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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왕상19:1-18)
2022, 8/28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왕상19:1-18절 말씀으로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벌써 8월의 마지막 주로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올 여름도 사실상 다 끝난 것 같습니다. 오늘 새벽은 찬 느낌이었습니다. 며칠 남은 8월, 마지막 여름을 뜻 있게 보내시고 여러분들의 가정에 항상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열왕기상하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져 흥망성쇠를 거듭했는데, 택한 선민들의 흥망성쇠가 그냥 역사 속에서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의 말씀은 엘리야가 많은 능력을 행하였음에도 계속되는 고난으로 너무 힘들고 지쳤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 모습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천사를 보내 주십니다.(5절)
둘째로,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세미한 음성으로 함께하십니다.(12절)
셋째로,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함께할 협력자를 붙여주십니다.(18절)
사랑하는 여러분!!!
미국의 노예해방을 이끌었던 에이브라함 링컨이 사실은 실패의 아이콘이었으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몸으로 보여준 분입니다. 1809년 영국에서 이주해온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독학으로 입신양명한 분인데, 여러 선거에서 무려 8번 떨어지고 9번 만에 미국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흑인노예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준 분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는데, 실패하고 낙심될 때 더 겸손히 기도했고, 실패 속에서 주님이 함께하심을 느꼈으며, 주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하고,실패도합니다. 이럴 때 어떤 이는 절망하고 낙심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는 이가 있고, 오뚜기처럼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에 해당하시는지요?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은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 인생살이 여러 고난으로 힘들고 지칠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천사를 보내 주십니다.(5절)
본문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아멘.
여러분!!!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문제를 만나고 고난도 겪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간절한 기도로 3년 6개월 간 비가 오지 않던 북 이스라엘에 비를 내려 가뭄을 해결하는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이쯤 되면 백성들이 하나님을 높이며 돌아서야하는데 아합왕과 이세벨의 눈치만 보며 움직이질 않습니다. 특히 이세벨은 엘리야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으로 그를 무조건 죽이겠다고 군사들을 풀어 엘리야를 뒤쫓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이전에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어떤 능력을 보여주셨는지를 까맣게 잊고 이세벨이 무서워 멀리 남쪽으로 도망가면서 하나님께 자기목숨을 거둬달라고 한탄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는데, 이런 나약한 엘리야의 모습은 의외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을 만나도 절망하지 않고 길을 찾아야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절망가운데 죽음을 구하는 엘리야는 누가 봐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은 아니라는 겁니다. 어떻게 방금 전에 그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직접 보았고 행했는데도 이세벨이 추격하자 두려워하여 절망 속에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럼에도 우리하나님은 그런 그를 질책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든 그에게 천사를 통해 먹을 떡과 마실 물을 주시면서 어루만지시며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 눈에 안 보이시지만 이 땅에서 당신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아시고, 때를 따라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천사가 엘리야를 어루만지셨는데, 만진다는 것은 아주 친밀한 애정표현입니다. 친밀함을 느끼면 자동으로 손을 잡거나 어깨를 감싸거나 몸을 터치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인생을 터치한 것은 최고의 애정표현입니다.
지치고 절망에 빠진 그에게 천사가 떡과 물을 준 것이 주님의 몸인 떡과 포도주를 연상시키는데, 오늘 엘리야는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 것입니다.
어쨌든 이토록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특히나 지치고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을 어루만지고 계심을 생각하면서 삶 속에서 지치고 힘들 때 이겨내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천사를 보내주셔서 위로하시며 새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이런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게 매우 중요한데, 구약시대에는 부분적으로 천사나 불이나 특정한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셨고, 성전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신약시대에는 성전이라는 제한된 장소를 벗어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와 교통이 무시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속에서 고단하고 힘들 때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만나주시고, 천사를 보내서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격려하듯이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천사를 보내어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붙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원치 않는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는데, 엘리야처럼 주를 위해 그 많은 수고와 헌신을 했음에도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순간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나라백성으로 온전히 세워지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힘들고 지친 내 영혼을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세미한 음성으로 함께하십니다.(12절)
본문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아멘.
하나님의 은혜로 엘리야가 지친 심신을 회복하여 40일 동안 밤낮으로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해 한 굴에 머물 때 하나님이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묻습니다. 엘리야가‘내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도 백성들을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 이제 나까지도 죽이려한다’고 대답합니다.
이 말속에서 엘리야의 절망과 좌절을 느끼게 되는데, 이 정도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주의 일을 하면 사람들이 변하여 예수도 믿고 교회도 부흥하고, 이 정도 시간이 흐르면 신앙이 성장하여 약한 교우들을 섬겨야하는데,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섬겨달라고 투정하고 삐지고 시험 드는 것 보면 혼란스럽고, 또 세상 사람들이 신실한 성도들과 교회에 적대적이고, 대적하는 것을 보면 정말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혼란하면 절대 주의 일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를 굴 밖으로 불러내 엄청난 바람이 지나가면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지진이 일어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이런 능력들을 보면서 엘리야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앙을 빨리 회복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주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며, 신앙인으로, 하나님나라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는 부르셨는데, 다른 성경은‘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이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엘리야를 불렀다는 것은 책망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뜻을 발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다시 한 번 신앙인으로서, 사명자로서 마음을 추스르고 다짐하는 그런 자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 해왔지만 영적싸움과 주의 일에 매진하다보니 하나님과 조용하고 긴밀한 소통이 안 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이해하시고 책망보다는 지치고 힘들었을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그에게 회복의 시간을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신앙인으로 이 악하고 험한 세상을 살다보면 초심을 잃어버리고 부질없는 것에 힘을 빼다 지치고 힘들어서 낙심하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손에 잡힌 것은 없고,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피폐하고 강퍅해져 하나님과 관계가 망가진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노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물론 때로는 너무 큰 상처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릴 수도 있고, 들려도 애써 그 음성을 외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건 사단이 주는 마음으로 그럴수록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은 더 힘들어지고,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9절과 같이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질문은 낙심하고 절망하여 힘을 잃은 엘리야에게 네가 누구이며, 왜 절망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 영혼을 깨우는 질문입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고 나무 뒤에 숨은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고 부르신 것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날마다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그래야 지치고 힘든 일상을 이겨낼 수 있으며, 낙심과 절망의 환경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홍해바다 앞에서 두려워 떠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세미한 주의 음성을 경청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반응하여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함께할 협력자를 붙여주십니다.(18절)
본문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아멘.
엘리야가 사역하던 북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자였던 이세벨의 득세로 온 나라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 미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엘리야가 사역을 했으니 당연히 그의 하소연처럼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사람들이 듣지 않고, 변하지 않는 영적으로 메마르고 강퍅한 반역의 땅, 사단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백성들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엘리야를 불러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도록 명하셨는데,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손을 놓았을 뗀데 하나님은 끝까지 붙드십니다.
여러분!!! 사실 엘리야에게‘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오직 나만 남았다’고 했던 말이 빈말은 아닙니다. 그가 이세벨과 바알선지자들과 싸울 때 누구도 편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 방관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거기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나선 이세벨을 보면서 두려워서 멀리 도망가야 하는 엘리야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엘리야는 이 땅에 신앙인들이 다 죽거나 변질되어 오직 자기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질되지 않은 신실한 신앙인 칠천 명이 있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어떤 핍박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의 절개를 지켜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 척박한 땅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신앙인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여호와 신앙을 지켜나갈 신실한 칠천 명을 신앙의 종자로, 씨앗으로 남겨두어 다음 세대를 기약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아무리 복음을 핍박하는 척박한 곳이라도 하나님은 그곳에 남은 자를 남겨두어 믿음의 세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조치하신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들이 다음 세대를 이어갈 남은 자들이고, 신실한 믿음의 종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남은 자 사상은 구약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주제로, 이들은 어떤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자신들을 희생하고 헌신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남은 자들은 우리에게 직 간접적으로 신앙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우리 또한 남은 자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신앙의 협력자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협력자로서 함께 동거동락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신앙공동체, 이것이 바로 오늘날 남은 자들이 지향해야할 삶의 목표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동체형제들이 힘들고 지칠 때 그들의 협력자로서 남은 자가 되어주십시오. 또 신앙이 흔들릴 때 그들의 신앙을 잡아주는 남은 자가 되어주십시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남겨주신 7천의 협력자가 되어야합니다.
또한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돕기 위해 칠천의 남은 자를 남겨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힘을 내시고, 여러분 스스로가 남은 자가 되어 형제들의 협력자, 돕는 자가 되어주십시오.
그러면 오늘 엘리야처럼 여러분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