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3. 마흔세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박영수 집사(549)
성경말씀 로마서 4:13~25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촛불집회와 인의認義
찬송 197 이 세상 험하고
광고 평화의 동산 집회 (10월 27일 오후 7시)- 초청강사 정진배 목사
제1기 GMB TV 방송 실무 교육(평화의 동산, 27일, 오후 2~5시)-100명
방송 위원 실무 교육(유튜브 촬영, 편집 실무, 방송 기사 쓰는 법, 숙식사 제공)
가족 방문- 임명화 권사, 직원 총회 11월 20일(추수감사절) 소천-박복례 성도
김장 공동 준비위원장:박명숙, 방금숙, 이원예, 박이순 팀장(11/21~23)
총무 이명자권사(간식 준비)
찬송 363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대추 한 알 -장석주
우리 요양원에도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맛있게 먹었습니까?
감도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부자가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주홍빛 석류꽃이 그렇게도 아름답더니
석류 열매가 세 개나 맺혔습니다.
이 석류나무는 사연이 깊습니다.
논산에 사시는 분이 함열 장날이 되면 꼭 나와서 노점에서 나무를 팝니다.
그것도 20년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머리에 둥근 모자를 쓰고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무를 팝니다.
그래서 나무 장사입니다.
나무를 꼭 닮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무 한 그루씩 사 드렸습니다.
우리 요양원에 있는 대추나무 감나무 사과나무 석류나무들이
다 그 노점상에게서 사다 심은 것입니다.
그런데 석류나무를 심으면 겨울에 얼어 죽고
그래서 석류나무를 여러 차례 사다 심었습니다.
그러면 또 얼어 죽습니다.
그런데 얼어 죽었던 석류나무 뿌리에서 어느 해엔 다시 싹을 틔우는 겁니다.
그리고 또 얼어 죽고
그리고 지난해부터 다시 싹을 틔우더니 얼어 죽지 않고 견뎌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엔 주홍빛 석류꽃이 피더니
세 개의 석류가 열렸습니다.
우리 박영수 집사님께서 애지중지 거름을 주고 돌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탐스럽게 익어가던 세 개의 석류 열매가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 박영수 집사님도 목사님도 하루 종일 속상했습니다.
그렇게 가느다란 어린 석류나무에서 세 개의 석류 열매가
신기하리만큼 탐스럽게 익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아주 인정머리도 없고 경박스런 손이 하나도 남김도 없이 다 따간 것입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13절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절,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절,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절,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절,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절,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절,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절,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엊그제 우리 나동렬 집사님이 소천하시자마자
또 우리 박복례 성도님이 사랑스런 부부 인량 뒤따라가셨습니다.
그래서 조화를 보내 드리고 조문을 갔습니다.
그런데 웬 목탁 소리입니까?
자녀 모두가 불교인들인가 봅니다.
목사님께 세례를 받으신 어머니신데 안타깝습니다.
막내 아드님이 참 효자셨습니다.
부산에 사시는데도 어머님 아프시다면 새벽같이 달려옵니다.
목사님 손을 붙들고 우시는데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좋은 데 가셨으니 편안하게 보내 드리세요.
13절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요즘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죽어 갑니다.
러시아 푸틴은 도대체 어떤 놈입니까?
그래도 지 자식은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은 미국대로 혈맹이고 나발이고 없지 않습니까?
중국도 장기 집권에 들어갔습니다.
중국 국민 15억 명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북한은 북한대로 미사일을 쏘아 댑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높은 물가, 높은 이자에 숨인들 쉬겠습니까?
그런데다 정치 꼬락서니 하고는 엉망진창입니다.
검사스럽게도 어쩌다 대통령이 되더니 검찰 독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제 촛불집회로 서울이 뜨거웠습니다.
목사님도 검찰 개혁 집회에는 서울까지 상경했습니다.
어제 예배 준비를 하는 동안 내내 유튜브 실황 중계를 시청했습니다.
성숙한 우리 국민들의 뜨거운 열기에 눈물이 났습니다.
왜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버렸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믿음의 상속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14절입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우리 이도재 집사님은 묵묵하신 분입니다.
좋고 싫음이 없습니다.
그저 허허허 웃습니다.
목사님도 이랬으면 합니다.
이도재 집사님 아내인 집사님께서 남편을 우리 요양원에 모셔다 두고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살았습니다.
우울병이 날 정도로 너무나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러다 몇 개월 전에 무릎 관절, 고관절 수술을 하고도
또 넘어져서
또 골절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우신 집사님이 죽어라 죽어라 지내고 계십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이까지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텅 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텅 빈 집에서 절뚝절뚝 홀로 지새우다 보니
얼마나 원통하고 외롭겠습니까?
그러다 목사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 계신 요양원에 오고도 싶고 그러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텅 빈 집에서 홀로 지내자니 겨울도 나기 전에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엊그제 금요일 수술 끝에 보를 잘해야 되겠기에
잘 아는 한의원에 한약을 부탁드려서 급히 심방을 갔습니다.
썰렁한 방에서 홀로 절뚝절뚝 장롱에 있는 헌 옷들만 한 짐 꺼내 놓고서
한숨도 한 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15절입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절,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독교의 나라 미국도 이제는 미국부터 살고 보자는 것입니다.
동맹이고 혈맹이고 나발이고 없습니다.
그러니 중국 일본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리고 러시아 푸틴은
왜? 전쟁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무차별적으로 미사일을 쏘아 댑니다.
그러니 사람의 생명이 어디 생명이겠습니까?
너 죽고 나 죽자 이겁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도 러시아 푸틴과 같습니다.
검찰 독재가 온 국민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했습니다.
어제 서울 거리로 뛰어나온 국민이 50만 일 겁니다.
그래서 검사스러운 율법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17절입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19절입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서두에
얼어 죽었던 석류나무가 봄이 되니 뿌리에서 다시 새싹을 틔웠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니 또다시 얼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찾아오니
다시 죽었던 석류나무 뿌리에서 새싹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올해엔 주홍빛 꽃으로 목사님을 설레게 하더니
석류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갔습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90세입니다.
여기에 계신 우리 김복순 집사님이 86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브라함 같은 할아버지만 곁에 있다면 사라처럼 잉태도 할 것 같습니다.
여자 나이 90세면 자궁의 기능이 상실해 버립니다.
그러니 무슨 임신이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오면서 말도 되지 않는 사건들이 수도 없이 일어납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칼잡이 검사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유시민 작가가 말하기를 이건 정치 사고다.
참 불가사의 합니다.
22절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절,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절,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어제 김호태 성도가 오셨습니다.
연세가 92세입니다.
그런데 성격이 얼마나 곧은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돼먹지 못한 성격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목회하면서 많이 고쳐진 것이 이만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누구든 책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 고치려 훈계하지 말고
서로서로 부족함을 채워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얼어 죽었던 석류나무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다시 부활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부활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다시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토요일 날에 국민의 뜨거운 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세계에 사는 우리 국민들이 모두 함께 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바로 이것이 디카이오시스, 인의認義입니다.
국민의 의로움이, 곧 하나님의 의로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