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이 지난 지 일주일로 곧 다가올 중복 말복이다. 그제가 대서였으니 보름 후면 입추일 테다. 바야흐로 끝물장마 속에 무더위가 절정이다. 각급 학교는 방학에 들었고 대부분 직장에선 휴가를 앞둔 때였다. 들어가는 나잇살 맞게 처신하려면 이런저런 모임에 소홀할 수 없다. 내가 엮인 여러 모임 가운데 초등학교 동기모임에 나가면 마음이 아주 편하다. 서로는 마음의 벽이 없다.
며칠 전 부친상 당한 친구가 있어 고향을 찾아갔다. 사흘 전 두 달마다 모이는 자리가 마산 유람선터미널 부근 횟집서 있었다. 그날 바쁜 용무가 있어 나오지 못했던 한 여자동기가 얼굴을 한 번 보자면서 문자가 왔다. 가까운 곳으로 산행하여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가보자는 연락이었다. 나는 선뜻 동의했다. 통화를 끝내면서 몇몇 친구를 도청 뒤 용추계곡 입구에서 만나지 싶었다.
나는 평소 일찍 잠드는지라 새벽녘 일어나니 휴대폰에 문자가 다시 들어와 있었다. 간밤 잠에 들 무렵 천둥이 치고 소낙비가 내렸다. 연락을 보낸 친구는 날씨 탓에다, 여느 집이나 주말 행사가 있어 희망자가 많지 않을 듯 해 어떡할지 고민된다고 했다. 나는 회신을 보낼 형편이 못 되는지라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 나는 도청 뒤가 아닌 사림동 주택가를 지나갔다.
소목고개를 오를 즈음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계획했던 산행은 다음에 날을 다시정하기로 했단다. 나는 이미 천시와 인화를 예상한 수순이었다. 지리에 대해서는 골똘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른 시각 친구한테 전화를 넣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모른 척했다. 내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재주가 없음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나는 마음 편하게 사림동 사격장 뒤로 무념무상 길을 나섰다.
일요일이어서인지 먼저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도 있고 내 뒤를 이어 올라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소목고개 아래 약수터에 다다랐다. 배낭에 얼려간 생수는 아껴놓고 대롱 끝으로 빠져 나오는 약수를 받아 두 모금 들이켰다. 이어 소목고개에 올라섰다. 먼저 오른 두 아주머니가 등나무 아래 의자에 쉬고 있었다. 나는 좀 떨어진 소나무 곁의 다른 의자에 앉아 땀을 식혔다.
쉬었다 일어서면서 소사나무 삭정이를 주워 지팡이로 삼았다. 꾸불꾸불한 모양이 도승이 짚는 지팡이 같았다. 지팡이는 하루 동안 나하고 동행할 고마운 반려였다. 나는 왼쪽 무릎이 좀 불편해 먼 길을 걸을 때 지팡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산 들머리에서 삭은 나뭇가지로 일회용 지팡이를 삼아 짚는 경우가 있다. 소목고개부터 정병산 정상까지는 아주 가파른 산세라 쉬엄쉬엄 올랐다.
산정까지 오르면서 가을에 피어날 야생화를 찾았다.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아름답게 피는 곳이 사격장에서 정병상으로 오르는 산길이다. 여름날 눈인사를 나누어야 화사한 꽃이 피어날 때 찾아와도 덜 미안하다. 정상 부근은 돌너덜에다 암반이 불끈불끈 솟았다. 흙살 적은 곳에도 억새를 비롯한 여러 풀잎이 무성했다. 척박한 땅에서 바람을 이겨내야 했던 억새는 앉은뱅이로 자랐다.
탁 트인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은 아름다웠다. 시가지보다 들녘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주남저수지도 발아래 저만치였고 낙동강은 유유히 흘러갔다. 이어진 산봉우리마다 뭉게구름이 피어났다 사라졌다. 함께 올랐던 사람들은 독수리 바위를 거쳐 용추계곡을 향했다. 용추계곡에서 올라왔던 사람들은 소목고개로 내려갔다. 나는 정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택하지 않은 외진 길로 내려섰다.
서북쪽 자여마을 등산로였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비탈 숲길이었다. 전망이 좋은 쉼터에서 땀을 식혀가며 천천히 걸었다. 참새미 약수터에서 약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곳에서 자여초등학교로 빠져 나가 우곡사로 향했다. 길가는 피지 않은 달맞이가 수북하고 계곡바닥에는 갈대가 무성했다. 우곡사에서 용추고개를 넘어 골짝을 빠져나왔다. 물봉선도 한창 몸집을 불려갔다. 10.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