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장소 : 영광 불갑사 상사화 축제장
일 시 : 2022.09.22(목) 09시,
참 가 : 강공수 김재일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등 7명
불 참 : 김상문(사회 복지 현장 헤험) 김영부(병원 입원) 이용환(가정 사) 장휘부(지병) 정원길(수업) 최문수(당분간 쉼)
회 비 : 140,000원
식 대 : 91,000원(한방갈비탕 7, 1그릇 13,000원)
차량주유 : 100,000원
잔 액 : -51,,000원
이월잔액 : 298,000원
총 잔액 : 247,000원
8시 15분 김재일의 전화를 받았다. 김재일은 벌써 상록미술관 앞에 도착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집에서 나와 승용차를 탔다.
8시 40분쯤 상록 미술관 정문에 도착하였다. 박남용과 김재일이 보였다. 이어서 강공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내 차 뒤에 강공수가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나종만과 윤상윤도 다가왔다. 윤정남은 전화기가 꺼져 있고 김영부에게 전화하였더니 병원이라고 하였다. 어떤 일로 입원하였는지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서 더 묻지 않았다. 이제 9시가 되었는데 윤정남이 소식이 없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지금 출발하자고 우겼더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5분 후쯤 윤정남이 나타나서 우리 일행은 영광 행사장으로 출발하였다. 나는 카카오맵의 목적지를 <영광군 불갑사 상사화 축제장>으로 찍고 앞서 출발하였다. 수시로 뒤에 따라 오는 강공수의 차를 확인하면서 달렸다.
날씨는 맑고 파란 특유의 한국의 가을하늘이 하얀 구름과 우리의 여행을 축하해 주는 듯하였다. 거기에 맑고 시원한 공기까지 더불어 주었으니 오늘의 이 가을나들이는 우리에게 축복이면서 한편으로 행운이었다.
22번 국도에서 영광 지방도로로 접어들었다가 축제장으로 들어섰다. 연도 양쪽에 조성한 상사화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듯하였다. 전국 최대의 상사화 군락지라더니 10년 전쯤 왔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이번 축제가 22회(9월 16일~25일)라는데 그 동안 얼마나 발전하였는지 짐작이 갔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축제장을 들어가는데 3시간이 소요되기도 하였는데 오늘은 지체됨이 없이 바로 축제장까지 들어가서 자원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시간은 10시쯤 되었다. 광주에서 출발하여 1시간을 달려 온 것이다.
주차를 마치고 임시로 설치된 화장실에서 용변까지 마쳤다. 불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된 빈 천막이 있어서 김재일이 손수 끓여 온 수제 녹차를 나누어 마셨다. 나는 두 잔이나 마셨다.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코로나 방역 설비(소독수 살포)>를 통과하였다.
불갑사(佛甲寺) 일주문(一柱門)에서 합동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에 많았던 호랑이를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에서 포수부대를 동원해 다 잡아가 버리고 한국산 호랑이의 씨가 말라버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호랑이를 잡았던 곳이 이 불갑사였기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여기에 호랑이 생포 기념물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호랑이 기념물을 배경으로도 사진을 찍었다. 또 외국인 3사람이 민속복장을 하고 공연을 하고 있어서 우리도 그들과 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천 원짜리 몇 장을 상자에 넣고서)
상사화에 얽힌 전설을 소개하면, 옛날 금슬이 좋은 부부가 늘그막에 딸을 얻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며 백 일간 탑돌이를 하게 되었다. 그 절의 큰스님의 수발승이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연모의 정을 품었으나, 스님의 신분이라 표현하지 못하고 상사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는데, 큰스님이 이 수발승의 시신을 거두어 무덤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듬해 스님의 무덤에 꽃대가 나오더니 붉은 꽃을 피우고, 꽃이 진 후에 잎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꽃무릇>을 사람들이 꽃과 잎이 서로 함께 맞나 보지 못하고 그리워한다고 꽃의 이름을 <상사화(相思花)>(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상사화 정원으로 들어갔다. 단풍나무 숲에 조성된 상사화 단지는 그늘진 곳과 볕이 비치는 곳의 꽃 색깔의 차이가 확연하였다. 그늘진 곳은 아직도 싱싱함이 남아 있었지만 볕이 잘 드는 곳은 지금이 상사화 축제의 막바지여서, 축제가 시작된 지 벌써 4일이 지나니까 시든 꽃이 많이 생기고 빛바랜 꽃도 많아져서 꽃의 싱그러움은 느낄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하얀 꽃가루가 연기처럼 날리기도 하였다.
개천을 따라 길게 뻗은 상사화 단지를 지나 불갑사에 도착하였다. 불갑사 정문에서 또 합동 사진을 찍었다. 사찰 경내로 들어갔다. 지금도 절은 상사화까지 곳곳에 어울리게 배치되어 짜임새가 더욱 돋보였다. 불광보조(佛光普照)라는 현판이 나왔다. 월전이 무슨 뜻인가를 물었다. 내가 해석하기를 <부처님의 빛이 널리 비추게 하소서!>라고 하였는데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830호)에 도착하였다.
아주 특별한 대웅전이다. 이 대웅전은 불갑사 창건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서 중건되었는데, 불갑사 대웅전의 특징은 불단(佛壇)이 건물 정면을 향하여 있지 않고 측면에 위치하여 남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단의 측면 배치 양식은 대웅전 지붕 용마루 중앙의 보탑(寶塔)과 한 쌍을 이루는 것으로써 남방불교 양식이 전래된 것이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의 삼존불을 봉안하였고, 불단 위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닫집(天蓋천개)을 설치하였는데 닫집 천장에는 용들과 연화봉, 구름과 극락조들이 현란하게 날아다니며 불국토를 재현하고 있다. 불갑사 대웅전은 조선후기 사찰건축의 수작(秀作)으로서, 건물의 정면과 남측 면 창호는 모두 화려한 꽃살문과 교살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연화문(蓮花紋), 보상화문(寶相花紋) 등의 창호는 정교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 불갑사에서 조금 떨어진 해룡중학교에서 20여 년을 근무했던 김재일의 증언에 의하면, 자기가 해룡중학교에 근무했을 때, 와 본 바로는 분명히 대웅전의 불상이 대웅전의 정면에서 앞을 보고 존치되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와 보았을 때는 측면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절에 문의 하였더니, 1985년에 지금과 같이 바꾸어 놓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증언하였다.
윤정남이 대웅전 앞에 있는 당간(幢竿, 깃발을 거는 장대) 지주(支柱, 당간을 받쳐 세우는 기둥)를 보고 무엇인가를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사찰에서 법회가 있을 때, 이 당간(幢竿)에 걸개를 걸어 놓고 법회(法會)를 알리거나, 이 당간(幢竿)에 탱화(幀畵)를 걸어 놓고, 신도들을 야단(野壇)에 모아 법석(法席)을 열었다고 말해 주었다. 즉 탱화(幀畵)를 걸어 놓고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열었다는 것이다.
절에서 나와 절의 3시 방향 옆문(방위상으로는 남문)으로 나와서 <불갑저수지>로 갔다. 이 저수지 길을 타고 계속 올라가면 이 산의 정상인 <연실봉(516m)>이 나오고, 연실봉을 넘어 <구수재>를 내려가면 함평군의 <용천사>가 나온다.
우리는 <불갑저수지>에서 되돌아 내려오다가 점심 먹을 곳을 물색하였다. 박남용이 영광에서 동물병원을 하는 제자들에게 수소문하였더니, 법성포에 있는 <일번지> 한정식을 골라 주었다. 그 <일번지> 한정식 집으로 전화를 하였더니, 한정식 한 상(4인 기준)에 6만원(1인당 15,000원)부터 있다고 하였다. 예약을 하려고 하였더니 예약을 받지 않고 오시는 데로 드실 수 있다고 하였다. 두 번이나 약속을 받고 30분 이상을 달려(40km), 법성포 <일번지> 한정식으로 갔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 하는 말이 갑자기 버스 손님이 들이 닥쳐서,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어찌 이런 법이 있단 말인가? 전혀 상도덕에 맞지 않는 천하에 무도한 자들이어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나왔다. 그리고 근방에 있는 식당가로 갔다.
식당가에는 공영주차장도 있고 제법 한가한 곳이었다. 마침 주차장에서 건너다보니 한 식당이 눈에 띄었다. <삼형제 푸줏간>으로 들어갔다. 단품 메뉴들이 있어서 훑어보았더니 ‘한방왕갈비’(13,000원)가 먹을 만해 보였다. 그것을 주문하였다.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먹을 수도 있었다. 숯불에 살짝 구운 갈비 두 대를 넣고 인삼과 대파를 넣어 육수에 끓여서 국물 맛도 일품이었다. 7명분 91,000원을 계산하였다. 법성포 <일번지> 한정식에서 먹었다면 두 상에 12만원을 지불하였을 것인데, 여기서 갈비탕을 먹으니 29,000원이 더 절약되었다. 상도덕이 제로인 법성포 <일번지> 한정식의 안 좋은 이미지를 이것으로 상쇄하고 광주로 돌아왔다.
첫댓글 우리들의 불갑사 상사화축제 나들이 예쁜 사진 동영상 곁들여 세세한 기록 , 그리고 운전하느라 수고 많아 우리 모두 잘 다녀왔네 수고 했고 고마우이
7년(?)전인가 가족나들이에서 들린적이 생각났다.
꽃밭의 면적이 더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석과 동명의 수고 덕에 잡담과 정담을 제한없이 나누다 보니 하루는 너무 짧은 듯했다.
함께하지 못한 벗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