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5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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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놓고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고 난 후에 구원사역을 교회에 맡겨 주었다. 이론적으로는 교회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교회는 노아시대의 방주처럼 주님의 손이 되어 구원사역을 주로 이루어간다. 물론 교회의 사명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교회든지 크게 5가지의 사명을 다 가지고 있다.
첫째는,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식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영광을 찬양하며 기도하게 된다. 예배에는 말씀 기도 찬송 헌금 교제 축도가 있다.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에 회의 때도 예배로 시작하고 하루의 일과도 예배로 시작한다. 예배는 교회의 사명 중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건물)를 예배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이 교육은 주님께서도 직접 실시하였고 또 교회에 위임하였다. 지상명령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고 하셨다.
셋째는, 전도이다.
우리가 흔히 간단하게 국내 전도와 국외 전도(선교)로 나누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전도보다 더 폭이 넓은 것이 선교이다. 왜냐하면 전도가 복음화라고 하면 선교는 복음화 더하기 봉사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선교는 돈 많은 교회만의 사명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건물이 있기 전에도, 또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되기 전에도 선교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말하자면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다.
넷째는, 구제이다.
구제는 간접 전도도 되지만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관계없이 교회는 계속해서 구제를 해야 한다. 집사직이 생기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구제를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끝으로 중요한 것은, 교제이다.
로마의 카타콤에 가보면 아직도 많은 해골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비밀리에 믿기만 하였다면 구태여 모이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생명의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계속해서 교제를 하였다. 이 코이노니아(Koinonia)는 기독교의 본질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큰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교제가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교회는 이 교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작은 모임이 많아 교제를 해야만 봉사와 구제도 할 수 없다.
*. 교회의 성례들
교회에는 여러 거룩한 예식(성례)이 있다. 천주교에서는 7가지의 예식을 성례라고 부른다. 세례, 성체(성찬), 견진(堅振), 고백, 병자, 신품(神品), 혼인 등이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행하신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행한다.
(1)세례식
세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성례적 견해(sacramental view)가 있다.
로마가톨릭과 루터교에서 이 견해에 따르는데 세례를 통하여 실제로 죄가 용서된다고 믿는다. 루터교의 차이점은 세례받는 자의 신앙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물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믿는다.
둘째, 언약적 견해(covenantal view)가 있다.
세례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으로 믿고 어른은 물론 어린아이에게도 행한다. 유아세례의 근거가 바로 이 언약적 견해에 있다.
셋째 상징적 견해(symbolic view)이다.
세례가 죄를 용서하는 것은 아니지만 죄 씻김의 상징으로 본다. 즉, 순종과 헌신의 상징으로 세례를 행한다. 대부분 개신교의 견해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장로교에서 유아세례를 주는 것은 언약적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침례교에서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신앙고백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언약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2)성찬식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3∼26)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찬식을 행한다. 1년에 적어도 2차례(부활절과 추수감사절) 행한다. 여기서 기념한다는 말의 히브리어 개념은 단순히 기념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사건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2000년전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이 현재적으로도 일어나며 거기에 성도들이 믿음으로 참여한다는 뜻이다. 그런 각도에서 볼 때 성도들은 더 큰 은혜를 받는다.
그러면 성찬의 의미는 무엇인가? 천주교에서는 포도주와 떡(원문의 뜻은 빵)이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화체설(transformation)이라고 부른다.
루터교에서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고 함께 공존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성체공존설(consubstantiation)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상징적 기념설(symbolic memorial)을 주장한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예배를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worthship(가치가 있는 것이란 뜻)’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구약의 예배는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아벨의 예배(첫 새끼와 기름의 번제)와 가인의 예배(땅의 소산의 소제)에서 시작한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 때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말씀한 것으로 보아 제물을 바치는 제사(예배)를 드린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모세 때에 와서 이 예배는 여러가지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구약의 예배는 레위기에 가장 분명하게 그리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소위 5대 제사가 바로 그것이다. 레위기 1장에는 번제, 2장에는 소제, 3장에는 화목제, 4장에는 속죄제, 5장에는 속건제가 나온다.
번제는 헌신과 순종을 말하고, 소제는 봉사를 의미하고, 화목제는 평안을 뜻하고, 속죄제는 대속을 의미하고, 속죄제는 만족을 말한다. 이 5대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온전히 드리라’는 데 있다.
신약의 예배는 구약의 예배와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특징되고 있다. 신약의 예배는 영적 복음서인 요한복음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요4:23∼24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신약으로 접어들면서 예배의 날짜도 안식일(토요일)에서 주일(주님의 날)로 변하였다. 안식일은 창조기념일이고, 주일은 부활기념일이기 때문에 신약시대인 지금에는 실체가 왔기 때문에 그림자를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놀랍게도 주일(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경배하는 날)과 일요일(태양신을 섬기는 날)이 같은 날이었기 때문에 콘스탄틴황제 때 이 날을 공휴일로 정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주일성수의 방법은 보다 영적이고 기쁨과 감사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참된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영어로 예배를 ‘worship service’ 혹은 그냥 ‘service’라고 부르는데 그 말속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즉, 예배는 생활과 봉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주일에 보면 웬 성도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러나 월요일부터 토요일에는 성도들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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