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신앙은 늘 바람직한가?
‘목회’라는 말은 영어의 ‘pastoral care’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돌봄의 사역을 일컫는 말이다. 즉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와 진전을 위해 돌보는 일련의 일들이 바로 목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라는 말은 또한 ‘목양’이라는 말로써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교회의 성도들을 돌보는 것이 바로 목회사역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의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는 현대의 사회구조와 문화 가운데서 목회적 돌봄은 현실적으로 여러 곤란에 처하곤 하는데, 단적으로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갈수록 곤란한 형편이다. 과거와 같이 목회자에 의존하는 신앙 문화가 사라지고, 성도들 개인의 사생활이 더욱 중요시 되는 문화 가운데서, 성도들 개인이 그 마음과 형편을 열어 보이지 않는 이상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파악하고 진단하는 것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더구나 성도들의 상태를 어찌해서 파악한다고 해도, 성도들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이 될 것으로 보이면 스스로 은폐하거나 도피해버리기 십상인 현대의 기독교 구조 가운데서는, 사실상 ‘치리’든지 ‘권면’이든지 온전하게 시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어떤 식으로든 목회자와 인격적인 신뢰의 관계를 맺지 않는 이상, 개인 사생활일 수 있는 영적인 상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엄연한 현대사회의 목회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가운데서 영적인 지식, 혹은 신앙의 지식 또한 개인적 문제로만 다뤄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성경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도 신자 개개인의 주관에 따른 파악과 이해를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성경에 대한 일치(consensus)된 신앙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다만 자기 나름의 주관과 이해에 근거하는 해석이 무한히 열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의 기독교 신앙이 사실상 ‘자연종교’(Natural religion)의 토양 위에 성립하여 있기 때문에, ‘객관’ 혹은 ‘공공성’보다는 ‘주관’ 혹은 ‘사적 경험’의 풍토가 강하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바탕 가운데서, 많은 지적인 신앙인들이 경건의 훈련에 있어 기도와 선행에 더불어서 여러 신앙 혹은 신학서적들을 읽고 탐구하는 독학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특히 개혁신학과 신앙에 관심을 두는 신자들의 경우에 더욱 이러한 양상이 뚜렷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러한 가운데서 무수히 많은 지적인 호기심과 의문들을 각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 또한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처럼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방식의 신앙에 있어서 한 가지 유의하여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칼뱅에 의해 특히 강조되는 적정과 절도의 원리(Regula modestae et sobrietatis)를 숙지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거나 신학서적들을 읽을 때에, 대부분 직면하게 되는 의문과 질문들은 얼핏 정당하고 타당하게만 이해되겠지만, 사실 그러한 질문들 가운데서 모든 오류와 이단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주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처럼 지나치게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고 신학에 착념하므로 말미암아 발생한 이단들 가운데 특히 소시니안주의(Socinianism)를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적 판단에 지나치게 의지하므로 말미암아 성경 본문과 교리(혹은 교의)조차도 이성적이고 역사적인 근거에 따라서만 이해하고 판단하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특히 소시니안주의 체계에 영향을 제공한 두 명의 평신도 신학자들인 렐리오 소치누스(Lelio Socinus, 1525-1562)와 파우스트 소치누스(Faustus Socinus, 1539-1604) 가운데, 형인 렐리오 소치누스와 관련한 일화가 사뭇 질문하는 신학(혹은 신앙)에 대한 적잖은 경고를 제공한다.
16세기 유럽에서 이탈리아는 문화적 교류와 학문적 교류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나라였었는데, 그러한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렐리오는 일찍이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칼뱅을 비롯하여 멜란히톤이나 불링거와 같은 종교개혁의 신학자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신학적인 논의를 즐겨했었던 인물이다. 그의 학식과 흡인력 있는 대화와 인품으로 인해, 그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친구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렐리오에 대해, 칼뱅은 여러 차례 지나치게 질문이 많은 그의 습성에 대해 권면했었는데, 그러한 질문의 바탕인 지나친 호기심이 결코 신앙과 경건에 유용하지만은 않음을 직시하도록 권고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학식과 지적인 호기심은 어쩌면 뗄 수 없는 연결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나친 호기심이 오히려 오류와 완고함의 기반을 이루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신학교육에 있어서 지도할 수 있는 스승과 모임의 역할이 필연적인 것이며, 또한 신앙교육에 있어서도 지도하고 돌보는 목회자와 치리회로서의 교회와 회중에 속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렐리오는 칼뱅의 권고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1555년에 작성한 그의 신앙고백을 보면, 정통신학의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용어의 개념과 범주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형식으로 작성한 것이어서, 칼뱅을 비롯한 대부분의 개혁신학자들의 우려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그의 동생 파우스투스 또한 독학으로 신학을 수립하여, 그의 무리들[소시니안]을 이끌었는데, 1605년의 라코 요리문답(Racoviam Cathecism)은 그러한 소시니안의 오류들이 보여주는 합리적 특성, 즉 지나치게 이성적 사유와 경험에 근거하는 모든 가치와 판단기준의 특성을 여실히 담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교회사의 양상들 가운데서 드러나는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의 문제점들, 즉 지나치게 호기심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을 즐기며, 그에 대한 아무런 주의와 경계도 없는 신앙인들이 흔히 보여주는 오류와 그에 대한 완고함은,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개혁주의 신앙인들이 이미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하여 여기저기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교회들을 순회하며, 자신이 이미 지닌 선입견에 대한 조금의 차이나 간격도 용인하지 않는 완고함을 보여 도처에서 물의를 빚곤 하는 것을 본다.
그런즉 지금,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며, 그 가운데서도 종종 유익한 종교개혁의 유산들이 번역되거나 소개되는 이 시대 가운데서, 홀로 수많은 책들을 읽고서 의문을 품으며 여기저기 질문하는 신앙인들보다는, 겸손히 섬기고 돌보는 품성을 지닌 목회자에게 오래도록 지도와 돌봄을 받는 가운데서, 질문하느라 차분히 정립해 볼 수 없었던 문제들을 곱씹으며, 비로소 오류를 극복하고 진리로 승리하는 참된 개혁신앙의 풍모를 보일 수 있는 신자들과 목회자로 이뤄진 회중으로 된 교회를 생각해 본다.
첫댓글 겸손히 섬기고 돌보는 품성을 지닌 목회자에게
오래도록 지도와 돌봄을 받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