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첫 걸음, 기도
갈라 2,1-14; 루카 11,1-3 /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2022.10.5.;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는 내용상 복음 전체의 요약이 담겨 있고 또 형식상 기도의 대상인 하느님을 친근하게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기도의 기본자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명실상부하게 기도할 때에 우리의 혼이 하느님의 영과 소통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영혼이 생기를 얻게 됩니다.
하느님과 우리가 소통하는 기도에는 우선순위대로 따져서 찬양과 감사와 속죄와 청원의 네 가지 지향이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 역시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데 대한 찬양과 감사의 지향이 전반부에 들어 있고, 이를 위해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는 속죄의 지향과 또한 물질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일용양식과 정신적으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청하는 청원의 지향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관찰해 보면, 다른 이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는 속죄의 기도를 십자가 위에서 바치셨고(루카 23,34),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응하기 위해서는 드러나지 않게 수도 없이 하느님께 청원하기도 하신 것 같이 보입니다만, 이럴 경우에도 항상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드리는 지향이 먼저이셨습니다. 죽은 절친 라자로를 살리실 때에도 먼저 감사를 드리셨고(요한 11,41)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올 때에도 즐거워하며 감사하셨습니다(루카 10,21). 십자가 죽음을 코 앞에 둔 전날 저녁에는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나서 겟세마니 동산으로 가시며 찬미가를 부르기도 하셨습니다(마르 14,26).
하느님을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차이가 이 기도행위에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떠한 하느님 체험도 없는 경우에는 기도를 하고 싶어도 할 줄 모릅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일반인에게 기도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 또는 기도하는 사람답게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그 불신자 혹은 무신론자를 대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행위를 한 연후에 만나거나 그런 지향으로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들이 제법 많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주일 미사에 빠지지만 않으면 신자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자기가 기도하지 않는데 가정에서 기도할 리가 없고,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지 않는데 그 자녀들이 자라서 냉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서 성가정이 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완고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도록 도와주면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일도 선교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완고한 신앙인과 대화를 나누거나 하느님의 일로 협력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완고한 신앙인이 보이는 가장 흔한 특징은 봉사하기를 거부하는 경향입니다. 애덕은 기도에서 나오는데 기도하지 않는 신자의 경우에는 작은 선행을 실천할 기운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일반인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존재를 영 인정하지 않는 이에게는 선교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럴 때에는 너무 무리하지 말고 기다려주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기도를 대신 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고, 기도하기 위한 마음을 갖추는 일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들으신 갈라디아서 편지의 독서는 형식상 논쟁적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고백성 기도입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별안간 벼락을 맞고 박해자의 길에서 돌아서서 십사 년 간 고뇌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았던 바오로였기에, 이 고백을 처음으로 하는 그 심정은 매우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며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메시아이심을 깨달았기에 그는 갈라티아 지방에 있는 여러 공동체들에서도 가난한 이방인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복음을 전했으며, 천막 만드는 일로 노동의 모범을 보여가면서 도덕적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율법을 지키는 데에나 필요한 유다교 할례를 베풀 필요가 없었고 갈라티아 교우들 역시 받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도덕적으로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성 사도단의 수하들이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고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 감옥에 갇혀 있는 틈을 타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배우지 않았고 전력이 박해자인 터라 자기 마음대로 할례를 면제했던 것이라고 깎아 내리면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그 누구라도 유다교식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공동체 내부를 뒤흔들어 놓는 분탕질을 치고 갔기에 이 소식을 감옥에서 듣고 옥중에서라도 사태를 수습하고자 매우 격정적인 투로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진솔한 편지가 갈라티아 지방 여러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다시금 신앙의 확신을 주었고 바오로 사도의 평소 가르침을 더욱 신뢰하며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는 일에도 열성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미 하느님과 통공을 이루고 있는 바오로이기 때문에, 그가 하는 고백성 기도 편지로 인하여 갈라티아 신자들의 상처 받은 마음도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기도의 힘입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의 지향과 자세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배우시고, 기도로써 선교하는 첫 걸음을 사도 바오로의 편지에서 배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