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죽 朱世竹 (1899~1950)
송경동
한국 근대의 파란과
세계사의 격랑 속을 살며
그는 사는 내내
몇 번이나 독립해야 했지
함경남도 함흥 고래등 같은 집안으로부터
일찍 독립해야 했지
상해음악학교 절대음감이던
예술가의 길로부터도 독립해야 했지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해방론자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사회주의자 그룹의 핵심
모든 봉건적 관념과 질서와 예속
모든 제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해야 했지
상해로 서울로 블라디보스토크로
모스크바로 다시 상해로 다시 모스크바로
그는 혁명을 위해 어느 때고
어떤 국경과도 이별해야 했고
네 살 어린 자식과 이별해야 했고
두 명의 남편과 이별해야 했고
세계 인민의 모국 코민테른과 함께하며
때론 조국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했지
3·1 만세운동
제1차 조선공산당 조직사건
6·10 만세운동
피랍 직전 소련으로의 망명
그리곤 누명에 의한 숙청까지
네 번의 감옥과
긴 지하생활과 유배생활을 견뎌야 했지
고려공산청년회, 조선공산당
조선여성해방동맹,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항일여성운동단체 근우회 등과 함께했지
죽어서도 사회주의자라는 까닭으로
남한으로부터 배척받아야 했고
미제 간첩 박헌영의 아내였다는 까닭으로
북으로부터 지워지고
일제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코민테른으로부터도 삭제되어야 했던
그는 누구일까
신여성 트로이카, 맑스걸, 조선의 여자,
동방의 애인, 레이디 레닌 등으로 불려졌던
그는 누구일까
오늘도 혁명가로, 전사로 호명되지 않고
조선 최고의 미인으로, 누군가의 아내로, 스캔들로 소비되는
그는 누구일까
조선 최고의 엘리트였다가
먼 이국의 유형지 사막에서 피혁공장 개찰원
협동농장 인부 방직공장 직공으로
강제노동을 하다 스러진 그는 누구일까
조국으로부터도 혁명으로부터도 배반당한
그는 누구일까
역사로부터 지워진 것은
진실로부터 지워진 것은 그가 아니라
오늘도 반쪽짜리 조국에 살고 있는 우리 아닐까
여전한 가부장들의 제국
자본의 제국 핵무력의 제국 안에서
어떤 사상적 독립도 상상하지 못하며
창살 없는 감옥을 사는 우리 모두 아닐까
1989년 소련공산당은
코레예바* 주세죽과
그의 두 번째 남편으로 처형당했던 김단야의
일제 간첩 혐의가 누명이었음을 인정하고
명예를 회복시켰다
2007년 대한민국은 그의 항일투쟁을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서는
아직 그에 대한 공식 평가가 없다
손석춘의 소설『코레예바의 눈물』과
조선희의 소설『세 여자』로
주세죽은 긴 세월이 흘러 우리 곁으로 돌아왔지만
사랑과 혁명이라는 영원한 미로 속에서
그의 고독은 오래 지속될 것이며
눈물은
오래도록 마르지 않을 것이다
* 코레예바 : ‘조선의 여자’라는 뜻으로 박헌영이 모스크바 망명 당시 부인이었던 주세죽에게 붙여준 소련식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