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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주 교육학박사의 칼럼
전통가요 중 ‘찔레꽃’이 있다. 1942년 백난아 선생이 부른 노래인데 지금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노래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 주던 못 잊을 사람아
고향과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나라 잃은 슬픔의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 노래 3절에는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로 시작하는데 삶의 무대가 북간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고향과 헤어진 사람이 고향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찔레는 고려 때 사람이다. 몽골군이 침입하여 찔레를 잡아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찔레는 마음씨 좋은 몽골군 집안으로 팔려가 어려움 없이 살았으나 늘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걱정하였다.
이를 어여삐 여긴 주인이 사람을 보내 찔레 부모님을 모셔오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 주인은 찔레를 고려로 보내주었다.
찔레가 고향에 와보니 살던 집은 불타 없어졌고, 부모님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슬픔과 괴로움에 지친 찔레는 길가에 쓰러져 죽었고 그 자리에서 하얀색의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찔레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금강 변 찔레꽃, 사진 제공: 이길주
노래에서는 찔레꽃을 붉은 꽃으로 표현했으나, 사실 흰색 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약간 붉은 색을 띠는 찔레꽃도 있다고는 하나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찔레꽃은 이맘때 산과 들에 활짝 핀다. 모내기가 한창일 때다. 어른들은 찔레꽃이 활짝 핀 이때가 되면 가뭄이 든다고 했다. 실제 요즘 날씨는 한낮에는 뜨겁고 오후가 되면 바람이 부니 매우 건조하다.
지금부터 장마 때까지 별로 비가 오지 않는다. 조상들은 생활 속에서의 경험으로 이 시기의 가뭄을“찔레꽃 가뭄”으로 표현했다.
어릴 적 찔레순은 많이 꺾어 먹었다. 새순이 올라오면 꺾어서 껍질을 살짝 벗겨 내고 먹으면 달짝지근하고, 부드러운 순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생 누나들에게 찔레순 한 움큼 꺾어다 주고 풀빵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가을이 되어 빨간 열매를 맺으면 손으로 훑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씨를 하나씩 입안에서 밖으로 톡톡 쏘며 내뱉었다. 누가 더 멀리 나가나 겨룸을 즐겼다.
들에 활짝 핀 찔레꽃, 사진 제공: 이길주
또 농업고등학교 다니는 형들은 찔레나무에 장미 눈접을 붙이는 연습을 했다. 찔레 줄기에 ‘T’자로 긋고 하얀 목질부가 나오게 긁어낸 다음 장미 눈을 끼워 넣고 비닐 끈으로 칭칭 감았다.
그러면 내년에 거기서 장미꽃이 핀다고 했는데 찔레나무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 기술이 서툴렀던 것 같다. 찔레는 병충해에도 강하고 생육이 빨라 장미를 재배할 때 병충해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 접목용 대목으로 쓴다.
찔레꽃을 주제로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쓴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찔레꽃은 우리 민족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백의민족인 우리를 닮아 하얗게 우리 주변에서 피는 것이 아닐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꽃을 활짝 피우는 것을 보면 우리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꽃이다.
장미는 찔레를 개량한 나무다. 실제 장미는 향기가 별로 없다. 찔레꽃이 오히려 향이 은은하고 진하다.
그래서 찔레꽃을 들장미라고 한다. 열매는 영실(營實)이라 하여 약으로 쓰인다. 빨간 열매는 겨울철 굶주리는 산새나 들새의 먹이가 된다. 모든 것을 다 내주는 우리를 닮은 꽃이다.
백난아-찔레꽃(1941年LP판)
https://www.youtube.com/watch?v=bfM_BDnWWL4
1942년 가수 백난아(白蘭兒·1923∼92)가 취입한 노래 '찔레꽃'(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태평레코드 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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