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스민과의 이별 글 김병종 화가, 서울대 교수
쟈스민은 우리 집에서 열다섯 해를 산 암컷 애완견 포메라니안의 이름이다. 낳은 지 두 달 만에 어느 지인에게서 선물로 받아 털북숭이로 우리 집에 왔는데, 처음에는 나와 썩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환절기 때마다 재채기를 하는 알레르기가 있던 나는 쟈스민이 온 뒤로 그 증세가 심해진 듯하여 상당히 구박을 했다. 쟈스민이 처음 우리 집에 왔던 93년도에 우리 집 사내아이 형제가 각각 아홉 살과 여섯 살이었다. 그 나이 또래들이 대개 그렇듯, 아이들은 금방 강아지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학교에 다녀오면 책가방을 던지기가 무섭게 쟈스민부터 찾았다. 살던 아파트 뒤쪽으로 야트막한 야산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쟈스민을 데리고 거의 그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내 또한 그 산의 약수터에 데리고 다녔다.
어릴 적 이렇게 산에서 살다시피 해서 그런지 쟈스민은 건강하게 자라났고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예방주사를 맞으러 간 것을 제외하고는 동물병원에 가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쟈스민은 가족 중 막내와 가장 친했고 그 다음이 큰아이, 그 다음이 나, 그리고 아내의 순이었다. 막내가 대학생이 되고 군대 가기 전까지 쟈스민은 늘 막내의 발치에서 잤다. 두 아이가 입시 준비를 하느라고 새벽녘이 돼야 학원에서 돌아올 때도 어두운 현관 신발장 옆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놀라운 것은 두 아이 중에 하나라도 들어오지 않으면 결코 현관문을 떠나지 않는 점이었다.
불 꺼진 집에 들어왔을 때 홀로 어둠 속에서 꼬리를 흔들며 맞아주는 쟈스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며, 아이들은 고달픈 수험 생활을 비교적 쉽게 지나갔던 것 같다. 수호천사처럼 쟈스민은 그렇게 아이들 곁을 지켰다. 쟈스민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게 된 것은 둘째 아이가 군대에 가고 나서부터였다. 군에서 제대하고 난 큰아이가 있었지만 복학하고 나서 거의 집에서 얼굴 보기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에 예전처럼 쟈스민과 맘껏 놀아줄 수도 없었다.
가끔 보면 쟈스민은 우두커니 둘째의 빈 방 앞에 앉아 있곤 했다. 그래도 아침이면 내 방 앞에 와서 산책을 가자고 기척을 보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기름진 야식을 먹고 있던 내게 다가와 달라는 시늉을 하여 무심코 몇 개 나누어주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이튿날부터 일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려 했다. 병원에 데려가니 급성 췌장염이라고 했다. 링거를 맞혔지만 호전되는 기미가 없었고 무엇보다 병원의 좁은 철창 안에 갇히는 것을 못 견뎌하는 것 같아 집으로 데리고 왔다. 못 먹어 기진맥진하면서도 가족들을 향해 아는 체를 하고 눈빛으로 반응을 보내왔다.
아내가 주사기로 먹여주는 물을 겨우 받아먹기를 보름 가까이나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큰아이가 들어오면 혼신을 다해 꼬리를 저어 반갑다는 표시를 했다. 그러던 쟈스민의 다리에 서서히 마비가 시작되었다. 생명이 꺼져가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쟈스민은 아이들의 방 앞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쪽으로 옮겨놔도 한밤중 사력을 다해 몸을 조금씩 움직여 아이들 방 앞으로 가 있곤 했다.
나중에 마비가 오고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정도가 되자 목을 틀어 눈을 아이들 방 앞쪽으로, 특히 군대 간 둘째 아이 방 앞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1월 12일 새벽 6시경, 쟈스민은 그 상태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까지 아이들 방 쪽으로 향한 눈을 감지 않은 채였다.
나는 쟈스민을 작은아이가 입던 헌옷에 싸서 어릴 적 뛰어놀던 동산과 비슷한 야산에 묻어주었다. 영하 십도가 넘는 맹추위였지만 다행히 양지바른 쪽이 있어 그곳을 파고 묻었다. 작은 봉분을 쓰다듬으며 큰애는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그러고 보니 쟈스민과 우리 아이들 간에는 짐승과 사람의 구별마저 없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쟈스민의 사진을 넣어 무덤 앞에 예쁜 비석을 세워 주마고 약속했다. 이제 우리 집 강아지 쟈스민은 떠나고 없다. 머나먼 영국에서 우리 집까지 와서 한 가족으로 살다간 쟈스민. 한 번도 우리를 배신하거나 미워하지 않던 그 까만 눈동자의 강아지. 야단을 맞아도 금방 꼬리를 흔들며 내 무릎으로 다가오던 그 작은 쟈스민이 남기고 간 자취는 너무나 많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작은 생명체가 우리 아이들은 물론 나와 아내에게도 서로 사랑하는 법과 약자를 보살피는 법을 가르쳐주고 떠났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직하고 사랑스러웠던 쟈스민. 우리 가족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함께했던 쟈스민. 오는 봄을 보지 못하고 동토에 묻힌 쟈스민. 잘 가라. 쟈스민.
화가 김병종 님은 1953년 생으로,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우리나라와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20여 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했습니다. 서울대 미술대학 학장을 거쳐 현재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은 책으로 <중국회화연구> <김병종의 화첩기행>(1~4권)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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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거 재밌어요 나도 짧게 개를 키웠던 경험이 있어서 ㅎㅎㅎ
꺅 그... 만복이 ???
예전 개 이름은 이쁜이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