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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50편
=====50:1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 (* , 엘 엘로힘 예호아). 문
자적인 뜻은 '신들 중의 하나님, 주되신 분'이다. 어떤학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품성의
각기 다른 면을 암시하는 이름이므로 풀어 번역하면 '전능한 분, 재판관이신 분, 은혜
로은 분 하나님'이 된다고 주장하나(Cohen) 많은 지지를 얻지는 못한다. 이 호칭 뒤에
본 시편에는 하나님이 온 우주를 심판하시는 내용이 묘사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
호칭은 참하나님으로서 온 우주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입
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84:3 ; 수 22:22). 온 세상을 그의 심판대 앞에 모
으시고 당신의 의지 집행하실 능력을 지닌 분은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Barnes).
=====50: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 - 원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아름다움의 완벽인 시온'이
다. 이는 문자 그대로 시온에 대한 묘사인데 아마도 이 은유는 하나님의 도성으로서의
예루살렘의 영화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Kraus). 한편, 이 도시는 빼어나게 수려한 곳
으로 간주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선택한 곳이기 때문이었다(Rad).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 때때로 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을 빛으로 옷 입으신 분
으로(104:2), 혹은 그 빛 속에 거하시는 분으로(딤전 6:16 ; 출 13:21 ; 단 2:22)묘사
하였다. 그러기에 이 말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4:6 ; 18:28
; 27:1 ; 36;9 ; 43:3 ; 미 7:8).
=====50:3
잠잠치 아니하시니 -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을 후대에 삽입된 부분으로 간주하지
만(Wel-lhausen, Duaith, Snaith). 이 견해는 타당성이없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내용
상 21절 상반절의 전제적인 대목이 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침묵은 악한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악행이 인정을 받은 것으로 오해하게끔 하였다. 이러한 상황들을 고
려할 때, 이 구절은 원래 이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불...광풍 - 이 용어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시내 산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던
하나님의 현현(顯現)기사로부터 취한 것이 분명하다(출 19:16, 18). 문맥상 이러한 자
연 현상들은 하나님의 집행을 가리킬 뿐 아니라 하나님이 집행하실 심판의 상징으로
보여진다(Perowne).
=====50:4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위로부터 하늘과 땅에 이르
기까지 부르고(소환하고)이다. 즉, 온 우주, 온세상을 하나님이 부르신 것을 가리킨
다. 여기에서 본 표현의 의미는 그 우주를 심판하기 위하여 부르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심판의 공정성을 목도하는 목격자로, 증인들로 그것들을 부르셨다는 것이다.
=====50:5
나의 성도 - (* , 하시다이) 문자적인 뜻은 '나의 사랑을 받은 자' 혹
은 '나의 시야에서 은총, 자비를 얻었던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본 표현은 평행구인
'나와 언약한 자'가 그 의미를 부연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알리셨다. 즉, 그분은 백성들에게 당신의 법과 약속을 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백성들
이 자신의 율법을 준수하였는지 약속을 신실하게 지켰는지를 알기 위하여 백성들 심판
하시려 하고 있는 것이다.
=====50: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 (* , 아기두 솨마임
치드코). 문자적인 뜻은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다'이다. 여기서 동사의 형태는 미
래형 혹은 현재형이지만 의미에 있어서는 과거이다. 이러한 동사를 우리사적(史的) 현
재 동사라고 부른다. 즉, 과거의 일을 생생히 묘사하기 위한 현재 시제의 동사라는
말이다. 한편 본절은 연이어 따라올 엄숙한 심판의 서곡으로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였
던 하늘, 그 하늘을 하나님이 부르시고 계신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97:6).
=====50:7
말하리라...중거하리라 (* ... , 아다베라...아이다). 둘
다 끝에 '헤'(* )라고 하는 어미가 달려 있는 일종의 어미음 첨가형 동사라고 볼
수 있는 이 용어는 어떤 목적을 암시하고 있는 동사이다.
하나님 곧 네 하나님 - (* , 엘로힘 엘로헤이카). 구약에서
흔히 언급되는 하나님의 호칭 가운데 하나로 '야웨'(yahweh)대신 '엘로힘'이란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이 호칭은 십계명 서론 부분에서 나타나는 언약의 하나님이 자신의
신분을 표출한 그 방식을 상기시킨다(출 20:2 ; 신 5:6). 하나님은 언약의 수여자로서
언약을 파기하였던 그 백성을 바로 잡고 징벌하실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으시다.
=====50:8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내가 너희를 책
망하는 것은 너희의 희생 때문이 아니다'로 심판 행위가 있게 된 이유가 설명되고 있
다. 그 이유의 첫째는 부정적인 의미의 이유로서 백성들이 율법에 의해 약조된 율법의
외형을 무시했었다거나 희생드리는 일을 잊었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백성
들은 희생 제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왔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행위가 전부라는
식으로 제물을 가져왔다. 다시 말해서 의미야 어쨋든 상관하지 않고 제물만 가져오면
모든것이 해결된다는 식으로 제물을 가겨왔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꼐서는 제물 자
체를 원하신것이 아니라 순종 의지의 표현을 원하셨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은 모든 번
제보다 나은 것이다. 한편 이러한 사상은 구약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표출된 바 있다
(사 1:11, 12 ; 58장 ; 66:3 ; 미 6;6-8등). 그리고 여기에서
제물 - 은 일차적으로 화목제를 가리키는데 이 제사는 흔히 번제와 함께 드렸다
(51:16). 이 두 제사가 언급될 경는 아마도 모든 방식의 희생 제사를 함께 의미하는
것 같다(Perowne).
=====50:9
내가 네 집에서...취치 아니하리니 - 여기의 '수소'나 '수염소' 등은 히브리 민족
의 희생 제사에서 규칙적으로 바쳐지던 동물들이었다(출 29:11, 36 ;레 4:4 ; 왕상
18:23, 33). 율법을 따라 이러한 동물들을 희생으로 바치는 일은 적절하고도 당연한
것 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행위를 지금 탓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정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특히 본절이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그 제사의 내용물
(제물)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필요하게 생각지도 않으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제물
뿐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당신의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10
생축 - (* , 헤모트). 이 단어는 대부분 '길들여진' 동물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나 여기서나 목장에서 풀을 뜯는 소떼를 가리킨다.
=====50:11
들의 짐승 -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들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 구절은 정확한 의
미을 규명하기 어려운 구절인데, 혹자는 이를 전혀 이해가 안되는 '들의 열매'라고 번
역하기도 한다(Ewald). 그러나 일반적이고 공통적으로 받아들여고 있는 번역은 '들에
서 방랑하는 것'이다.
=====50:12
내가 가령 주려도 - 문맥은 본 조건절이 문자그대로 성취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암
시한다. 본절과 다음절에서 신(神)은 예배자들의 공궤에 의해 제공된 바 음식과 마실
것을 요구한다는 원시적 개념을 저자는 넌지시 깔고 있는 듯하다(신 32:38). 사실 고
대인들은 인간의 중요한 임무 중시 하나가 신들에게 부양물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믿었
는이 이러한 견해는 '벧과용'(Bel and Dragon)이라는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있다. 그러
나 여호와의 경우 그 누구도 그분께 무엇인가를 공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는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그 안에 있는 모든것이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다(24:1 ; 신
10:14).
=====50: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 이 표현은 고대 세계의 명백히 존재했던 신식육(神食
肉) 개념을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알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레 3:11은 제단 위에 불사
르던 희생 동물들의 일부분을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불을 사용하여 바치던 제물이 레 21:6서는 '하나님의 식물'(레 21:8, 17, 21 ; 민 28:
2 ;겔 44:7)로 불리우고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용어들이 구약 성경의 저자들에 의하여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취해졌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이 표현한 것은 그 용어들을 사용해서 시(時)의 독자와 제사에 관한 의사 소통을 하
기 위함인 듯하다(Anderowen).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 (* ,제바흐 렐로힘
토다). '토다', 즉 '감사의 희생'은감사제(예배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희생 제사, 레
7:12 ; 22:29 ; 암 4:5)나 감사의 찬양(26:7 ; 42:4 ; 69:30)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런데 이 둘 중에서도 전자가 좀더 타당한 것 같다. 왜냐하면 본 구절의 동사 '제바흐'
는 그 문자적 의미가 '도륙하다'. '살륙하다'로 이 동사가 사용된 제사는 찬양이나 기
도 보다는 희생 제사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Kraus). 그런데 바로 앞 부분에서 제
사의 무용성을 지적한 바 있기에 다시 제사를 드리라는 본 구절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
다. 그러나 본 시가 외형적 제사, 특히 하나님의 음식을 공급하기 위한 제사를 거부하
는 문맥이기 때문에 본 구절이 지적하는 희생 제사는 여호와가 취하실 음식으로서의
제사가 아니라 그분을 향한 바른 자세의 표현, 예배자를 위한 축복의 수단으로서의 희
생 제사임이 분명하다.
서원을 갚으며 - 바로 앞에 열거된 제안을 따르기를 원하는 자는 예배자로서 마땅
히 수행해야 할 자원 제사를 먼저드려야 한다(de Vaux). 한편, 감사제와 마찬가시로
'서원제'도 함께 나누는 희생 제사에 속한다(22:25) ).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네가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감사의 희생 제사와 서원
제를 드리라고 명령한 직후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으라는 요구를 연결시
키고 계신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숨어있음이 분명하다. 즉, 그것은 마음을 동반
한 진정한 희생 제사와 서원제를 드린 자가 갖는 증표는 환난 날에 하나님께 기도한다
는 것이다. 여기서 참예배자의 의무와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참예배자는 환난의 때
에 그 환난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자가 하나님 한 분 뿐인 것을 확신하고 그분께
의존한다. 바로 이러한 의존 행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즉 존경하는 일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예배자만이 갖는 특권이라 하겠다.
=====50:16
악인에게는 - 원문을 보면 7절의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바로 본 구절 앞에 자음
하나 정도가 들어갈 자리가 비어 있다. 이것은 7절부터 15절까지가 일정한 주제하의
한 단락이고, 본절부터는 새로운 주제의 단락이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7-15절까
지의 단락은 하나님이 인정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자세로 제물을 드리는 예배자, 즉
형식주의자에 관한 언급을 다루었다. 그런데 본절부터 시작되는 단락은 율법을 인정할
뿐아니라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일과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는 부조화를 보였던 지도자
들, 선생들이 있었다(Barnes)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런 자들을 가면과 겉옷 아래 죄
악을 숨기고 외적인 종교의식 수행에 열중하는 자들이라고 부른다(Perowne). 특히 신
약은 이러한 자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하며 롬 2:17-24은 이 주제에 관해 좀더 분명
하고도 실제적으로 말하고 있다.
=====50:17
네가 - (* ). 이 대명사는 강조사로서 악인의 실제적인 품성과 귀가 알고
있다고 고백하는 율법, 즉 '내 말'과의 강한 대비를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사 1:15과
비교하라) .
교훈을 미워하고 - '교훈'(* , 무사르)은 따끔한 책망을 곁들인 '훈계'
를 의미한다. 잠 12:1은 이 '훈계'를 사랑하는 자는 지식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고
이 '훈계'를 미워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더불어 언급하고 있다(잠 10:17 ; 13: 18
; 15:5, 32). 한편, '진리의 사람'은'훈계를 사랑하는 자'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Anderson).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 훈계의 내용은 십계명을 상기시키는 바, 하나님의 말씀
이다(출 34:28 ; 신 4:13 ; 10:4). 그리고 무엇을 '뒤로 던진다는 것'은 그것을 배격
하거나(왕상 14:9)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사 38:17), 이러한 표현은 율법이나 하
나님의 규례를 범하는 자의 마음과 태도를 생생히 나타낸다.
=====50: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도둑을 보았을때 그의 속에서 기쁨
을 발견하고'이다. 이것을 70인역(LXX)은 '도둑을 보았을 때 그와 함께 도망치고'로
번역하고, 또 다른 역본들은 '도둑을 보고 그에게 너의 몫을 다 내던지고'로 번역하고
있다(탈굼역, 시리아역) 이 모든 번역들을 종합하면 악인이 도둑과 교제를 갖는다는
뜻이된다(욥 34:8, 9).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 직역하면 '간음하는 자와 함께 너의 분깃이며'이다.
결국이 말은 간음하는 자와 가진 것을 나눈다는 것, 곧 그들처럼 간음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본 구절의 핵심은 선생및 종교 지도자들이 경건의 겉옷을 걸치고 이와같은 범
죄를 자행하고 모든 의적 종교 의식을 행하면서 이 같은 악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한
편, 이 죄악은 유대 사회가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졌을때 일반화되어 있었던 악행이었
다(롬 2:22).
=====50: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 '네 입을 악에게 보내고'가 문자적인 뜻이다. 이것은 그 입
을 악에게 내어 주었다는 것, 즉 입이 악하게 사용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15:3 ; 34:13). 그러기에 이러한 표현은 결국 그 입이 사악을 내고 속임수와 중
상 모략을 베풀었던 것을 가리킨다.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 르손카 타츠미드 미르마
) - 문자적인 뜻은 '네 혀로 속임수를 짜며'이다. 특히'지으며'는 '공교하게 엮다',
'단단히 하다' 등을 뜻하기 때문에 혀로 속임수를 짠다는 표현은 그저 의식없이 속임
수를 생각했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철저하게, 완벽에 가깝게 속임수를 지어냈던 것을
뜻한다.
=====50:20
앉아서 - 이것은 남을 헐뜯을 뿐만아니라 악한 것을 말하는 자들과 동무가 되어 앉
아 있는 것을 가리킨다(1:1).
네 형제를 공박하며 - 여기의 '형제'는 같은 동네에 사는 고향친구, 혹은 피를 나
눈 형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본 구절과 동의적 대구 상황에 있는 하반절에 '어
미의 아들'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후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혈연 관계에 있는 자를
비방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극악한 중상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악은 당
시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렘 9:4 ; 미 7:6).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 문자적인 뜻은 '네 어미의 아들에게 일격을 가하
다'이다. 그런데 여기의 '일격을 가하다'에 대한 것을 70인역(*
, 에티데이스 스칸다논)은 '거치는 돌을 놓아두다'로 번역한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문맥을 고려하여 '중상모략을 하다'로 번역하는 학자도 있는데 문
맥을 꼬려한 후자의 견해가 무난한것 갈다. 한편, '어미의 아들'이란 표현은 당시 '일
부다처제'가 성행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다. 즉, 아버
지는 동일하나 어머니가 여럿이었기 때문에 배다른 자식들이 있어서 '어머니 아무개씨
의 자식'이란 식의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Barnes). 배다른 자식들이라
고 할지라도 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이 중상 모략을 했다는 사실은 간과될 수 없다. 사
실 중상 모략은 한 가정을 파멸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지닌 무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삼하 16:1-4 ; 왕상 21:8-14).
=====50:21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 이것은 오랫동안 죄를 처벌하지 않고 두었더
니 악인이 그 자신의 죄에 대하여 뻔뻔해져서 악과 선의 차이가 없다고 확신하였던 것
을 지적하는 구절이다. 즉, 악과 선의 차이가 없다고 확신했다는 것은 악인이 악을 자
행하는 일에 열심이고 하나님의 진리와 의를 구별하는 것에 무지하였음을 가리키는
의미이다(Perowne).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 직역하면 '내가 네 눈앞에 순서대로 열거할 것이다'
이다. 이것은 범죄의 내용을 하나하나 열거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작게 출발한 악행이
그 범위와 영향력에 있어서 얼마나 그 정도를 더해 갔는가를 설명하겠다는 말이다.
악인의 작은 죄악은 뿌리를 내리고 잎새를 내더니 많은 가지들과 더 든든한 줄기를 내
고 결국은 독이 가득한 열매들을 내었던 것이다.
=====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 -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
었던 자들(신 8:19 ; 삿 3:7 ; 욥 8:13)이다. 그러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좀더 구체적
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즉, 그들은 직업적으로 예배 의식에 종사하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참품성과 그분의 진정한 요구하심을 전적으로 잊어버린 자들이다
(Barnes).
찢으리니 - 먹이를 갈기갈기 찢는 몹시 굶주린 야수의 모습으로부터 따온 표현이
다.
건질 자 없으리라 - 이것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시라는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
(사 43:3,11 ; 49:26).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시므로 하나님에 의하여 징벌을 받는 자는
소망없는 버린 자이다.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 조베아흐 토다) - 직역하면 '감사함
으로 회생 제사를 드리는 자'이다. 여기서 동사 '조베아흐'는 14절에 사용된 것으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회생 제사가 무엇인지, 또는 그 제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
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돼었다. 즉, 그 제사란 어떤 회생 동물을 죽여 끌고오는 그
러한 외형적인 행위가 아니라 감사함을 희생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에 대해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은 찬양의 제사로 번역한다. 즉, 본구
절의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란 찬양의 제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이 원
하시는 참 예배(제사)는 찬양이라는 쪽으로 이끌고 나간다. 그러나 이 근거를 신뢰할
이유는 젼혀 없다. 그리고 동일한 이 표현을 14절에서는 찬양의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
데, 이곳에서만 찬양의 의미로 해석한다는 것은 평행에 어긋난다. 그러기에 본절에서
갑자기 찬양의 개념 쪽으로 나아갈 근거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본절에서 감사함
의 개념이 다시 돌출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에서 다시 감사함
의 개념이 출현한 것은 예배자들이 감사할 줄 모를 뿐 아니라 설령 감사한다고 해도
감사의 내용을 엉뚱한 곳에서 찾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은 풍성하게, 또
는 값없이 당신의 은총을 인간에게 내리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받아 누린다. 그
러나 그것을 내려준 자가 누구인지에 관하여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이 결과 감사할
줄 모르게 되고 하나님께 돌아갈 마땅한 영예를 인간이 빼앗고 것이다. 그러나 감사를
아는 자들은 기도, 자기 부인, 십자가를 지는 것, 모든 경건의 연습, 예배드리는
일 등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라고 믿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 조차도 자칫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예배에 관련된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선하심, 은혜에 대한 분별은 오직 믿음을 통
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참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이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땅 위의 역경도 감사함으로 승리할 수 있다. 참감사
하는 자는 인간의 지고의 목적을 성취해 가고 있을 뿐 아니라 만사에 있어서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그대로 돌려드리는 자이다(PEROWNE).
[출처] 시편제50편-로고스주석|작성자 말대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