. 20년 전 어느 해 가을 토요일 오후 경복궁에서 ’조선 중기 선비사회의 문화‘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한 기억이 난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전에는 20~30명이 모인 소규모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다닌 적이 여러 번 있다. ‘50년의 성장, 100년의 미래’라는 표제로 ‘도봉구 출범 50주년 기념 문화 포럼’이 열린다는 연락을 받고, 도봉문화원으로 향했다. “도봉구는 지난 50년간 지역주민과 함께 변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도봉구가 걸어온 성장의 길을 돌아보고, 새로운 도봉의 미래를 깊게 살펴보고자 합니다.”라는 초대의 글을 보내준 도봉문화원장은 ‘도봉문화는 무엇을 남기며 갈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하였다. 도봉문화원장은 ‘도봉다움’이란 무엇일까 하면서 다른 지역과는 차별성을 지닌 도봉의 특색을 발견하는 일, 그리고 과거 향토문화에서 미래 ’지역학‘으로 가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포럼은 3인의 발표자가 각각 주제별로 발표를 하였다. 첫 번째는 도봉구의 변화 - 해방 이후 도봉구의 변화상(1945~1973), 두 번째는 도봉구의 성장 - 서울 동북부의 개발과 도봉구의 성장(1960-1990), 마지막으로 도봉구의 미래 - 도봉구의 전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주제였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포럼에 참석한 이들은 누가일까 생각해보니, 도봉구의 과거와 미래에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 귀중한 시간을 내어 참석한 것 같다.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을 둘러보니 포럼이 거행되는 강당 1/3 정도 대략 70~80명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남성 대 여성 비율이 60 : 40대 정도로 보인다. 방청객 중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이 제일 많다.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편한 자세로 발표자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도봉구는 나에게도 친밀한 곳으로, 나는 어머니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6.25 전란 중에 결혼하시어 군인인 아버지와 떨어져 친정 옆집에서 사셨다. 어머니의 본적지는 고양시 번동이고, 내가 태어났을 때는 성북구 번동, 그 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봉구 번동 그다음에는 강북구 번동으로 변경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하고 싶은, 되고 싶은 소망이나 꿈을 갖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을 벗어나 청소년기를 거쳐 사회인이 되면서 꿈을 잃어버리거나 꿈을 꾸지 않거나 꿈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하기에 꿈이 없는 사람,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국민학교 때 전교생을 모아 놓고 월례조회를 하시는 교장 선생님은,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훗날 우연한 기회에 그 말씀은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S.클라크가 일본 북해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였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 뒤에, “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말고 이기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말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라는 멋진 말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 칠십이 넘어 세월을 반추해보니, 지나간 젊은 시절은 꿈을 잊어버린 채 살았다. 허덕허덕거리며 하루하루 지내기에 급급했던 때였다. 그런 와중에도 직장을 그만두면 글을 쓰고 싶다는 그야말로 꿈같은 생각을 했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게 젊은 날의 간절했던 꿈이었던 같다. 이름 없는 시인이자 수필가가 된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글다운 글쓰기를 갈망하는 게 욕심인지 모르겠다. (2023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