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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아름역사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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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아름]인용자료 스크랩 제국은 화려하지 않다 (3): 고구려 제국의 비용
麗輝 추천 0 조회 54 13.04.30 22:59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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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4.30 23:39

    첫댓글 물론 고구려에서 현재 직업군인(상비군)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입증할만한 자료는 없습니다. 주인장은 한강유역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보루를 통해 변방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보루 주둔군이야말로 상비군이며, 이러한 상비군이 임진강~한강 사이에 적어도 1만 이상이 주둔했다는 주장을 한바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방증 자료일 뿐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이를 어떻게 더 보강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더불에 최근에 홍련봉 2보루에서 고구려군이 쓰던 야전형 가마가 출토되었다는 기사가 소개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 유구는 여느 고구려 보루에서 확인되는 일반적인 건물지(병영)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 작성자 13.04.30 23:42

    직접 조사하지는 않기에 유구 조사 과정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말이죠. 하지만 그와 동일한 형태의 축조기법이 확인된 병영이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남성골산성에서 이와 유사한 구들주거지가 1기 확인되었으며, 형태적으로 동일한 건물지는 많이 확인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보루 내에서 조금 특수한 용도로 쓰였을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특히 바닥 전면에 대한 내부조사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바닥에 숯을 깔아 보습효과를 극대화시킨 뒤 쪽구들로 방 안에 습기를 제거하여 활이나 화살 같은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조선시대의 사례를 비추어 보면 말이죠). 말이 좀 샜는데, 암튼, 보루

  • 작성자 13.04.30 23:44

    내에서 주둔군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군수품의 비율은 전체의 30% 수준도 채 안 됐을 것으로 보이며, 당연히 보루 내에 가마를 두어 직접 토기를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보루의 규모상 당연히 생산활동도 어느 정도 담당했겠지만, 대부분은 순수 전투병들이 주둔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보루가 6세기를 전후해 임진강 이남~한강 이북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이유는 아마도 고구려가 영역화를 추진하는 과도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도기는 항상 전시태세였다기 보다는 준전시였을 가능성이 높고, 그런 상황에서 일반 징집병이 동원되었다기 보다는 상비군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높죠.

  • 작성자 13.04.30 23:46

    더불어 현재 진행된 연구들은 고구려의 백수십개에 달하는 성들의 초축시기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성곽을 축조시기에 큰 상관없이 고구려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걸 기준으로 영역 확장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교통로와 당시 전쟁 상황, 일부 확인된 고고자료들을 통해 고구려 성곽을 기준으로 하는 영역사를 서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는 중입니다. 원래는 이게 제 박사논문의 주제였는데, 지도교수님이랑 상의한 결과, 이보다 좀 큰 주제로 가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고구려의 제국화 과정을 고고학적으로 밝히는 것 또한 제가 해야할 목표 중 하나라는 걸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13.05.08 16:37

    초축시기를 밝히는 연구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요? 백수십개나 되는 숫자 때문인지, 아니면 정확한 축조연대를 밝히기 어렵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논문주제로 보아서는 기본적으로 그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는 좀 힘들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아마 중국학계에는 성곽축조에 대한 데이타베이스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는데 주인장이 모를 리는 없겠고, 좀 의아하군요.

  • 작성자 13.05.10 14:16

    성곽의 초축시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生土라고 불리는 원지형(그 지형이 형성된 태초의 상태)까지 그 상부의 퇴적토나 부엽 등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국내의 구제발굴조사시 조사구역 전부를 하얗게 긁어서 정리하는 전면제토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시굴조사를 해서 특정 포인트만 그렇게 생토면을 확인할 수도 있으나 성곽이라는 것이 초축된 이후 오래도록 개보수되면서 사용된 녀석인지라 일부 현상을 전체적인 현상으로 확대해석하기가 좀 꺼려진다는 것이 문제죠.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실시된 홍련봉 1~2보루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조사는 보루의 초축상태까지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셈입

  • 작성자 13.05.10 14:18

    니다. 생토면까지 제거한 다음 지금까지의 퇴적토와의 중간 단면상태를 보면(토층) 처음에 어떻게 보루를 만들어서 어떤 식으로 개보수가 진행됐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현재 중국 소재 고구려 성곽은 이런 시굴-발굴조사를 진행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국내성, 환도산성, 오녀산성 등등 몇개 도성으로 불리는 것들을 빼곤 말이죠. 그저 지표조사 하듯이 성곽 내를 슥 흟어서 현 지표면에서 수습되는 유물들을 정리하고, 전체 성곽을 한바퀴 돌아서 대략적인 크기와 시설물, 구조 등을 살펴보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 성곽의 초축시기를 가늠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물론 이건 국내의 다른 성곽들도

  • 작성자 13.05.10 14:21

    마찬가지입니다. 성곽을 전부 전면제토 해서 조사한다는게 쉬운게 아니니깐요(풍납토성의 사례가 가장 대표적이겠네요). 그러다보니 중국 소재 고구려 성곽들을 편년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고, 그러한 성곽들을 통해 시기별 영역 확장사를 살펴보는 것도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통로라든가, 문헌을 통한 지리고증, 당시 전쟁기사 등을 통해서 대략적으로 고구려의 영역 변천사를 살펴보는 것이겠죠(대표적으로 아직도 고구려의 요동 점유가 언제부터 이뤄졌는지는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제대로 고구려 성곽을 발굴할 날이 올까 싶지만,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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