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밝게 더 기쁘게
오늘 성 목요일은 성품성사와 성체성사가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 목요일에 모든 교구 사제들은 주교좌 성당에 모여 성유축성미사를 하는 중에 충성서약을 하면서 서품 때 했던 약속을 갱신합니다. 어찌보면 성품성사를 받은 모든 사제의 축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사제들이 그 의미를 되새기기보다 축하받는 것에 급급한 모습들이 꼴보기가 싫어 미사 후 교우들이 꽃다발 주고 식사대접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사제가 서품 때에 축하받았으면 됐지, 서품기념일이다, 생일이다, 축일이다, 사제성화의 날이다, 성품성사 제정된 날이다 하면서 이런 걸 다 챙겨받고 있나 좀 한심하게 생각합니다. 2시간 가까이 하는 미사에, 한시간 반을 걸려 가고, 왕복 3시간입니다. 주차장에서 차 빼는 데만 30분이 걸렸습니다. 그 고생을 교우분들에게 시키기 싫어서 매년 저 혼자 가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비가 오는데 차에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고 주차장까지 오고가며 추워 떨고 성유 받느라고 줄 서 있다가 혼자 오는 길에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괜히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에, 제가 결정해놓고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도착해서 몇몇 교우분들이 케잌에 선물주며 축하해 주시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김주교님도 오늘 강론 중에 아예 공식적으로 사제가 축하받는 날로 말씀하신 만큼 다음에는 저도 공적으로 축하 좀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영적인 의미는 챙겨야겠지요.
오늘 성유축성 미사 중에 성체를 영하러 나가는 길에 아주 특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초연한 마음이라고 할까... 세상 사는 게 참 부질없고 별볼일 없다... 나는 주님 성체를 영하러 나간다... 제가 성체를 보통 분배하러 가지 영하러 가는 것은 자주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오랜만에 제대 위로 성체 영하러 가는 그 기분을 특별하게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에 걷는 길이 아니라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85kg 나가는 제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허공을 떠 있는 듯 했습니다. 참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그 길 부터가 주님께로부터 축하를 받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성체가 얼마나 값지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우리 모두 성체로 주님의 섬김을 받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먹혀지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섬김은 우리에게 사명처럼 주어집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요한 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다 있는, 최후의 만찬이 있는 그 자리에 발 씻기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성체성사의 의미는 발을 씻기는 것처럼 섬김의 모습입니다.
저는 올해 발씻김을 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발을 씻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말씀드릴 때에 “아이고~ 신부님! 저는 예전에 해서요... 신부님, 저는 불편해서요... 신부님, 저는 아니겠지요...” 그렇게 여러 교우분들에게 거절당하고 이제는 지쳐서 없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러고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내가 성체성사를 살지 못했구나...
오늘 복음 마지막 말씀,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본받을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본을 보인 사람은 본을 보인 것으로 끝나야 한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배우는 제자이고 사도직을 수행하는 만큼 주님을 모방하고 주님을 본받고자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처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먹혀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처럼 섬길 수는 있습니다. 섬김으로의 성체성사를 살지 못해 후회하고 반성합니다.
첫댓글 주님을 모방하고 주님을 본받고자 따르는 사람인것을... 아멘...
교우들을 고생시키기 싫어서 혼자가셨다는 신부님의 마음 감사하고존경스럽습니다. 다른 신부님들도 우리신부님같은 마음이였으면 좋겠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