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1요한 4,11-18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복음 마르 6,45-52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45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ehomp%2Fimg%2Fline01.jpg)
이 세상을 살다보면 고통과 시련이 불쑥불쑥 찾아옵니다. 물론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제발 내게만은 찾아오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가능할까요? 이러한 고통과 시련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네요. 바로 무덤 안에 있는 사람들로 죽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감동적인 어떤 부부의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부유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큰 빚을 떠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증을 잘못 서서 얻은 결과였지요.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이 부부는 너무나도 어려운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빚을 갚기 위해서 어떠한 궂은일을 마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자매님께서는 힘든 일로 인해 손가락이 휘어져 제대로 활동하기 힘들게도 되었지요. 병원에서도 도저히 고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매일 미사에 참석하면서 주님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묘 가서 벌초하다가 그만 벌에 물린 것입니다. 너무 아파서 얼른 병원에 갔다가 깜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글쎄 병원에서도 고칠 수 없다는 휘어진 손가락이 펴진 것이었지요. 현재는 빚도 다 갚고 아픈 손가락도 고친 것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 부부에게 다가온 고통과 시련이 과연 필요 없는 것이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비록 어렵고 힘들었지만 가족애도 더욱 더 두터워졌고, 소홀히 했었던 주님께 대한 사랑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에서도 시련이 나오지요. 그런데 이를 피해야 할 것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주님의 시험이라고 말하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 없이 편안한 길만을 원한다면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믿음과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안 계신 배 안에서 맞바람에 힘들어 합니다. 믿고 따르던 예수님께서 안 계신 자리, 그래서 더욱 더 불안하고 큰 일이 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십니다. 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든데 여기에 인간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즉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오시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때 예수님의 따뜻한 말씀.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을 배에 모시자 그대로 바람이 멎었습니다.
위험에서 줄곧 보호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은 신앙 안에서 튼튼하게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들은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처럼 도와달라는 청을 주님께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렵고 힘든 일, 고통과 시련은 오히려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모셨을 때 고통과 시련은 내게 걸림돌이 아닌, 주님께로 나아가는 디딤돌임을 깨닫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멋진 것이다(톨스토이).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씀(2014년 11월 16일 삼종기도 강론 중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 은총을 금고 속에 보관하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다른 이들의 선익을 위해 사용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선물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럴 때 더 풍요로워집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자, 나의 자비와 나의 사랑, 나의 용서가 여기 있다. 이것을 널리 사용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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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황님의 말씀이 신부님의 생각처럼 주님께서도 그렇게 원하는 듯 합니다.
‘자, 나의 자비와 나의 사랑, 나의 용서가 여기 있다. 이것을 널리 사용하여라.’
고통과 시련이 함게 할때 제가 행복했을때 보다 더 하느님께 의탁하게 되더라구요. 기도는 자신뿐아니라 이웃을 향한 따스한 마음도 전할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하느님과 함게 하는 그 순간이 참 힘이나는것도 그분이 저에게 향하는 은총아닌지요. 주님의 은총과평화가 항상 우리 곁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은 어쩌면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지요. 고통을 통해서 얻는 열매가 진짜 성공의 맛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어려움과.괴로움이 있을때 미약한 인간으로선 풀수 없는 문제들을 하느님께서 길을 주십니다 .비로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 함으로서. 마음의 자비를 얻게 됐다면
분명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구나에.섭리의 깨달음과 믿음의 성숙에 이르릅니다 이제 2019년도에는 부지런한 기도자가 되어보러 합니다 .
그동안의 죄사함을 구하며 내 가정과 이웃간의 평화도 빌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