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에서 - 유럽 대륙횡단기(45)
* 루체른 → Sascheln 23.2K m
* 작셀른 →(Lungern)→Brünig Pass 23.7Km
* 브뤼니크파스 → Interlaken 25.7Km
※ 스위스 - 8일, 232.3Km ♣ 누계 - 총 123일, 3,373.4Km
비에 젖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혼자 걸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사랑과 용서는
폭우처럼 쏟아지게 하시고
미움과 분노는 소나기처럼 지나가게 하소서
천둥과 번개소리가 아니라
영혼과 양심의 소리에 떨게 하시고
메마르고 가뭄 난 곳에
주저 없이 내려
그 땅에 꽃과 열매를
풍요로이 맺게 하소서
언제나 생명을 피워내는
봄비처럼 살게 하시고
누구에게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단비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 이 세상 떠나는 날
하늘 높이 무지개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 양광모 - '비 오는 날의 기도'
먼저 루체른 낙수로 시작하련다.
어제 해질 무렵에 마침 시간이 남길래, 스위스 시계의 본고장이라니 시내를 서성거리다가 혼쭐이 났다.
혼쭐이야 물론 오스트리아의 티롤부터 거듭되긴 했다.
이번은 지형이 아니고 기상이었다.
유럽에서 나그네 길이 위험하기는, 동유럽은 집시 등 사람 때문에 중 유럽에서 알프스를 만나면 자연 때문이다.
불현듯 서쪽 하늘에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혼비백산 숙소로 뛰어 들었다.
격렬한 뇌우((雷雨)를 만났던 거다.
지대가 약간 높은 숙소의 카페에 앉아 발빠른 판단에 안도하고 있었다.
일진광풍이 휘몰아치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기습적인 물폭탄으로 천지는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게다가 행인들은 우산마다 다 뒤집힌다.
동서남북 사방이 알프스 산지로 둘러쌓인 분지 안에 모든 시내가 마치 지진처럼 흔들거리는 느낌이었다. 경천동지 천둥번개와 장대비는 마치 석달여 전에 세르비아의 수메데레보 초입에서 당했던 기상 돌변과 흡사하다.
루체른의 기억은 아무래도 주변의 절경보다 고약한 날씨가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사실 머나먼 길에서 빗속을 걸으면 기분이 흥분될 때도 있다.
발걸음은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야릇한 쾌감에 빠지는 거다.
어제처럼 호우성이 아니라 조용히 내리는 비라면 더욱 그렇다. 오래오래 계속되는 빗속에서 모든 걸 체념해 버리면 짐짓 비를 즐기는 경지에 들어간다. 배낭 커버도 소용없고 판초 안에 옷은 물론 신발 양말까지 다 젖어도 모든 게 익숙해진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는 바람보다 서정성(抒情性)이 더 많아서 그럴 테다.
만약 우중에 워킹이 은연중 즐거우시다면 나그네로선 분명 덕후(德厚)의 경지에 들어가신 경우시리라.
비보다 바람, 그래서 세월을 풍상(風霜) 또는 풍파(風波)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인생길 자체가 고단한 나그네 길이므로~~
어쨋거나 바람이나 비는 유랑 천리 나그네에게 소위 '병 주고 약 주는' 애물단지 그 이상이다.
실은 이런 경우를 오스트리아의 멜크에서 린츠로 가던 날(29편) 네델란드의 속담으로 전하기도 했다.
'비에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므로 그대가 진정 머나먼 길 나그네라면 끈덕지게 내리는 비를 다만 기피의 대상으로만 여길 일은 아닐 테다.
사설이 길었다.
루체른~인터라켄 73Km를 도중에 2박을 하고 또 인터라켄에 들어간 이야기다.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에서'
루체른을 출발해 슈탄스(Stans)→작셀른(Sascheln)→룽겐(Lungern)→브뤼니크 패스(Brünig Pass) 등 산동네를 차례로 지나왔다. 이번은 대부분 산지를 지났지만 운좋게도 마을마다 거리가 적당하다.
장거리 나그네가 하룻길이 23~5Km 정도면 가장 이상적인 컨디션 아닌가.
하므로 거리도 부담 없고 주변 경관 역시 수려하다.
루체른의 언저리를 다 빠져 나와도 여전히 호숫가다. 연 3일간 호반을 지나간다. 그닥 별다른 변화가 없다.
사람 눈이란 참으로 호사스럽다. 이다지도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도 무감각해지다니~~
과연 호수란 무엇일까, 여기서 생뚱맞게도 호수의 지형학을 한번 거론해 볼까 싶어도 앞으로 호수는 거듭 만날 터이다. 곧 인터라켄에 들어갈테니 거기서나 한번 시도해 볼 거나?
작셀른에서 1박을 하고서 일찌감치 출발하니 길은 동네 한복판을 지나 산등성이로 어어졌다.
일변 물가에서 산으로 올라온 거다.
저멀리 은빛 호수를 안은 스위스의 향토가 참으로 아름답다. 산등성이에서 모퉁이를 돌아 내려가 보니 발군의 비주얼은 선경(仙境)같이 계속이다. 걷는 방향 앞으로 새파란 풀밭이 아득하다.
평평한 노면은 자갈도 없이 빵가루처럼 부드러운 흙이 단연 명품 길이다. 바로 전형적인 스위스 알프스의 산상 목장 한가운데로 지나간다.
다만 일진이 나빴을까? 또 다시 오금이 저리는 공포를 경험했다.
누가 스위스를 아름답다고 만했나?
눈덮힌 알프스를 배경으로 녹색의 산록에서 소떼 양떼가 노니는 모습은 분명 스위스의 명물이다. 세계의 관광객들이 스위스를 동경하는 랜드마크임에 틀림없다.
시초는 건너편 언덕에 그림 같은 비주얼에 도취해서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걸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영상 만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 모습도 있더라.
거기를 직접 걸어가 보니 현실은 전혀 딴판이라 생명의 위협으로 혼이 날 때가 있다. 바로 그런 경우다.
스위스의 산비탈은 토질이 대체로 부드러운 점토성인 경우가 흔하다. 우리 같으면 집중호우에 금방 산사태나 일어날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길은 그 한가운데로 가로질러 나 있다.
평지라면 넓디넓게 느껴질 길이, 경사가 심한 비탈에서는 비좁은 오솔길로 착시가 일어난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이 두 발로 걸을 때 편안한 길폭은 얼마여야 할까?
평지라면 아마 6~70Cm면 넘칠 테다. 그게 만보기, 건강한 성인의 보폭이기도 하니까.
과연 스트레스란 사서 고생인가?
다급한 경사지 한복판을 룰루랄라 신나게 걷다가 문득 주위로 시선이 갔다. 산상에서 시작된 초원은 저 아래 계곡까지 6~700m 가량 내리뻗었다. 드넓은 경사지는 나무도 없이 깨끗해 의지할 건덕지도 없다. 목장에 소나 양이나 짐승이라도 있었으면 의지라도 되련만 어쩐지 그들마저 없다.
불현듯 불안이 엄습한다. 갑자기 길도 좁아터져 보이고 깨끗한 풀밭도 마치 유리 바닥처럼 보인다.
못할 말로 여기서 어제 같은 일진광풍을 맞닥뜨리거나 설령 다리라도 꼬여서 넘어진다면 어찌 되나? 물론 암반 투성이 저 아래 500m 이상 계곡에 쳐박히고 말 것이다.
갑자기 몸이 휘청거리고 스틱을 잡은 양손도 다리도 떨린다. 마치 난간도 없이 출렁거리는 다리를 지나는 기분이다. 온몸이 쩌릿해서 참을 수 없이 공포스럽다.
하지만 나그네의 절체절명은 후진이란 없다. 무조건 앞으로 이판사판 사투뿐이다.
그런 상황을 순간이면 몰라도 무려 한 시간이나 전전긍긍 지나야 했다.
공포의 산록 목장을 간신히 그렇게 통과했다. 오~! 하나님!
대저 십년감수란 바로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 테다.
세상에 공짜 구경이란 없는 걸까. 스위스의 명품 목장을 지나다가 수퍼 하이 스트레스란 톡톡한 대가를 치뤘다. 그러니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다'는 교훈을 제대로 느낀 셈이다.
천신만고 끝에 전율의 초원을 벗어나니 드디어 집 몇채가 보인다. 목장의 주인 집인가 본데 인적은 없다.
거기서부턴 평범한 숲속 산길이다.
천우신조가 따로 없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면 자연히 신을 찾게 되는 모양이다.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하자. 아울러 부디 자연에 겸손하고 아울러 인간에게도 겸손하자.
룽겐(Lungern)은 브뤼니크패스로 올라가는 710m 산기슭에 자리 잡았다.
산속에서 호숫가로 빙 둘러 앉은 마을 뒤로는 저멀리 그로테스크(기궤)한 산봉우리 두, 셋이 우뚝 섰다. 참으로 스위스 다운 모습이다. 마치 이 나라에 입국해 3 일째 루체른으로 오던 날 고개에서 쌍봉 비주얼을 닮았다.
오늘은 공포뿐만이 아니구나, 도중에서 또 다시 천하 절경을 만나는구나.
어찌 여기 뿐일까?
스위스에 들어와서는 연일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빠져서 걷고 있다.
과연 스위스의 애칭이 '자연이 선물한 나라'로 불리기에 걸맞는 경관이다.
사실 스위스를 지나면서는 슬며시 샘이 난다.
신은 스위스인들이 뭐가 그리 예뻐서, 어찌하여 이다지도 아름다운 자연을 주셨을까?
이르는 곳곳마다 산천의 미학이 눈부시니 참으로 복받은 사람들이다. 스위스라면 무려 넷 민족이 어울려 사는 나라지만 국토의 자리 한번 기막히게 잡았다.
하지만 우리는 스위스처럼 영양가 많은 국토를 받지 못해 너무 안타깝다.
애국가는 후렴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 노래하지만 땅을 파도 금이 쏟아지나 석유가 나오나?
거기다 국토는 분단까지 되어 있지 않던가.
아름다움은 하나의 힘이다. 아름다움을 이기는 무력은 없기 때문이다.
이곳 스위스의 자연이 이를 증명한다.
스위스처럼 국토적인 아름다움이란 단순한 낭만을 넘어 국력의 중요한 바탕이리라. 이 나라의 관광산업을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하기사 아름다운 문화 역시도 같은 맥락이겠지만, 거기까지 거론하면 또한 지루해지겠다.
최근에 우리는 글로벌 경제에 긍지가 많아도, 더 나아가 대중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중이다. 하지만 그건 신의 선물이라기 보다 우리들의 치열한 생활력의 과실이리라.
그에 비해 이 나라는 가만히 앉아서 산천경개로 국력을 과시하지 않던가.
다만 신은 대체로 시샘이 많아서 일단 내린 선물에 감사를 모른다면 금방 되빼앗아 간다는데, 과연 스위스인들의 공양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암튼 아름다운 자연 못지않게 문화까지 덧씌운다면 무시 못 할 국력일 테지.
룽겐은 아름다운 자연에 비해 유감스럽게도 그닥 정감이 가지 않는 마을이다.
시골인데도 주민들은 도시풍인지 무언가 사무적이고 인정도 냉랭하다.
어쩌다가 이 동네 진짜 양반(?)을 제대로 못 만나 그럴까?
이를테면 무대야 훌륭하나 배우의 연기가 부족한 측면이다.
오직 마을에 처음 진입하던 순간에, 거울같이 맑은 호수 위에 꺼꾸로 비친 천하 절경의 유혹(?) 만기억하자.
동네를 지나니 이후는 다음 마을로 가는 오르막이다.
그리고 무성한 수림이 끝없이 이어졌다.
브뤼니크패스(Brünigpass)까지 올라왔다.
해발 1,000m의 산속에 자리잡은 고갯마을이다.
행정적으로는 스위스 26개 주 중에서 옵발덴(Obwalden)주와 베른(Bern)주의 경계선이다. 예로부터 중앙 스위스와 북부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두 고개(Grimsel Pass, Gries Pass)가 지나는 루트의 일부였단다.
아울러 스위스 철도와 고속도로도 지나가는 고지대 부분이다. 지나온 오스트리아 티롤의 풍정(風情)을 살짝 닮은 분위기다.
실은 지금 지나고 있는 일대는 스위스의 중앙 고원(스위스 고원, Swiss Plateau)에 해당한다. 물론 수일 전에 래퍼스빌에서 취리히호를 건너면서 이미 시작된 모습이다. 거기다 3~4일 후에 베른을 지날 때까지도 이 고지대의 동남쪽 측면을 빙~돌아서 가는 셈일 테다.
만약에 여기가 아니고 루체른에서 베른으로 직진했더라면, 이 중앙고원의 서북쪽 변두리를 지나고 있을 테지~~
이 일대는 또 달리 베른 고지대(Bernese Highlands)라 부른다. 독일 말이면 베르너 오버란트가 된다.
다만 지나는 도정(道程)이 능선이 아니라 주로 저지대를 통과하므로 산천 경개도 변화무쌍하고 언덕과 계곡이 반복되는 숲지대 일색이다. 아울러 산속에서 심심하면 크고 작은 호수도 나타난다. 그러니 나그네의 눈이야 연일 호사를 누리는구나.
달리 따져보니 누구나 아름답다는 스위스, 그 정곡을 지나는 모양이다.
스위스에 들어와 첫날 기록에 국내의 산책길(원더벡) 네트웍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살짝 운만 뗀 바가 있다.
필자는 평소에 한국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포르투갈에 편중하는 경향을 안타까와 하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해외 트레킹 역시도 히말라야 네팔 트레킹은 흔해도 유럽의 알프스 주변은 드문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개들 비용과 시간을 이유로 삼으실테지만, 그건 마음먹기라 판단된다. 기왕에 해외에 도전하실 능력이라면 스페인 보다는 약간의 지줄이 늘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부디 해외로 나가는 우리들의 목표 역시도 글로벌 경제력에 부합되게 다변화 되었으면 좋겠다.
암튼 유럽에서 아름다운 길이라면 이곳 스위스 말고도 도처에 널려 있다. 이곳 베르너 오버란트의 트레킹 역시 스위스의 원더벡에 해당할테니 기록의 맥락을 위해서, 다음 편에서 〈부기〉로 첨부하련다.
아마 다음 편은 알프스 관광 이야기가 거론되지 싶기도 하지만.
딱 한 달 전에 오스트리아 길바닥에서 조우한 한국 자전거족 청년이 생각난다.
그가 묻기를~~
"지금 이 길이 비엔나로 가는 길 맞아요?"
대답을 "그래 맞아요. 앞으로 길이 참 아름다와요" 했더니 그는 땡큐보다 반사적으로 되물어 왔다.
"스위스 가보셨어요?"
자기는 자전거로 로마의 미켈란젤로 공항에 내리자마자 스위스를 지나 거기까지 왔노라 했다.
필자 역시 반사적으로 느낌이 왔다. 한국 청년 기개 한번 멋지시구나.
세상에 길을 물어 놓구선 감사보다 먼저 '당신은 거기 가봤냐?' 식이니~~
나름대로 자기는 스위스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왔다는 자랑(?)을 해보고 싶은 분위기였다.
나는 그만큼 아름다운 나라도 지나왔다는 긍지, 물론 그의 미학엔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훨씬 앞서 불가리아를 지날 때 길바닥에서 조우한 독일인 자전거족 친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는 두 발로 걷는 거고 우리는 기계의 힘을 빌려 가는 거 아니냐' 했듯이, 과연 그가 이다지도 업다운이 반복되는 산속을 과연 자전거로 잘 내달렸을 지는 모를 일이다.
등산가들은 대개 개활지의 암벽에 올랐거나 정상에 다다르면 '노출 되었다'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인적도 없는 깊은 산속을 오래오래 걸어보면 참으로 실감이 간다.
노출, 만약 조난을 당한다면 구조를 기다리는 간절함 아니겠나.
유럽은 사람을 공격하는 짐승도 드물지만 깊은 수림 속에선 누구보다 존재감을 알리고 싶어진다.
그런 기분은 지금의 외진 산속보다 하늘 아래 지평선이 더욱 절실하다.
혼자 나그네가 길바닥에서 무섭기로는, 이렇게 무인지경 산속보다 아득한 지평선이 훨씬 더하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밀밭 해바라기밭 등을 지날 때, 하늘 밖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경우는 망망대해 한복판에 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 존재 알리기, 바로 알피니스트나 장거리 보행자들이 의상과 배낭 등 코디를 원색으로 선택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건너 뛰었다. 브뤼니크패스에선 호텔 레스토랑 Waldegg(60€)에서 묵었다.
앞서 룽겐에서 점심을 먹다가 식당 주인에게 예약을 부탁한 집이다.
하루 종일 오르막 산속을 힘들게 지났기에 다소 한가함을 누리고 싶었다. 숙소는 산속에서 웬 현대식 건물로 실내가 널찍널찍 럭셔리하다. 우리라면 대관령 같은 영취락(嶺聚落)이라 자동차로 여행하는 투숙객 등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2~3,000m 고봉들로 둘러싸인 고갯마을이지만 교통수단에 의한 여행객도 흔한 경우다.
여기서 인터라켄까지는 25~6Km 하룻길이다. 거기다 내내 오르막이었으니 앞길은 내리막일 테다.
하므로 인터라켄은 한낮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물론 산속이라 앞길의 컨디션 여하에 달렸겠지만,
간절한 기도는 갈래길에서 길을 물을 때 만이 아니다.
부디 전도가 축복이기를 빌자.
이른 아침에 나서니 산속은 짐작한 대로 계속 내리막이다. 시작은 다소 험난하지만 부디 나중은 좀 쉬우려나...?
하면 이런 길을 반대로 올라오는 사람들은 쌩고생을 하겠구나.
얼마를 내려가다가 서두른 출발로 혹시 빠진 게 없을까 문득 의심이 발동한다. 배낭도 점검해 볼 겸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멈추고 있는 중에 웬 서양인 커플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이게 얼마 만이야. 길바닥에서 실로 간만에 인간도 만나는구나.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 중에 남자쪽은 다소 뜨악한 표정이다. 여자는 빨래가 덜 말랐던지 배낭에 셔츠를 매달았고 둘이는 총알처럼 지나친다.
아침부터 저들은 뭐가 그리 급해서 저리도 멋대가리 없이 내달릴까?
까다로운 내리막이 끝나고 길은 부드러워졌다.
한국으로 친다면 아마 심한 깔딱고개를 내려온 모양이다.
이른 아침에 숲속은 평화롭다. 이슬을 먹은 노면과 숲길은 발길을 신나게 만든다. 모든게 서정적이고 생명감이 약동한다. 끝없는 고요와 적막 속에서 인근 마을의 사람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짐작에 아름다운 숲은 거의 끝나가나 싶었을 때 문득 저 앞에 숲 사이로 뭔가 어른거린다.
다가가 보니 좀전에 화급한 커플이 쉬고 있다.
그들은 물건을 흘린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말없이 다가가면서 좀 전에 길바닥에서 줏은 셔츠를 흔들이 보이니, 여자는 반사적으로 배낭을 살피더니 깜짝 놀랜다. 그리고 남자는 일변 공손 모드로 달라졌고 여자쪽은 감사의 연발이다.
알고 보니 참으로 순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베를린에서 왔다는데, 휴가철마다 조금씩 걸어서 결국 산티아고까지 갈 거란다. 그제서야 그들이 아침부터 바람처럼 내달리는 이유를 알았다.
부디 스위스의 깊은 수림에서 만난 금슬지우(琴瑟支友) 부부의 전도를 축복하자.
아무러나 브뤼니크 고개를 넘어 인터라켄으로 가는 내리막은 참으로 아름답다.
기나긴 산속을 벗어나니 바로 앞에서 시야가 훤히 트이면서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필시 저 끝에는 인터라켄이리라. 일로 내달리면 얼마나 걸릴까?
호반 마을 브리엔츠(Brienz)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아침 8시에 나섰으니 산속에서 10 여Km 정도를 달리듯 부리나케 걸어온 셈이다. 하면 앞으로 인터라켄까지는 16~7Km가 남는다. 서울의 한강변이면 여의도 국회의사당 옆 강변남로를 따라 잠실 종합운동장 못미쳐 청담대교까지 거리쯤이다.
호수도 아름답겠다 오늘의 목적지도 바로 앞이니, 이제부턴 또다시 바람처럼 내달릴 수도 있겠다.
이곳 브리엔츠는 호수 유람선의 기착지 종점쯤이다. 사람들이 다소 북적대는 읍내 같은 동네라 공중전화 카드도 구입하고 물가 까페의 야외 파라솔에 앉아 간단한 요기도 했다.(그땐 전 스마트폰 새대였음)
사실 여기는 특별히 기억도 생생하다. 그 3~4년 후에 카페의 안드레아님 공덕이다.
님께서는 '헝가리길' 도중에 바로 이 곳을 지나시다가 물가 까페에서 필자의 기사('스페인과 까미노 즐기기' 2016년 4월)를 읽고서 덧글을 달아주셨기에, 마침 잊혀져가던 기억을 소환시키신 동네다.
어쩌면 안드레아님이 앉았던 까페와 파라솔이 필자의 경우와 같을 지도 모르겠다.
※ 엊그제 핼러윈 때 서울 이태원에서 구만리 같은 청춘을 남겨두고서 우리 곁을 일찍 떠나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 마지않습니다. 언젠가 다들 시간 등 사정이 허락된다면 스페인의 산티아고길을 걸어 볼 거야, 꿈을 가졌을 분들이라 생각하니 더욱 애도합니다.
아울러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신 유족분들의 애통을 진심으로 위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