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밝게 더 기쁘게
성지주일인 오늘을 시작으로 이제 성주간이 시작됩니다. 일년 중 전례의 절정이고 핵심을 담고 있는 만큼 많은 분들이 이 시기의 전례에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 중의 성주간이지만 고통, 수난, 죽음만 묵상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기쁨 또한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기쁨, 수난에 동참한다는 기쁨은 우리 신앙의 저변에 늘 깔려있어야 합니다.
성지주일에서 핵심이 되는 전례는 행렬입니다.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옷을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처럼 십자가를 앞세우고 주님을 뒤따라가는 행렬은 우리 신앙 여정의 축소판입니다. 임금으로 오시든 사형수가 되어 가시든 우리들의 믿음은 한결같아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같은 관점에서 본다는 말입니다. 같은 방향으로 가야하고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측면에서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때론 내 생각과 다른 길이 펼쳐진다 하여도 믿는다면 내 판단과 생각을 접을 수 있습니다.
어제 뒤뜰에 창고를 만드려고 황베드로 형제님과 정다미아노 관리장님과 함께 트럭으로 코스트코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에서 타서 두정동 성당까지 갔다가 차암동쪽으로 향하게 길안내를 했었습니다. 오는 길에도 그리 오려고 했는데 황베드로 형제님께서 아시는 길이 있다하면서 차를 돌려 가시는데 신호도 없고 막힘도 없는 더 좋은 길이었습니다. 그 두분은 코스트코를 처음 가는 길이어서 제가 안내하고 오는 길은 천안 토박이 두 분이 가신다하니 저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믿고 편하게 잘 올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로 가는 행렬, 의심의 여지 없이 하늘나라 토박이 예수님께 믿고 맡기고 가는 길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 군중과 제자들은 왕처럼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호하고 뒤따랐지만 십자가의 길은 실망과 절망, 좌절과 그에 따른 분노, 욕설과 조롱, 주먹질과 손가락질, 돌팔매질, 배신과 배반, 외면으로 돌아섰습니다. 구약의 배신과 배반의 역사를 뻔히 알면서도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우리도 이와 같은 성경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한결같은 신앙을 고수하지 못하고 알면서도 죄를 짓고 외면하고 불평 불만으로 돌아서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늘 주님의 용서와 자비로 끝납니다. 그리고 다시금 일어서는 성경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를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발씻김을 받고 새 계명에 대한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묻습니다. 라틴어로 “쿼바디스 도미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시니 베드로는 왜 갈 수 없냐고, 주님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을 예언하고 슬프게도 이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의 마지막에 베드로는 박해받는 로마를 떠나려고 합니다. 그 길에 빛으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 옛날에 물었던 질문을 다시합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나는 네가 버리고 떠나는 저 로마의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러 다시 간다.” 이에 베드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로마로 돌아가 체포되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합니다.
처음엔 따라갈 수 없었던 베드로이지만, 그리고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이지만 나중에는 주님을 안다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순교하게 됩니다. 우리도 인생의 여정이 순례의 여정으로 바뀌고 내 길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이 때론 나의 의지가 아닌 것 같고 내 뜻,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옆길로 새곤 합니다. 오늘 저 성지가지를 바라볼 때마다 주님의 길을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길은 곧 주님께서 가신 길이고 주님의 뜻은 곧 내 뜻으로 받들고 뒤따르는 믿음이길 바랍니다. 주님과 같은 길에서 주님의 나라를 함께 바라보도록 합시다.
첫댓글 "나는 네가 버리고 떠나는 저 로마의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러 다시 간다.” 이 말씀에 눈물이 핑~돕니다.
주님~
언제나 주님의 시선을
따를 수 있는 지혜를
청합니다. 아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저도 아직까지 이런 질문을 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제가 갈길을 여쭈며 살아가길... 아멘...
꾸준히 한걸음씩 만이라도 따라갈수있는 은총청합니다.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