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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 話 |
"내가 선사에게〔我於先師處〕……
쑥대로 두드리는 것 같았다〔篙枝子拂相似〕" 고 한 것은
지금에 와서 은혜를 알고 보니
지나친 방망이라는 생각을 않는다는 뜻인가?
황벽의 불법이 원래 몇 푼어치 안 된다고 한 도리이다.
〔불법이 없는 곳이 몇 푼어치 안 된다 하였으니,
마치 방망이나 불자를 든 것 같다.〕
"지금 다시 한 대 맞고 싶다〔如今更思一頓喫〕" 고 한 것은
선사의 수단을 쓸 줄 아는 사람을 찾아내겠다는 뜻이다.
"제가 손을 쓰겠습니다〔某甲下手〕" 함은
깊고 얕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방망이를 들다〔拈棒〕" 함은
그의 마지막 수단을 지켜보려는 뜻인가?
놓아두기에는 너무 위태롭기 때문이다.
"받으려 하다〔擬接〕" 라고 함은
과연 둔기(鈍機)가 몸을 던져 법을 도운 것이다.
그렇다면 받아 가지고 문득 한 대 때렸다 하자,
과연 임제의 뜻을 알았다 하겠는가?
설사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역시 임제의 뜻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선사가 곧 때렸다〔師便打〕" 함은
거두어들임이 너무 빨랐다고 하겠다.
임제가 비록 방망이를 썼다 하더라도
다만 황벽의 온 기개를 선양했을 뿐,
그 때에 자기가 맞았던 방망이는 되지 못한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임제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상방(上方)의 송에서
"범의 눈〔虎眼〕"이라 함은
옛사람이 이르기를
"벼랑 끝에서 범의 눈을 보면
유달리 한바탕의 근심거리로세" 하였다.
"활쏘기를 잘 못하여〔箭發〕……
누구를 원망하리요〔他誰〕" 한 것은
그 스님이 손을 쓸 자리가 없다는 뜻이요,
"임제 노장을 놓아줄지어다〔臨濟老且放過〕" 라고 한 것은
그 때에 일단 임제 노장을
놓아주라고 할 문장을 도치(倒置)해서 쓴 것이니,
말하자면 그 스님이 임제 노장은 놓아주라는 것인데,
그 스님이 만일 황금털 사자였다면
선상(禪床)을 흔들어 쓰러뜨렸어야 한다는 뜻이다.
승천(承天)의 염은,
사실은 임제의 영(令)이 모두
시행되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그 스님이
좌구를 들어 던져 버렸더라도 소용없었을 것이니,
좋은 솜씨가 되지는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법진(法眞)의 거화에서
"부처 없는 곳에서 높은 체하였다〔無佛處稱尊〕" 고 한것은
영도 다 시행하지 않고
부처도 중생도 없는 곳에 눈길을 돌렸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선상을 밀어 쓰러뜨렸더라면" 이라고 말한 것이다.
불일(佛日)의 상당은
부처 없는 곳에서 높은 체했으므로
죽은 방망이〔死棒〕라 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안다면
그 스님은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것이 된다.
"대중들을 몽땅 때려 흩었다〔大衆一時打散〕" 함은
영을 다 시행한 것이다.
천동(天童)의 상당에서
"임제(臨濟)는……" 은
영을 다 시행하지 않았으므로
비록 밑진 것 같으나
실은 영을 다 행하였으므로 밑진 것이 아니요,
그 스님은 다만 하나만 알았으니
그런 까닭에 "쉽사리 만나게 되었다" 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납승의 수단인가?
선상을 흔들어 쓰러뜨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삽계(霅溪)의 염에서
"비추어 활용한〔照用之〕……" 이라 한 것은
부처 없는곳에서 높은 체한 것이 아니니,
참으로 끝없다.
"가난한 사람이 묵은 빚을 생각합니다〔貧人思舊債〕" 라고 하였고,
또 "자기는 비록 급하나〔自己雖然急〕……" 라 한 것은
바로 최상의 한 관문에 의거해서 한 말인데,
그 스님이 이미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죽 밑에 피가 없는 자라고 하였다.
취암(翠巖)의 염에서
"오늘 썼던 것〔今日用底〕" 은 죽은 방망이인 듯하고,
"지난날 맞던 것〔當時喫底〕" 은 예순 방망이다.
"만약 같다고 하면〔若道同〕
……" 은 예순 방망이를 저버린다는 뜻이요,
"만약 다르다고 하면〔若道別〕……"은
임제의 부처님 없는 곳에서
높은 체한 일을 욕되게 한다는 뜻이다.
"그 기틀을 다한다〔盡其機〕" 고 함은
그 때의 방망이와 오늘의 방망이가
낱낱이 그 기능을 다한다는 뜻이니,
그러므로 "누구의 분상인가?〔在誰分上〕"라고 하였는데,
이는 황벽과 임제를 이르는 말이다.
"물러서라, 물러서라〔退後退後〕" 함은
황벽과 임제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송원(松源)의 상당에서
"임제가 영에 의해〔臨濟據令〕……" 는
죽은 방망이 같기 때문이요,
"설두는 힘을 다해〔雪竇盡力〕……"라고 함은
비추고 활용하는 기개를 알지 못한다는 구절이다.
"내가 절문한〔薦福節文〕……"은
당시의 예순 방망이와
오늘 시행한 방망이를 붙들어 일으킨 말이니,
주장자를 던진 뜻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