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주의는 한마디로 “지식은 발견되기보다 구성되는 것”이란 명제로 특징지울 수 있다. 구성주의는 단순히 지식습득과정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의 성격 자체를 근본적으로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급진적 구성주의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사회문화주의는 주로 러시아의 비고스키(Vygotsky)의 영향을 받아 전개되는 이론으로, 우리가 얻게 되는 지식이나 가치는 그 연원이 사회문화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개인이 있기 전에 사회기 먼저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문화적 측면을 간과한 급진적 구성주의를 개인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문화주의는 사회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구성주의란 이 두 입장을 융합한 것으로, 급진적 구성주의의 구성의 측면과 더불어 사회문화주의의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강조한 이론이다.
구성주의의 “맥락”이라는 용어는 학습과정은 지식습득과정이라기보다 삶의 연습과정으로, 학생들이 학습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선택은 삶과 사회와 도덕의 종류 상의 선택이지 그 여부의 선택이 절대로 아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삶의 질을 선택해야 하고, 어찌할 수 없이 사회관계를 선택해야 하며, 또 어찌할 수 없이 도덕관계를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학습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삶을, 대화적 사회관계를, 겸인의 태도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맥락적으로 구성되는 지식은 그 맥락이 다양한 만큼 구성되는 지식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그래서 이런 다양한 구성 중에서 어느 하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릴 수는 없다. 우선 우리는 지식이나 가치에 대해 잠정적인 태도를 취해야 된다. 교과서에 담겨있는 지식이라 해서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보아서도 안 된다. 동료나 학생 혹은 교사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지식이나 가치에 대해 겸손해 하고, 남의 지식이나 가치를 존중하여 자신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통해 그것을 이해하고 장려해주려는 태도를 아이들이 연습할 수 있도록, 교사들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구성주의 교육론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교육에 관한 사고방식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사실 구성주의식으로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식보다 삶이 더 중요함을 사회적 통념이 그 반대인데도 불구하고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또 학습이나 삶은 필연적으로 사회적인 것으로서, 그것이 이상적인 사회관계(대화)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마음 깊숙이”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을 잘 살아야 된다는 것은 구성주의가 시사하는 바일뿐만 아니라 구성주의에 대한 이해의 바탕도 된다.
1.해석학과 구성주의
1.앎과 이해 그리고 구성
우리의 교육은 앎의 문제라기 보다는 삶의 문제임을 그리고 삶이 토대가 되어야 함을 직시해야 한다. 전통적 교육에서는 능동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습득된 지식에 따라 수동적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교육의 성장과 발전 및 진보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삶의 맥락 속에서의 나의 성숙은 찾아 볼 수 없다. 거기에는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고 인간이 발을 디디고 있는 삶의 맥락성은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구성주의에서는 앎 혹은 지식을 “독립된 실재를 표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응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전통적 객관주의의 입장을 거부한다. 전통적 인식론에서는, 진리는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고 그 진리에 이른 유일한 방법을 제시하고 인식의 주체는 그 방법을 따라서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전통적 객관주의 교육관을 비판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구성주의가 있다. 전통적 인식론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패러다임으로 제공되는 해석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언어의 새로운 이해를 통해서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인식론적 입장이 붕괴되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객관주의를 벗어나면서 상대주의 혹은 허무주의로 규정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들을 연구하는 것 중의 대표적인 입장이 해석학이다.
2.해석학과 이해
해석학은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이해의 방식을 해명하는 학문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이해의 본질에 대하여 묻는 이해 자체를 해명하는 학문이라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기존재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대상 혹은 세계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고 동시에 타자나 대상을 이해하지 않고는 자기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데, 자기 존재에 대한 이해는 자신과 타자에 대한 이해이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과 타자를 둘러싸고 있는 해석학적 상황에 대한 이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혹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지평 혹은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수동적으로 상황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황을 변화시켜 가며 변화된 환경 속에서 새로운 자기를 정립시켜 가는, 즉 자기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질적으로 변화시켜가는 동시에 해석학적 상황을 변혁 시키는 실천적 과정을 이해를 통해서 수행하고 있다.
이해를 인간 삶의 존재의 문제와 관련시켜 나가고자 할 경우, 이해 자체를 삶의 풍부하고, 충만하고, 생생한 그리고 복잡한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이해의 해석학은 존재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3.데카르트적 유산 : 주 ․ 객 이원론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정확한 표상으로서의 인식에 대한 개념, 인간 이성은 그 자체 편견, 선입견,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자신감, 우선 인식의 확고한 토대를 확보하고 그 위에 보편 과학의 건물을 세울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의 이상, 자기 반성의 힘에 의해 역사적 문맥과 지평을 초월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물자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이 데카르트주의의 모습들이다.
데카르트에서 객관주의의 전형을 볼 수 있는데, 인식, 진리, 선, 등의 본성을 결정짓는 영원하고 초역사적인 어떤 기반이나 구조의 틀이 객관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 개관주의자들의 철학적 과제는 그 기반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며, 그가 발견한 그 토대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에 있어서의 객관주의의 모습은, 객관적 실재가 “저기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우리 주관들로부터 독립해 있으며, 주관은 객관적 실재를 정확하게 반영하거나 표상할 때 인식이 성취된다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다.
4. 이해와 해석 그리고 적용(실천)
가다머는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실마리를 예술작품과 만나는 경험 혹은 태도에서 찾고 있다. 가다머가 놀이와 예술 작품을 통해서 얻게 되는 진리에 대한 인식은 현실을 단순히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진리 즉 현실이 그 자체로는 가지고 있지 않는 진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해석자는 예술 작품으로부터 초연한 어떤 사람이 아니라 예술 작품이 그에게 말을 건네는 어떤 사람이고, 감상자는 그가 예술 작품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예술 작품에 현재 한다고 할 수 있다.
근대의 주객이원론적 경향은
첫째, 예술 작품의 재현적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에 예술 작품의 배후에 있는 창조의 의도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의 문제 즉 인식론의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곳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 근대의 주객이원론적 경향은 해석학에서의 이해의 상황성 혹은 맥락성을 무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해가 해석자의 관심사나 관점에 따라 일정한 방향이 정해진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다머는 이해 뿐만 아니라 모든 인식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어떠한 선입견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선입견 또는 이성과 권위간의 대립을 부정하고 있는 가다머는 모든 이성은 전통 내에서 기능하고, 우리는 전통이 과거의 죽어버린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 잇는 어떤 것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바를 알려주고 모양 지울 뿐만 아니라 언제나 재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보다는 훨씬 앞서 우리는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잇는 역사 속에서 자명하게 우리를 이해한다. 가다머는 의미를 왜곡시키는 선입견과 의미를 밝혀 주는 선입견을 구별해 주는 가능성을 “시간간격의 개념”에서 찾고 있다. 현재와 과거 사이의 시간간격은 해석학적 과제가 수행되는 역사적 지평이다. 이역사적 지평 속에서 텍스트의 바른 의미는 “결코 완결되지 않은 무한한 과정”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시간간격은 일방적인 성격에 치우친 선입견, 즉 유용하지 않은 선입견을 소멸하도록 할 뿐 아니라, 바른 이해를 가져다주는 선입견, 즉 유용한 선입견을 그 자체로 드러내 준다.
가다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역사는 단지 과거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을 영향사라고 부른다. 따라서 가다머에 있어서의 해석학적 과제란 역사를 영향사로 의식하고 이러한 영향사적 연관에서 전승된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텍스트와 우리가 상호 작용하고 있다는 영향사적 의식은 우리가 언제나 그러한 자기 인식의 도상에 있으며 자기 인식은 타자와의 대화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성취된다. 이렇게 영향사적 의식을 성취하는 것을 가다머는 “지평 융합” 이라고 한다. 지평융합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지평은 확장되고 풍부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형태의 삶과 지평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동시에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된다.
가다머는 이해와 해석 그리고 적용은 모두 이해의 단일한 과정의 계기이기 때문이 세 개의 독립적인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적용이란 이해 현상에 뒤이어 추가되는 부분이나 이해 현상에 따라 그때그때 우연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적용이 처음부터 이해 현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5. 구성주의와 해석학의 연관성
구성주의가 지식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된다는 것에서처럼, 이해는 객관적인 실체 혹은 절대적 진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판적이다. 구성주의에 있어서 지식이 구성적이라면 그 지식을 구성하는 나의 주관의 능동적인 태도가 우선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주관이 중요하다는 것은 구성주의가 주관이 처해 잇는 구체적인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맥락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성주의는 진리 혹은 지식보다는 “맥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혹은 우리의 지식이 토대를 두고 있는 “삶”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석학에서의 이해 역시 인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세계 내 존재로서의 인간 현존재가 내던져져 잇는 삶이 우선이다.
객관주의는 선입견을 이성과 대립된 것으로 보고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구성주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구성을 과정으로 이해하는 구성주의에서는 선입견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수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선입견 혹은 선판단은 지식의 걸림돌이 아니라 그 선행 조건이다. 나의 선입견을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나의 상황과 나의 지평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상황 혹은 지평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것은 너의 지평과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상호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이며 겸손과 배려 혹은 관용의 태도이다. 대화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한쪽이 다른 한 쪽을 짜 맞추어서 통합해 가는 과정이 아니다.
구성주의는 앎의 문제뿐 아니라 삶의 문제를 강조한다. 그리고 삶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삶의 과정 속에 있는 우리 역시 고정된 채로 지식을 습득만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이런 삶의 구성의 과정은 그것 혹은 너를 바꾸는 과정임과 동시에 자신에게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구성주의가 비판하고 있는 근대적 객관주의와 과학적 실중주의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지식이나 진리 역시 인간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좇아 다니기에 급급한 인간이 아니라 그 인간이 주제가 되는 그리고 인간의 삶의 연관에서 형성된 의미들을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인간존재를 염두에 둔다.
2.구성주의의 심리학적 근저
지식을 절대적인 것, 인식자와 분리된 것, 외적 실체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는 전체적인 지식 이론과는 다르게 구성주의는 사고하는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해서 아는 것을 구성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심리적 구성주의는 인간 지식과 경험이 개인의 능동적 참여를 수반한다는 주장으로, 사회적 맥락에서 개인 학생의 구성 활동을 분석하며 상호작용을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1. 심리학의 구성주의적 전환
삐아제(Piaget)는 일찍이 경험주의자는 마음의 능동적 원리를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였으며, 게스탈트 심리학은 발달에 따르는 구조적 변형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했다.
삐아제와 비고스키는 마음의 발달적 개념의 구성이라는 것에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마음을 능동적이라고 보았으며,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사고의 변형을 강조하였다.
구성주의란 지식에 관한 새로운 관점, 즉 지식은 개인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나아가 지식의 구성 과정에서 개인의 능동적 참여뿐만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의 상호작용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유형의 구성주의가 출현하고 있으며, 이들을 급진적 구성주의․ 사회적 구성주의․인지적 구성주의․ 물리적 구성주의 ․진화적 구성주의․ 사회문화적 구성주의․포스트모던구성주의․ 심리적 구성주의 ․정보처리구성주의 그리고 두뇌공학체제 등으로 이름 붙이고 있다. 급진적이라는 것은 지식이 개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비인습적인 지식 이론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즉 지식의 개념에 대한 급진적 해석, 혹은 전적으로 인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지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진리나 실체는 인식자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인식자에 의해서 구성되며, 인식주체가 지식 구성의 과정에서 능동적인 입장을 취한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상호작용적 관계의 맥락에서 강조점을 개인에서부터 사회로 옮긴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지식은 각 인식자의 사회, 문화, 언어 집단에 따라 상대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주관성은 바로 개인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지식을 판단하는 궁극적 준거로써 서로 다른 주체 사이에 동의를 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진리 혹은 실체는 한 사회 집단의 대부분 사람들이 동의하는 구성과 일치한다”고 한다.
구성주의에 대한 사회 문화적 접근은 지식의 구성에 있어 개인과 사회적 과정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한다. 인간 활동은 문화적 맥락에서 일어나며, 언어와 다른 상징체계에 의해 중재되고, 역사적 발달에서 조사될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잇다는 입장을 취한다. 사회적 구성주의와 사회문화적 구성주의는 반드시 모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 두 입장은 서로 관련이 되고 있으므로 이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일부의 학자들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사회적 구성주의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지적 구성주의는 구성주의 틀을 중심으로 학습에서의 인지적 과정과 표상에 관계하는 심리학적 입장의 한 범주로서 대개 개인 학습자의 이해를 위한 것이다. 즉 인지적 구성주의 연구는 어떻게 개인 학습자가 지식을 표상하고 구상하는지 그리고 사회적 맥락에 의해 형성되는 과정이 어떠한지에 관계하며, 많은 심리학적 입장(예: 정보처리모형, 급진적 구성주의, 인지도식이론)을 포용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정보처리 모형에 대한 구상주의 해석은 기억 표상을 정보로 보기보다 지식으로 본다. 따라서 정보를 지식으로, 처리를 구성으로 보고 있다.
심리적 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자신의 사적인 내적 심리 실체를 포함한 실체라는 것은 가공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인간이 만드는 이야기와 자신들에게 말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말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구성주의자들의 입장을 구성주의 부류의 연속선상에서 분명히 할 수는 없지만 Piaget를 중심으로 한 인지적 입장과 Vygotsky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구성주의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2.Piaget의 구성주의 입장
Piaget는 철학적인 것에서 경험적인 질문을 바꾸고 있다. 즉 Plato의 지식이 무엇인가 대신에 어떻게 서로 다른 유형의 지식이 성장과 더불어 계속되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Kant의 어떻게 지식이 가능한가라는 물음 대신에 어떻게 서로 다른 유형의 지식이 가능해 지는지 그리고 구성 결과에 대한 실제 과정은 어떠한가를 묻는다.
구성주의 인식론은 다음의 네 가지 특성을 가진다.
첫째, 이는 규준적이다. 규준적이라는 것은 명명된 지식 영역이라는 점에서 개념과 원리를 규정하는 영역을 설정하는 일이 첫 번째 과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구성주의 인식론은 경험적이다. 이는 어떤 집단에 사용된 양태(규준적으로 정의된)의 정도를 설정하기 위해 사실적인 검증이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경험적 통제에 기초한 지식 구성의 설명이 요구된다. 구성주의 인식론에서 일어나는 질문은 끊임없이 강조되어야 하며 어느 한 가지 영역의 입장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하였다. 넷째, 이러한 규준적 인식론의 시사점은 조사되어 질 수 있고 평가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Piaget는 인간의 지식과 지능은 개인과 환경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그 개인 내부에서 점차적으로 구성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발생학적 인식론, 상호작용주의, 혹은 발달적 구성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Piaget 이론에 있어서 인지발달은 개인이 환경에의 적응을 통하여 새로운 인지구조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개인의 적응은 동화와 조절의 기능에 의하며, 이 두 기능의 상보적 진전에 의한 평형화 과정에 따라 이전의 구조와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새로운 인지 구조가 형성된다.
인지영역에서 평형화는 지각자가 이미 모아놓은 개념구제에 대한 지각체의 적응을 포함한다. 오래된 것에 대한 새로운 적응을 동화라 하고, 개인의 기존의 구조에 새로운 대상을 동화시킴으로서 새로운 구조를 형성해 나간다. 그리고 지각체의 개념에 대해 이미 모여진 구조를 새로운 형태의 구조인 더 큰 개념 단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조절이다. 유기체는 필연적으로 동화와 조절간의 평형상태를 지향하며, 이들의 평형화 과정이 인지발달을 설명하는 주요 기제이다.
Piaget는 세 가지 형태의 평형화를 제시한다.
하나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동화와 조절의 도식에 관한 것으로 “적용범위”라 일컫는다. 한 개인이 어떤 대상을 접할 때 도식으로 동화되고 그 도식은 대상에 조절된다. 이들 두 과정이 계속될 때 평형화가 일어나며 전체가 구성된다.
두 번째 형태의 평형화는 인지적 하위 체계 사이에 상호적인 동화와 조절을 통한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유동성에” 관여한다.
분화와 통합의 과정을 통한 개인적 하위 체계와 더 종합적인 체계사이에서 세 번째 형태의 평형화가 일어난다. 이는 “안정성” 에 관한 것이다.
Piaget에 의하면, 지식 구성은 다음의 특성들- 구성은 규준적이고, 구성은 행동을 통해서 일어나고, 행동은 의식에 대해 우선권을 가지며, 구성은 행동을 찾는 것이고, 구성은 인식적 주체에서 일어난다-을 지닌다.
구성주의 입장에서 지식의 사회적 구성에 대한 Piaget의 입장을 요약하면, 지식은 상호작용을 통하여 상호 구성된 것이며 상호작용 과정에서 협상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지식의 구성이라는 맥락에서 Piaget 이론에 있어서의 상호작용은 상호- 조작으로서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정신적 조작을 나타낸다.
3.Vygotsky의 사회-문화적 접근
현대 구성주의 심리학은 주로 문화와 정신 과정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이론적, 경험적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이들 연구는 주로 어떻게 개인적, 문화적으로 구성된 지식을 개인 간에 “공유”하게 되는가에 관한 것들이다. 개인의 정신 기능은 사회 문화적 기원을 가지며, 인간 활동은 도구와 기호에 의해 중재된다는 주장을 한다. 즉 정신 기능의 발달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이들 상호작용을 중재하는 심리적 도구(예, 언어)의 내면화 결과에서 온다는 것이다.
Vygotsky는 고등정신 과정을 중재된 활동의 기능으로 생각하였으며, 세 가지 중재자- 물질적 도구, 심리적 도구, 그리고 다른 사람-를 제시하였다. 다른 개인을 통한 중재는 Vygotsky의 상징적 기능과 밀접히 관련됨을 알 수 있다. 인간중재자는 결국 부호, 상징, 의미를 나른 자로서 나타난다. Vygotsky에 의해 인식된 기호는 사실 사회적 이유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 미치기 위해 사용된 수단이며, 단지 나중에(내면화 후)자신에게 영향 끼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Vygotsky의 문화 역사적(사회 문화적) 이론을 중심으로 지식 구성에 있어서 사회적 상호작용의 특성을 두 가지 면에서 이야기 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에 의하면 지식 자체도 사회적 기원의 성격을 뛴다는 것이다. 즉, 모든 지식은 이미 한 공동체 사회집단의 역사를 통하여 누적된 문화의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적 산물이며, 아동은 상호작용적 활동을 통해서 지식을 구성하게 된다.
둘째, 언어의 획득은 발달의 사회적 근원에 대한 또 다른 예이며 지식 구성의 사회적 특성을 다시 이해하게 해준다. 개인의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언어를 생각해 보면, 언어는 확실히 사회적 기원을 가진다.
4.구성주의 이론의 중재
Piaget의 이론적 틀은 급진적 구성주의, 개인적 구성주의 혹은 인지적 구성주의의 부류에 속하고, Vygotsky의 이론적 입장은 사회적 구성주의 혹은 사회 문화적 구성주의 부류에 속한다.
첫째, Piaget의 구성주의 인식론은 지식에 대한 철학적 물음 대신에 지식 획득이 얼어나는 과정에 대한 심리학적, 인식론적 설명을 위한 체계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반면 Vygotsky는 마음의 사회문화적 기원을 주장하며 정신 기능 발달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Piaget는 개인의 인지적 측면을 강조한 능동적 구성을, Vygotsky는 지식의 사회적 구성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구성주의에 대한 Piaget의 입장에서 아동은 이미 형성된 지식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과 대상 간 그리고 아동과 다른 사람 사이의 심리적 상호작용의 내적 과정을 통하여 아동 스스로가 구성해 가는 것으로 설명한다. 반면 Vygotsky의 입장에서는 지식은 한 사회 집단에 누적된 역사적 문화적 형태로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한 지식을 이미 획득한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아동이 내적으로 재구성해 가는 과정이 지식의 구성과정이라 설명한다.
셋째 Piaget와 Vygotsky의 두 이론에서 지식의 구성은 아동의 구성 과정에 직접 영향 미치는 외적 심리적 차원의 경험으로서보다는 외적 차원에 대한 의미를 만드는 내면화의 정신 과정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공통점을 지닌다.
넷째, Piaget는 발생적 인식론에 근거한 사고의 조작적 특성을 강조하는 반면, 정신의 사회적 기원을 강조한 Vygotsky는 언어, 상징 등의 도구 및 매개적 기호의 사용을 통한 고등정신 과정 내면화 과정을 강조한다.
다섯째, Piaget 이론에서는 아동과 대상간의 심리적 차원에서의 상호작용(상호-조작)이 지식 구성의 기초를 이루고, Vygotsky 이론에서 지식 구성은 사회적 차원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그 기초를 이룬다.
여섯째 Piaget의 행동은 자연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사건이며, Vygotsky는 역사와 사회에 의해서 구성된 풍부하고 의미 있는 인간 행동이다.
구성주의 이론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것은 학습에 대한 사회적 성격을 인식함과 동시에 학습자의 능동적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점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어떤 인지적 혹은 인식론적 장치를(가능성을)가지지만, 대개 인간 지식은 구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