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옆으로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들어 왔습니다.
제 옆의 자리가 하나밖에 없어서 한 학생은
제 옆에 앉고 다른 학생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요것들 싸가지가 밥맛이었습니다.
"누가 먼저 꼬시나 내기다!"
하면서 서로 컴퓨터 앞에 앉았거든요.
한 이십 분쯤 지났을까?
기지개를 켜다가 무심코 옆 컴퓨터의 화면을 슬쩍 보게 되었습니다.
옆자리의 여학생은 하이텔에서 비방을 만들어두고 채팅을 하고 있더군요.
상대방 남자가 보낸 글이 닭살이었습니다.
전부는 자세히 못 봤지만 아래와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남학생 : 전 대구/25/대딩이예요.
남학생 : 사랑에 대해서 아세요?
남학생 : 정말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남학생 : 사랑해 보신 적 있으세요?
뭐 채팅 하다가 처음 만난 여학생과 사랑을 운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대구에 산다는 남학생이 너무나 가련해 보였습니다.
제가 슬쩍 옆 여학생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오우 마이 갓!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죠.
뭐 못생긴 게 죄가 됩니까?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났는데,
못생긴 것도 서러운데 그걸로 평가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서울에 살며, `79년 생이고 대딩이라는, 제 옆에 앉은 여학생은 외눈박이라도
용서할수 없을 지경으로 생겨먹었습니다.
들창코가 기본이며 눈은 콩알만했습니다.
뚱뚱하지는 않았지만 뺨과 이마는 사포대신 쓸 수 있을 정도로 오돌도돌 했습니다.
잘만하면 대패 대신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못생겼다고 채팅도 할 수 없는 건 아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상대방 얼굴이 안 보인다고 이빨까면 됩니까?
하고 싶지도 않은 기지개를 또 켜는 척 하면서 슬쩍 옆의 모니터를 훔쳐보았습니다.
남학생 : 저는 사랑에 굶주려 있어요.
남학생 : 당신의 외모는 어떻죠?
옆 여학생 : 저는....남들이 좀 귀엽다고 그래요.
옆 여학생 : 예쁘다는 소리도 가끔 들어요.
저 글을 보는 순간 저는 닭소름이 돋았습니다.
와아~ 야부리도 저만하면 수준급이구나.
너가 귀여우면 엄청해나 이영자는 천사다 천사!
하도 황당해서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인터넷을 하는 척 했습니다.
다시 10분 정도 지나고 나서 또 모니터를 봤더니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았습
대구에 사는 남학생은, 그 여학생의 예쁘다는 소리에 서울로 올라오려고
하는 중이었습니다.
남학생 : 지금 네 시니까 서울에 가면 아홉 시쯤 될 거예요. 올라가도 될까요?
어디서 만나죠? 전 월요일 새벽 차로 다시 내려오면 돼요.
이때. 옆 여학생이 다른 컴퓨터 앞에 앉은 친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야~ 이 새끼 지금 올라온다는 데 어떡하지?"
"오라구 해. 벗겨먹자."
"오케이!"
어...만약 대구 사는 남학생이 올라오면 보나마나 통신과 채팅에 대해서 무한한
실망과 회의를 느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남학생에게 세이를 날렸습니다.
## 전송 메시지 : "저 괜히 끼어 드는 것 같지만 다시 잘 생각해 보시죠."
## 전송 메시지 : "괜히 서울 올라와서 돈 날리고 몸 버리지 마세요."
## (From:남학생 )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래서 제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나는 지금 신림동의 인터넷 게임방에 와있는데 옆자리의 여학생이 무지하게 생겨먹
괜히 올라와서 몸 버리고, 돈 날리지 않는 것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되고
오래 살겠다는 것이 제가 말해 준 내용의 요지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자식은 속고만 살아왔는지 이렇게 말하더군요.
## (From:남학생 ) `실제로 귀여운 아이인데 혼자 꿀꺽하시려는 건 아니죠?`##
세상에 이렇게 싸가지 없는 녀석이 있을까요? 꿀꺽 할게 따로 있지 저걸 웩~~
소매치기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도둑놈으로 몰리는 사람과 비슷한 느낌일 겁니
그래서 성질을 부렸죠.
## 전송 메시지 : "맘대로 하세요 만나던지 말던지!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 전송 메시지 : "살아오면서 공룡껍데기 같은 피부에, 들창코에, 하마 입에"
## 전송 메시지 : "콩알 눈 여자애가 귀엽다는 소리는 듣도보도 못했습니다."
## 전송 메시지 : "게다가 턱에 커다란 점에, 여드름도 잔뜩 있고...어휴~."
## 전송 메시지 : "만약 이 여자애가 귀엽고 예쁘다면 당신은 변태겠죠."
이쯤 알려주니까 대구의 남학생이 조금 믿어주는 것 같더군요.
## (From:남학생 )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인터넷을 했습니다.
잠시 후에 옆의 여학생이 같이 온 여학생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이 새끼가 정말 내가 예쁘냐고 물어보는데? 아유~ 재수 없어!"
그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다시 기지개를 켜는 척 하며 온 몸을 배배 꼬면서 슬쩍 옆의 모니터를 쳐다보았더니
제 컴퓨터 화면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떠 있었고 화면에는 "딴지 일보"가
보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98 새롬 데이타 맨을 밑에다 작게 띄워놓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허리 운동을 하는 척 하면서 옆 여학생의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
얼굴 색이 벌겋게 변한 것이 한 눈에도 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학생 : 아니 누가 그래요? 전 채팅해서 누구 만나본 적도 없는데요?
여학생 : 아마 우리가 비방에서 채팅하고 있으니 누가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 누구예요?
남학생 : 그래요? 님이 들창코에다가 턱에 커다란 점이 있다던데 사실이에요?
여학생 : 아니에요. 틀려요!
여학생은 우겨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분명히 있는 점을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남학생은 저에게 세이를 날려왔습니다.
## (From:남학생 ) `점 없다는데요? 어떻게 된 거죠?`##
그래서 제가 다시 알려줬습니다.
## 전송 메시지 : "나이키 농구화 신었구요. 이스트 팩 검정가방 맸어요."
## 전송 메시지 : "확인해 보세요."
저는 이번엔 가방을 뒤지는 척 하면서 옆의 모니터를 살폈습니다.
남학생 : 님이 항상 농구화에 이스트 팩 검정가방 메고 다닌다는 데요?
여학생 : 헉.
아마도 여학생은 놀란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친구와 둘이서 속닥속닥 대더니,
대기실의 대기자 아이디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아는 아이디 있어?"
"안 보이는데..."
"도대체 어떤 새끼야?"
"혹시 사당동 걔 아냐?"
꼴에 많이도 벗겨 먹은 모양입니다. 누군지 몰라도 그 사람
밤마다 이 대패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사당동이라...
그러면서도 대구의 남학생에게는 끝까지 우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학생 : 제가 이스트 팩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은 맞지만 폭탄은 아니에요.
호호호~ 폭탄에 당하고만 살아 오셨나봐. 호호홋~
닭살의 연속이었습니다.
여차하면 대구 남학생이 올라오지 않을 기색을 보이자
이번에는 애교 & 아양 작전으로 나가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점심에 먹었던 뼈다귀 해장국의 뼈다귀가 목구멍에서 넘어오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정말 꾸욱! 참았습니다.
대구 남학생이 다시 제게 세이를 보냈습니다.
## (From:남학생 ) `웬만하게 생겼으면 그냥 올라가도 되지 않겠어요?`##
## (From:남학생 ) `간다고 했다가 갑자기 안 간다면 그것도 좀 그런데요.`##
저도 남학생 한 명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 전송 메시지 : "서울 올라오실 돈으로 같은 과에서 제일 못생긴 여학생에게"
## 전송 메시지 : "꽃다발이나 사다주시죠. 그리고 증조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 전송 메시지 : "위독하시게 됐다고 하시면 되잖아요."
마지막으로 지갑을 뒤지는 척 하면서 모니터를 또 훔쳐보았습니다.
그 남학생은 제가 일러준 대로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못 올라오겠다고
하는 중이었습니다.
여학생은 연신 "시팔~ x 같은 새끼네~" 어쩌구 욕을 하면서 모니터를 쳐다보며
성질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방하고 핸드폰을 주섬주섬 챙겨서 일어나면서
새롬 데이타 맨의 화면을 최대한 크게 해놓고 글자 크기도 늘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으로 옆 여학생에게 세이를 날렸습니다.
## 전송 메시지 : "남을 속이면 못써요. 우헤헤~ 캬하핫~ 냐하핫~! 신난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일어나는 소리를 듣자 옆 여학생의 친구가 제 자리로 와서 앉았습니다.
저는 돈을 내러 계산대 앞으로 갔습니다.
거스름돈을 받은 후 인터넷 게임방의 문을 열고 나가려는 데, 뒤에서
"잠깐만요!"
하는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혹시 머리 죄다 뜯기고 나이 어린 여학생 두 명에게 몰매 맞지 않을까
무서워서 잽싸게 토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그 여학생이 보내는, 욕설이 가득 담긴 메일을 가끔씩 받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잘한 짓인지 못한 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