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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믿음은 이렇게 역사합니다.
성경 시편 39편 1-13절
찬송 435장
한 분 창조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운행하십니다. 당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고 친히 다스리십니다. 그렇다면 두 말할 필요 없이 우리들의 삶도 그분께서 주관하고 다스리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니까요.
어디 그뿐입니까? 한 분 삼위일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 위에 내어주셨습니다. 죄와 사망과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해, 죄로 심히 오염되고 부패하여 아무 소망도 없는 세상을 위해,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일을 이루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이와 같은 믿음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이 믿음이 없다면 그는 기독교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내 속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리고 대답해보십시오. 내 안에 이와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향해, 당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 맞습니까?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당신이 믿는 하나님 맞습니까? 하고 물으면 아무 주저 없이 예! 하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이 모든 질문 앞에서 아무 주저함도 없이 예! 하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속에서 이미 믿음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의심도 하지 말고, 그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질문 앞에서 예!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기를 원합니다. 하오니 제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시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막9:23-24)
이렇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배우십시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 내가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리라.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나아가지 마시고 오직 겸손하게 기도하며 나아가십시오. 그리하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믿음을 선물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시 같은 믿음이라도 두 종류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곧 믿음에는 죽은 믿음과 살아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진리를 증거하는 성경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안에 참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믿음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역사를 이룹니다.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믿습니다. 살아 계셔서 온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내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이 내 속에 있는데, 어떻게 내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 내 속에서 이 믿음이 역사하고 있다면, 오직 하나님만 높이며 예배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며 항상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은 살아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반대로 죽은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지요. 예배도, 기도도, 순종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머릿속으로만 나는 하나님을 믿어. 하고 있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내 속에 정말 믿음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까? 그렇다면 한 번 더 확인해보십시오. 내 속에 있는 그 믿음은 살아서 역사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죽은 믿음입니까?
오늘 우리는 시편 39편 말씀을 통해 살아있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서 어떻게 역사하는지 생생하게 봅니다. 바라기는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가 자기 속에 있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이라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속에서 역사하는 믿음 때문에 크게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입니다. 오늘 감사주일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믿음 때문에 감사하는 주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왜요? 자기 안에서 믿음이 역사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인생처럼 비참한 인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겉모습이 아무리 아를답고 훌륭해도 믿음이 없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그의 겉모습이 아무리 초라하고 비참해도 그 안에서 믿음이 역사하고 있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자기 속에서 역사하는 믿음을 따라 그는 한 분 살아계신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사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님으로 계시는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사는 사람을 보십시오. 세상에 이보다 더 영광스럽고 존귀한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이제 이 진리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해 좀 더 자세히 들어볼까요? 시편 39편을 지어 노래하는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그 징계가 그를 얼마나 힘들고 괴롭게 하였는지 직접 들어보십시오.
주님의 채찍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주님의 손으로 나를 치시면 내 목숨은 끊어지고 맙니다.(시39:10, 표준새번역)
주님께서 인간의 잘못을 벌하시고 그 아름다움을 좀이 먹은 옷같이 삭게 하시니 인생이란 참으로 허무할 뿐입니다.(시39:11, 표준새번역)
다윗이 하나님 앞에 어떤 죄를 지어 이런 징계를 받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것 한가지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죄를 지을 때 그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가만 계시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이 믿고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와 사랑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죄와 악을 보고 모른 체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믿음 때문에 다윗은 그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어떠한 불평이나 원망도 늘어놓지 않습니다. 가만히 그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심각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신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뿐이겠지요. 그가 믿는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를 따라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던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지 않으시던가.
다윗 안에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절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랑과 공의를 따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너무너무 사랑하신다는 사실 또한 절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속에서 역사하는 이 믿음을 따라 다윗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백합니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시39:8-9)
다윗의 이런 모습은 우리 예수님에게서 더욱 생생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은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께서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막15:4-5)
왜 예수님께서는 부당한 재판에 대해 항거하지 아니하고 잠잠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당신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라 여기셨습니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도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묻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막15:4-5)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 길, 가장 선하고 복된 그 길을 가는데 무슨 할 말이 따로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고 한 없이 부끄러운 길일지 몰라도 예수님에게는 십자가의 길만큼 영광스러운 길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그를 너무 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이니까요. 똑같은 믿음을 따라 다윗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시39:9)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차례입니다. 내 안에 있는 믿음은 어떻습니까? 내 안에 있는 믿음도 죽은 믿음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서 역사하는 믿음입니까? 살아서 역사하되 충만하게 역사하는 그런 믿음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이 믿음을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그 길에 대해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시39:1)
다윗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 가장 기뻐하였던 자가 누굴까요? 그의 원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고난당하는 기회를 이용해 다윗을 아주 없애버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다윗을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어대고 다윗 앞에 올무를 놓아 다윗을 넘어지게 하는 일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다윗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요? 그들을 향해 똑같이 비난하고 똑같이 대항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 입에 재갈을 먹이고 그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원수들을 비난하는 말뿐 아니라 그가 선하다고 여길만한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에게 쏟아지는 모든 고난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겨 온전히 감당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로 거기서 그는 자기가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악한 자들과 원수들의 악행과 비난에 대해 침묵할 때 그는 자신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39:5-6)
만약 다윗이 그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향해 똑같은 모습으로 대적하는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결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도 그의 원수들처럼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그래서 누가 자기를 해치려 하면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그에게 원수를 갚아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였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는 자기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침묵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따라 그는 원수들을 향해 끝까지 침묵했습니다.
그때 그는 확실히 보았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인지, 확실하게 보았습니다. 이런 자기의 참 모습을 발견하였을 때, 그는 그 누구에게도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도움을 줄 것처럼 생각되는 힘 있는 사람이나 다른 그 무엇에게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달려갔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께서만 그를 도우실 수 있고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39:4)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시39:12)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7)
다윗 속에 있는 살아있는 믿음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보셨습니까? 지금 내 속에 있는 믿음도 이렇게 역사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크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십시오. 세상에 한 분 창조주 삼위일체 하나님, 항상 살아계셔서 사랑과 공의를 따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 사람보다 더 영광스럽고 존귀한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아름답고 복된 감사주일에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이 이것입니다. 내 속에서 참되고 바른 믿음이 살아 역사하고 있는가?
한없이 크고 높으신 하나님,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사랑과 공의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그 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힘입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믿는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