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mdtcs.net/nscho/gb4.utf8/
사도시대, 속사도 시대의 예배
I. 시작하는 말
II. 신약시대 예배에 관한 기록과 역사
(1) 아람어 계통의 기독교 예배 (2) 헬라적인 기독교 예배 (3) 이방인 기독교의 예배
III. 신약시대 예배형태의 재구성
(1) 성경낭독과 말씀 (2) 성도의 교제 (3) 떡을 뗌과 성찬 (4) 기도 (5) 신앙고백 (6) 찬송 (7) 세례/침례 (8) 헌금과 예물 (9) 예배 시간 (10) 예배 장소
IV. 신약시대 예배의 본질
(1) 그리스도와의 관련성 (2) 교회 회중과의 관련성 (3) 세계와의 관련성 (4) 역사의 종말과의 관련성
V. 속사도 시대
VI. 마치는 말
------------------------------------------------------------------------------------
I. 시작하는 말
우리는 앞 장에서 이미 신약시대에 예수님의 예배이해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어서 여기서는 신약시대의 예배 중 그 이후,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사도들의 시대(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시대)부터 속사도 시대(A. D. 60-100년)에 이르는 초기 기독교의 예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차례대로 먼저 (1) 신약시대의 예배에 관한 기록과 역사를 초기 기독교 세 부류의 예배와 관련해서 진술하고, 그 다음 (2) 신약시대의 예배형태를 예배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해 보며, (3) 신약시대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도 규명해 보며, 마지막으로 (4) 속사도 시대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마치기로 한다.
II. 신약시대 예배에 관한 기록과 역사
예배사적으로 보면, 사도시대와 속사도 시대에는 아직 기독교예배의 정착이 완전히 이룩되지 못했으며, 엄밀히 따지면 기독교예배의 역사는 2세기 중반이나 3세기 초(A. D. 150 - 20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사도시대, 속사도시대의 예배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문헌은 아직 발견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약성서(사도행전과 서신서)에 기록된 것에 의존하여 사도시대, 초기 기독교의 예배를 규명하고자 할 때, 다음 세 부류의 예배형태가 있었던 것으로 구별해볼 수 있다. 즉, 아람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의 기독교 예배, 헬라적인 기독교 예배, 이방인 기독교 예배가 그것이다. 이 세 집단의 예배는 사도시대 이후의 기독교 발전뿐만 아니라 신약시대 예배의 발전에 대한 연대기적이고 문화적인 통찰을 제공해준다.
(1). 아람어 계통의 기독교 예배
사도시대에는 아직도 유대교와의 교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권 아래에서 기독교 진리가 싹트던 시기였다고 하겠다. 그래서 예수시대와 마찬가지로 성전에서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었고, 그러기에 비록 성전제사에 동참치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성전예배의 영향은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받고 있었다고 하겠다. 이 영향권 하에 있는 자들이 바로 아람어를 말하는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런데 아람어를 말하는 기독교인들은 유대의 예배와 동일하면서도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성전과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행2:46). 그러면 여기서 아람어를 말하는 기독교인들의 예배에 대해 살펴보자!
1) 성전예배의 연속
아람어 계통의 기독교 예배는 성전예배의 연속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성전의 기도시간을 준수하고(행3:1), 성전을 복음 선포의 장소로 사용했다(행3:11-26; 4:12-13,19-26,42). 누가에 의하면, 율법에 열심이 있고, 유대관습들을 따라 살기를 힘쓰는 유대인 수만 명이 있었다(행21:20-21). 나아가서 바울은 정결예식(결례)에 참여하도록 권고 받았으며, 그대로 행하기까지 했다(행21:26). 이것은 유대교 예배와 기독교 예배 사이에 있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총회(행15장)에서 아람어 계통의 기독교가 유대주의자들에 대하여 반대한 사실은 아람어를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와 유대교의 차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또한 사도들의 성전사용과 관련해서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의 활동무대인 성전이 예수님의 추종자들인 사도들에게 달가운 장소일 순 없었겠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한 그 사도들의 신앙과 삶에는 일대변화가 일어나 그 어떤 곳에서도 예수의 사건을 외치는 대담한 사고와 태도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고(눅24:53), 사도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날마다 성전에 모여 기도하길 힘썼으며(행2:46; 3:1), 날마다 복음 선포와 가르침에 전력했다(행4:1이하). 그러다 보니 성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제자들은 이방인인 헬라인들까지 성전으로 불러들여 성전을 더럽힌 자들로 오해받기도 했다(행21:28). 그들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에 의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베드로와 사도들을 끌어내어)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행5:20)고 까지 주문받을 정도로, 성전을 선포의 장으로 활용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제사장들과의 극심한 갈등을 야기해서, 심지어 바울 같은 사도는 성전에서 끌려 나가 죽음을 당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행21:30; 26:21).
2) 집 예배의 추가
유대교적인 기독교인들이 유대교인이 되는 것과 기독교인이 되는 것 사이의 긴장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추가로 집에서도 예배를 드렸다는 것에 의해 암시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유대교 예배와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누가에 의하면,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행2:42). 아람어 계통의 기독교 예배의 중심은 분명히 성만찬에 있었다. 유카리스트(Eucharist)에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같이 가정에 모였으며, 그 가정은 성전과 회당을 대신해서 새로운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행2:46; 5:42; 롬16:5; 고전16:19; 몬1:2). 이런 유카리스트적 행동들에는 기독교 예배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내용이 밝히 나타나 있다. 아직도 초대교회의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의 회당예배가 이용되고 있었다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특히 선교적 목적에서였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회당이나 성전들은 기독교의 복음전파를 위해 적절한 기회로서의 가능성들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행3:1, 11-26; 5:12-16, 40).
3) 그 밖의 예배전통
구약성경은 언약의 책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행1:16-20), 기도와 찬양이 나타나며, 나아가서 신유, 기사, 표적, 예언(행2:43이하; 4:24-31; 11:27이하; 15:32) 등 영적인 것, 은사적인 것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 얼마나 확실한 예배전통이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바(Ἀββά),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할렐루야(ἁλληλουϊά), 아멘(ἀμήν) 같은 말은 유대교 예배에서 넘겨받아 헬라어를 사용하는 교회로 계승된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시행된 세례/침례는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전승에 기인한 것이다(행2:38).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 기독교 영역에서는 예배생활의 실제에 따라 다시금 율법에 대한 관찰과 의식주의가 강화되었으며,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게서 하나의 특별한 영향을 받게 된 것을 알 수 있다(행15:1이하; 갈2:3-5,11-14).
(2). 헬라적인 기독교 예배
헬라어를 사용하던 교회의 예배는 아람어를 사용하던 교회의 예배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1) 유대교의 의식주의 배척(排斥)
헬라적인 예배는 유대교의 의식주의를 배척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아람어 계통의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헬라주의자들은 성전과 히브리 제의관습에 빠져들지 않았고(이런 면에선 예수의 태도에 더 가깝다), 그 당시 유행하던 헬레니즘 문화관습을 폭넓게 받아들였다. 스데반의 설교(행7:49-50)에는 이런 성전과 제의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이런 헬라적 기독교의 중심지는 안디옥 교회였다. 행6:1-6에는 일곱 집사(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를 임명하여 구제의 일을 감당케 했다. 여기서 일곱 집사는 모두 헬라식 이름을 가졌으며, 이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모두 헬라인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2) 근본적으로 새로운 적용
유대교의 예식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재해석되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고(마12:8), 연중 절기들의 핵심이 되신다. 그리스도가 유월절 양이 되고(고전5:7; 롬3:25), 그리스도의 몸과 성도(고전3:16-17; 6:19; 엡2:19-22; 5:27; 벧전2:4-5; 계21:2,10)가 성전이 되고, 교회 구성원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2:9)이 되었다. 이런 적용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어서 유대교 예배의 핵심부분에 타격을 주었다. 기독교의 예배와 유대교의 예배의 차이는 히브리서에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히7:18등).
(3). 이방인 기독교의 예배
기독교가 이방인들에게까지 확장되리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메시아요, 유대인들의 열망에 대한 성취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자기들의 메시아와 그의 왕국이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암시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그의 왕국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베드로에게 이런 생각을 열어주신다(행10:15). 그러면 초기의 이방인 기독교의 예배에 대해 살펴보자!
1) 고린도전서와 이방인 기독교 예배자료들
초기의 이방인 기독교 예배에 대한 포괄적인 예는 고린도전서에서 발견된다. 고린도전서는 오순절 사건 이후 26-27년, 즉 A. D. 50년대 중반에 쓰여 졌다. 이 시기의 기독교 예배에 대한 연구는 다음 두 가지 관심사를 배경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는, 이방인들은 예배에 있어서 자유를 유지하는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또 하나는, 그들은 예배드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이방인들은 자유에 대한 욕구가 황홀경이나 무질서로 나타나 예배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바울은 은사를 질서 있고 규모 있게 사용하라고 충고했다.
고린도 전서는 예배라는 주제에 대한 매우 많은 양의 교훈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예배자료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진 않다. 오히려 예배에 관한 자료들은 다소간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관련되면서 편지 전체에 분산되어 있다. 그리고 간접적인 언급들을 그 시대의 다른 예배자료들을 통해 분석해서 검증을 받은 자료들로는 축복의 형태(고전1:3; 16:23), 주일예배(고전16:1-2), 오순절 기념예배(고전16:8), 유월절(고전5:7), 거룩한 입맞춤(고전16:20), 그리고 출교를 강조하는 교회규율(고전5:1-13; 16:22) 등이 있다.
2) 예배질서의 필요성 강조
이방인 기독교의 예배가 자유의 도를 넘어서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했다.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 기독교의 예배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은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고(고전14:26),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할 것을 강조한다(고전14:40). 이러한 강조점은 맨 먼저 은사와 관련해서 나타난다. 곧 방언과 통역 등. 그런 은사가 공중예배에서 지나치게 나타나 혼란을 야기할 때(고전14:23), 질서 있게 이루어져야 함을 요구했다. 또한 주의 만찬에서도 어떤 이는 먼저 갖다 먹고,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하는 등(고전11:20-21), 무질서와 혼란이 야기됨에 따라 예배의 질서가 요구되었다.
3) 예배의 내용에 대한 가르침
㉠ 바울은 유감스럽게도 예배의 순서가 아닌, 예배의 여러 주요 측면들, 예배의 내용들에 대해, 특히 고전 12장과 14장에서 언급하고 있다: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고전14:6).
“찬송시, 가르치는 말씀, 계시, 방언, 통역함”(고전14:26).
㉡ 또한 응답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기도, 찬미, ‘아멘’을 말하는 것, 감사함”(고전14:13-27).
㉢ 바울은 “공동의 유익을 위한” 성령의 역할과 은사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을 분별하는 능력, 각종 방언을 말하는 능력, 방언을 통역함”(고전12:7-11).
4) 예배의 핵심요소로서 설교와 주의 만찬 강조
이방인 공동체인 고린도 교인들은 설교와 주의 만찬에 대하여 어떤 오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바울은 예배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먼저, 주의 만찬을 나눔에 있어서 바울은 우리 주의 죽으심을 공동체 친교의 중심부분으로 강조하고(고전11:23-26), 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자신을 살펴 볼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고전11:27-30) 진지함의 요소를 도입했다.
㉡ 그 다음 바울은 설교에 대하여 그들에게 교회 안에서 전승되어 내려온 케리그마를 상기시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교회가 전해준 전승을 상기시키며, 이 전승을 신앙고백 형태로 고전15:3-6에서 기술했다. 이 고백은 케리그마의 핵심부분에 속하는 것으로 모든 기독교인들을 위한 기본적인 고백으로서 기독교 설교의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모든 자료들은 이방인 공동체의 예배 안에 있는 현저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으로 초대교회의 예배를 세 부류의 예배공동체로 분류해서 특성적으로 살펴보았다.
III. 신약시대 예배형태의 재구성
앞장과 본(本)장에서 우리는 신약시대의 예배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신약에서 유대종교와의 관계, 유대 예배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신약시대 예배에 관한 기록과 역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기독교 예배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시대의 예배의 골격과 예배형태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신약시대 예배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윌리엄 맥스웰(William D. Maxwell)이 규정하는 사도시대의 예배의 골격을 살펴보자! 그는 예배의 역사부분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해서 예배학계에 큰 공헌을 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예배학자로, 사도시대의 예배의 골격을 다음 네 가지 중요사실로 규정하고 있다.
첫째, 처음 얼마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 함께 회당과 성전에서 계속 예배를 드렸다.
둘째, 아가페 식사(Agape Meal), 또는 애찬(Love Feast)이라고 알려진 공동식사를 자주 나누었다. 공동식사로서의 애찬은 2세기 중반부터 예배로부터 완전 분리된다.
셋째, 애찬이 끝날 때쯤 주님이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말씀하신 명령에 따라 유카리스트(Eucharist)를 기념했다. 성찬식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기독교 예배의 구심점으로 확고한 위치를 지키면서 사도들의 사역의 현장에서부터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넷째, 특별한 은사체험으로 예언과 방언이 모임 속에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통제된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 다음으로 사도시대의 예배형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예배의 기본적인 요소들과 형식들에 대해 살펴보겠다. 성경에는 사도시대의 예배순서가 정리되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예배요소들이 여기저기 나오는 것을 본다. 이런 많은 요소들이 모두 예배 안에 소용되어 지켜진 것은 아니었고, 예배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 제한된 순서들이 적용되었다. 예배의 기본적인 요소들은 사도행전에서(행2:42,46, 5:42) 발견되는데, 그 주된 요소들은 다음 네 가지이다: ① 성경낭독과 말씀, ② 기도, ③ 성도의 교제, ④ 떡을 뗌과 성찬. 이 외에도 ⑤ 신앙고백, ⑥ 찬송, ⑦ 세례/침례, ⑧ 헌금과 예물 등이 예배행위 속에 추가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순서들은 회당예배, 다락방 예배, 그리고 비공식적인 예배에서 지켜지던 것들이다. 여기서 이러한 예배의 요소들 중 일부를 규명하고, 아울러 예배의 장소와 시간에 관한 것도 다루어보자.
(1) 성경낭독과 말씀
성경낭독(율법서, 성문서, 예언서, 복음서, 서신서)은 초기 그리스도교 예배의 한 요소였음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시려고 서셨고(눅4:16), 바울도 성경낭독에 관해 많이 언급했다(골4:16; 살전5:27; 딤전4:13). 바울의 서신들은 교회에서 읽히도록 쓰여 졌으며, 그러기에 그 서신들이 예배에서 정규적인 교훈의 일부가 되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구약성서, 특히 예언서와 시편에서 발췌한 성경구절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교 예배의 일부가 되었다.
말씀에는 복음전파, 가르침, 선포, 설교 등이 여기에 해당하겠는데, 다드(C. H. Dodd)는 일찍이 그리스도교 성경은 “가르침”(Didache)을 “선포”(Kerygma)와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선된 케리그마가 신약 설교의 핵심을 나타낸다고 했다. 사도시대 설교에는 베드로의 설교(즉, 행2:14-36의 오순절 설교, 행3:12-26의 성전 바깥뜰 솔로몬 행각에서의 설교, 행10:34-43의 이방인들에게 한 설교)와 바울의 설교(행13:16-41의 안디옥 설교, 행14:15-17의 루스드라 설교, 행17:22-31의 아레오바고 설교, 행20:18-35의 밀레도 설교, 행22:1-21의 바울의 회심에 대한 증언, 행24:10-21의 총독 벨릭스 앞에서의 답변)가 대표적인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예배에서 말씀의 표현 형태로 나타나는 전(全)목록을 지칭하고 있는데, 가르침, 계시, 예언, 방언이 그것이다.
(2) 기도
초기 기독교 예배공동체의 특이한 현상은 기도하는 공동체였다. 그들은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행2:42). 이렇게 모여진 공동체는 자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믿는 신앙공동체의 강한 의식이 발로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면 이제 여기서 예배의 요소로서의 기도에 대해 살펴보자.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마6:9-13)은 가장 전형적인 모범기도로, 이것은 모든 세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의 표준이다. 이 모범기도에 의하면, 참 예배는 경배하는 행위로 시작해서 효성스런 헌신으로 끝난다. 그 외에 신약성서에서 기도의 중심에는 감사와 간구의 기도, 찬양, 중보기도와 축도가 있다. 그 예는 빌4:6; 골2:7; 딤전2:1-2; 고후13:13에서 볼 수 있다. 이 기도들은 모두 하나님에게로 향해 있다. 그런데 가장 오랜 예배기도 가운데 하나인 아람어 “마라나타”(Maranatha,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또는 “주님이 오신다./오셨다.”)라는 외침(고전16:22; 계22:20)은 예외적으로 그리스도에게로 정향되어 있음을 본다. 스데반도 돌에 맞으며,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고 기도했다(행7:59). 기도의 태도에 대해선 다음 세 가지 행위가 목격된다.
① 서서 기도함 - 손을 위로 올리고 위에서 채우는 열려진 잔을 상징(막11:25; 요11:41; 딤전2:8).
② 무릎 꿇음 - 개인적 품위에 대한 단념의 표시(눅22:41; 엡3:15; 빌2:10)
③ 프로스퀴네오(무릎 꿇고 경배) - 굴복(복종)의 표시로 바닥에 엎드림
그리고 공개적인 고백도 초대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한 관례이었던 것 같다. 딤전6:12에 의하면, 증인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함이 있었고, 야고보는 자기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죄를 서로 고백하고 서로 기도하라고 권했다(약5:16). 백성의 “아멘”은 신약성서의 많은 곳에서 발견된다. “아멘”은 인도자가 한 말에 회중이 찬의(贊意)를 표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3) 성도의 교제
기도하기에 힘쓴 신앙공동체의 공동체 의식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나누어주고, 물건을 서로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굳혀 나갔다. 행2:44-45에는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누는 사랑의 실천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행6:1-6에선 집사직분을 두어 구제를 감당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이런 공동체 의식과 성도의 교제는 예배하는 공동체로서 초대교회의 예배를 이어가는데 귀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그리고 권면은 예배의 필수적인 것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 사랑과 선행을 격려”(히3:13; 10:24)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주 안에서 권위를 가지고 서로 권면하고 서로 책망하라고 바울은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했다(살전3:2; 살후3:12; 딛2:15).
(4) 떡을 뗌과 성찬
주님의 만찬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예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자기를 기념하여 성찬의식을 베풀라고 명령하셨다(마26:26-28). 오스카 쿨만(O. Cullmann)은 주님의 만찬이 “모든 모임의 기초요, 목표”였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행2:42에는 떡을 떼는 행위가 발견되나 포도주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공동식사행위로 유대인들의 식사에서 연유된 것으로 사려 된다. 그러므로 애찬(愛餐), 아가페 밀(Agape Meal)의 성격을 지니는 공동식사는 최후의 만찬을 기리는 성찬과는 분리되기 시작했다. 주님의 만찬이 초기의 예배순서에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그것이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생동적인 하나의 경험이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겠다. 고전11:23이하에는 성찬에 대한 기록이 길게 나온다. 여기서 성찬은 그리스도의 현재적 임재, 그리스도와의 연합(구원),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만찬의 선취(先取)적 행위를 의미한다.
(5) 신앙고백
바울은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가 구원의 한 과정이라고 말한다(롬10:9). 신앙고백은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신앙고백을 통하여 공동체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둘째, 인간에게로 향하는 것(공동체가 한 목소리로 고백하는 것은 신앙의 내용이 다른 가르침을 구별하는 성격을 지닌다). 교회사에서 신앙고백은 항상 교리논쟁 속에서 교회의 입장을 밝히는 선언적 의미로 나타났고, 나아가서 다른 교리와 구별하는 심판적 기능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앙고백은 초대교회의 예배자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가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6이하)은 유대교와는 전연 다른 선언으로, 가장 오래된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의 원형이 된다. 그리고 사도신경은 5-6세기경 로마교회에서 만든 것으로 본다.
(6) 찬송
유대인의 회당예배에서처럼 성경낭독과 설교 외에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모임에는 기도와 찬송의 노래가 확실하게 설정되어 있었다(참고, 골3:16이하; 엡5:19이하; 고전14:15). 특히 예배와 관련해서 볼 때, 교회는 처음부터 노래하는 교회였던 것을 알게 된다. 먼저 골3:16과 엡5:19에는 3가지로 구별된 찬송형태가 소개되고 있음을 보는데, 즉 그것은 시(Psalmen), 찬미(Hymnen), 신령한 노래(Geistliches lied)들이다. 여기서 “시”는 구약의 시편들이 불려진 것으로 본다. 엡5:19에는 “서로 화답하며”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러한 시편이 인도자와 회중 사이에 서로 교대로 화답하며 노래했던 것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교대송은 후에 로마교회로 오면서 찬양대나 합창대로 발전되었다고 할 것이다. A.D. 111-113년경 플리니/플리니우스(Pliny, Plinius)가 트라얀/트라야누스(Trajan, Trajanus)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 초대교회 예배에 대한 소식이 있는데, 예배에서 찬송은 서로 교대형식으로 불렀다고 전해준다.
이후로 예배에서의 노래는 시와 함께 만들어 불려 졌는데, 구약의 시편이 본보기가 되고 있으며, 초대교회가 예전에서 사용한 찬송으로는 눅1-2장의 내용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눅1-2장을 내용으로 한 노래는 3개의 칸티카(cantica) - 마리아의 찬가(Magnificat, 눅1:46-55), 사가랴의 찬가(Benedictus, 눅1:68-79), 시므온의 찬가(Nunc Dimittis, 눅2:29-32) - 와 영광송(Gloria in Excelsis, 눅2:14) 등이 있는데, 모두 다 복음서에 기록되기 이전부터 교회에서 알려지고 사용되던 교회찬송가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요1:1-18; 빌2:6-11; 골1:15-20 등과 같은 그리스도 찬양이나 계시록에서 발견되는 많은 찬송시나 영광송(계4:8,11; 5:9,12-13; 7:12; 11:17-18; 12:10-12; 15:3-4; 19:1-2,6)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예배전통들이 여러 기독교공동체들 속에서 발전되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찬송은 개 교인과 온 회중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것으로 찬송 없는 예배는 생각할 수 없었다. 믿음을 작용하게 하는 것은 내재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이고, 성령은 찬송을 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찬송은 그리스도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새 시대의 적합한 표현 형태요, 의사소통의 방식이었다. 찬송의 근거와 내용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회중의 찬송은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교회 회중을 향해,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향해서이다. 회중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행위를 찬양할 때에 그 회중은 하나님께 그들의 찬양의 제물과 감사의 제물을 봉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어거스틴은 하나님께로 향한 찬송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래하는 자는 이중적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다”(Bis orat, qui cantat).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예배에서 찬송은 기도에 속한다. 그래서 찬송은 전파된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서 예전적인 부분의 일차적이며, 근원적, 필수적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루터도 토르가우(Torgau)에서의 예배당 봉헌식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집에서는 다른 아무 것도 이루어지게 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 자신이 스스로 그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며, 우리는 다시 그와 함께 기도와 찬송을 통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하나님께 그 영광을 찬송할 뿐만 아니라 또한 경건과 유익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도 노래한다. 이것은 또한 복음전파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7) 세례/침례
교회의 주요예전 중 하나는 또한 세례/침례이다. 세례/침례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입회자격조건인데, 일생에 단 한 번의 일회적 사건으로 이루어지게 된다(고전12:13). 세례/침례행위는 요한의 침례를 전제하게 되는데, 세례/침례는 이렇듯 인간의 회개를 준비함에 근거하여 한 세례자에 의해 시행되었으며, 이것은 마지막 시대 구원에 대한 보증의 표현이었다(막1:4; 마3:7-11; 눅3:7-9,16; 참고, 겔9:4). 세례/침례는 물로 행하며(고전6:11)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행2:38; 8:16; 10:48; 19:5; 고전6:11), 이후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것이다(마28:19; Did.7,1). 비슬리-머레이(George R. Beasley-Murray)는 그리스도교의 세례와 초기형태의 침례집례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세례/침례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갈3:27) 허입예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입회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세례를 통해 수세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라는 의식을 갖는다(고전6:11). 세례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근거하여 죄의 용서를 의미하며, 나아가 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것이었다(행2:38; 롬6:6). 즉 그리스도교의 세례/침례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연합함을 보증하는 것이며(롬6:3-5),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과 결부된 것이다(행2:38; 롬7:6; 갈3:27 - 4:7; 고전6:11). 세례를 받은 자는 성령에 힘입어 “주 예수”를 외쳤다(고전12:3).
(8) 헌금과 예물
초대교회가 그들의 모임에서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헌금(십일조) 같은 것을 드렸는지에 대한 역사적 문헌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들이 모일 때 준비한 헌금이나 예물을 드리도록 권고한 것으로 보인다(고후8:2-4; 고후9장; 고전16:2). 그가 이처럼 헌금을 하도록 한 이유는 역사적으로는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이 기근과 흉년이 들어 고난당하게 되자 그들을 도울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신약의 역사적 연구는 전한다(롬15:26). 즉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기 위해 한 일이었다. 물론 예배에서 이렇게 헌금하는 것은 사도 이후시대와 로마교회로 오면서 자연의 농산물을 제단에 가져와 교회의 가난한 형제를 도우는 일로 발전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될 수 있다(빌4:18; 비교, 히13:16).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행하는 헌금은 하나님이 범사에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헌신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구약의 유대종교의 전통을 따라 십일조가 강조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시행하는 것이 세상적인 축복과 연결되는 것인지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예배에서의 헌금은 헌금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거나 그것이 하나님에게 무엇을 이루기 위한 성취의 수단이기 보다는, 예배 자체가 그를 향한 우리의 마음과 신앙의 표현이듯이, 하나님이 영육과 범사에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의 마음 바로 그것이어야 할 것이다.
(9) 예배시간
일찍부터 기독교는 유대인의 안식일 예배와는 구별하여 주님의 날(Herrentag), 주일에 모였다. 이 날의 선택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신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첫날에 빛을 창조하신 것과 서로 일치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빛의 날인 일요일에 그리스도인들은 축제일로 행사를 가졌다.
②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매 주일 축하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를 기억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주일예배가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안식일의 주인은 인자라고 말씀하셨다(막2:27-28). 이방 기독교인들도 안식일을 지킨 흔적이 있다(갈4:10; 골2:16). 마24:20-21절에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선(행20:7; 계1:10; 고전16:2) 초대교회의 예배행위가 일요일에 행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주일 아침에 모여 부활사건을 기억하고 찬양했다. 사람들은 해뜨기 전 일찍이 주일에 모여 예배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하여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안식일 예배보다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것임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바나바 서신에도 주일예배의 우위를 이야기했고, 주후 3세기 시리아 작품인 Didascalia Apostolorum에서는 주일예배만 지킬 것을 언급하고 있다. 추정컨대, 주후3세기까지는 안식일 예배와 주일예배가 병행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어차피 주일에도 정상근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을 고려할 때, 완전히 주일예배로 바뀌게 된 것은 주후 4세기경 콘스탄틴 대제의 공인이 있은 후로 추측된다.
(10) 예배장소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먼저 가정에서 시작된다(행1:12-13). 물론 그 후에도 성전에서 모임이 개최되기도 했다(행2:46). 예수님은 성전 안 솔로몬의 행각(요10:23)에서도 가르치셨는데, 거기에서도 역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행3:11). 그 외에 바울의 선교 상황에서의 예배는 거의 가정에서의 모임으로 이해된다. 선교지역에서의 모임은 가정이거나 시장에서(행17:17, 아덴에서의 선교), 유대인들의 회당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듣는 일을 행했다고 전한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약 2세기 이후부터 지역모임이 형성되면서 교회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이상에서 우리는 사도시대의 예배형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예배의 기본적인 요소들과 형식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끝으로, 파이퍼(Kenneth G. Phifer)의 말을 빌려, 사도시대의 예배에 사용된 신약성서의 자료들을 통해 많은 특색들을 지적해보자.
1)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지도자의 문서들, 즉 바울의 서신들, 복음서 기사, 그리고 아마도 그들에 관한 말의 회상록 같은 것들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 문서들은 율법과 예언서보다 상위에 놓였다.
2) 그리스도교의 예배에서 시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엡5:19)이 찬양에 사용되었다.
3) 세례(침례)와 성찬식이 그리스도교 예배에 특색 있게 첨가되었다.
4)성령이 오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다스리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식이 있었기에, 그리스도교는 열렬한 정신을 가지고 예배드릴 수 있었다. 예배는 맨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행위를 축하함이 되었다. 부활은 주님 자신이 그들의 가슴 속에 심어놓은 소망에 승리의 건반을 울리는 것 같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바울은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는 말로 표현했다. 이처럼 깊은 신비감과 경외심과 승리의 확신을 주신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5)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시간과 장소에 있어서 역시 유대교와 달랐다. 안식일이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로 바뀌고, 장소도 바뀌어, 성전이나 회당에서가 아니라,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집이나 가정에서 예배드렸다.
IV. 신약시대 예배의 본질
사도시대 초기 기독교 예배의 본질을 다음 네 가지 관련적 특징으로 규정해 볼 수 있겠다. 그것은 ① 그리스도와의 관련성, ② 교회 회중과의 관련성, ③ 세계와의 관련성, ④ 역사의 종말과의 관련성 등이다.
(1)그리스도와의 관련성
구약의 예배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은 시내 산 사건에 정초하고 있다면, 신약의 예배는 새 언약의 시작인 그리스도 사건에 정초하고 있다. 그래서 예배의 표현방식도 그리스도와의 관련성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언제나 설교되고 찬양되어야 했다. 그리고 주의 만찬이 베풀어졌다. 세례/침례도 그의 이름 안에서 회개하고 자의로 돌아오는 모든 자에게 베풀어졌다. 초기 기독교의 신앙고백의 다양한 모습도 예수님이 메시아요, 주님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이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시자로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고백이었다. 그리고 신약의 예배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일을 선포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를 통해서 계속 이루어질 것에 대한 약속이요, 감사하는 찬송으로서의 응답인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예배의 기초로서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해 다시 좀 더 자세히 언급해보자.
㉠ 그리스도의 탄생 -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셨음을 찬양하는 상당량의 예배문학을 출현시켰다. 탄생기사의 요점은 마리아의 찬가(눅1:46-55)에서 매우 적절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예배의 어조는 가장 초기의 교회찬송들 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사건은 죄와 사망의 권세가 파괴되었음을 강조하는 예배의 응답을 산출했다. 이런 주제는 주의 만찬뿐만 아니라 초기 설교의 초점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말한다(골2:15). 결국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영적 경험이 따를 때만이 예배가 감격적 예배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약화된 축제적 분위기는 인간중심적이고 천박한 예배가 될 수 밖에 없다. 기쁨이 있는 축제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예배자의 마음에 들어오면서 이루어진다(벧전1:8).
㉢ 승천, 성령강림, 재림과 심판은 예배의 초점을 과거의 사건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건들의 최종적인 완성에도 맞추고 있다. 그리스도와 관련된 사건들은 이런 방식으로 기독교 예배의 내용을 결정지었던 것이다.
(2) 교회 회중과의 관련성
초기 기독교의 예배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교회 회중과의 관련성을 통해 특징 지워진다. 즉 인간들이 구원에 참여하는 것과 자신들이 예배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은혜의 선물에 참여하는 것으로서의‘코이노니아’와 영접한 은혜를 계속 나누는 것으로서의 코이노니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양자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예배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실재를 위한 기본적인 표식인 것이다(참고, 고전10:16이하). 이것을 통해 역시 교회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고전14:3; 5:12). 교회란 개념이 구체적인 지역교회를 나타내는데 사용된 것처럼,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란 것이 공동체의 우주적인 교제를 나타내는데 적용되어질 수 있다(롬12:4이하; 고전12:12이하, 14-27).
(3) 세계와의 관련성
초기 기독교의 예배의 특징은 또한 세계와의 관련성을 통하여 규명되어질 수 있다. 그것은 예배생활과 일상의 책임에 관하여 공동적 연관성을 표현하는 데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성찬을 포함한 예배의 모습 그 자체에서 발견된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예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한적이었다. 이에 대해 신약의 가르침은 하나의 윤리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 밖에 있는 자들과 그 어떤 대립적인 충돌을 야기해선 안 되며, 항상 그리스도인의 방식을 통하여 선교적인 섬김이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참고, 고전10:32; 벧전3:13-17).
(4) 역사의 종말과의 관련성
초기 기독교의 예배의 특징은 또한 종말론과의 관련성 속에서 말할 수 있다(고전16:22). 그리고 현세에서 받아들인 구원과 지상에서 믿는 자들과의 교제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구원의 완성과 그 실재에 대한 참여는 말할 것도 없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자의식 안에서 나누는 교제이다(계21:22 - 22:5).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예배는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예배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언젠가는 함께 축하하게 될 하늘의 예배에 대한 내적인 준비가 중요하다(히4:3-16; 12:18-24; 13:12-14; 계14:1-5; 19:1-8).
V. 속사도 시대(The Subapostolic Period )
사도시대를 넘어 속사도 시대로 접어들면서(제자 → 사도 → 속사도(사도의 제자) → 감독으로의 명칭변화로 시대를 구분해 볼 때) 초기 기독교의 예배는 유대주의를 탈피하여 고유한 예배로 점차 정착되고 발전되어 갔다. 속사도 시대는 보통 주후 60년에서 100년까지의 기간을 지칭한다. 물론 정확하게 연대를 구분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대체로 사도들의 활동이 끝난 후부터 100년까지, 또는 100년 이상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은 초대 교회가 매우 활발하게 형성되어가던 시기여서 교회의 선교활동이 로마제국의 전역과 그 너머까지 이를 정도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네로 황제가 주후 63년 7월의 로마 대 화재사건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며 대대적인 살해와 박해를 가하던 극악무도한 시기였다. 그래서 교인들이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차분히 예배드릴만한 형편도 되지 못했다. 이런 시대적 형편이 예배에 대한 기록도 충분히 남기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속사도 시대의 예배자료는 거의 전무한 가운데, 그래도 2개의 문헌이 있다. 주후 96년에 기록한 로마의『클레멘트의 서신』과 열두 사도의 가르침으로 주후 100년 기록한 것으로 되어 있는『디다케』(Didache)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자료에 대한 자세한 것은 다음 2세기의 예배에 배속시켜 다루고자 한다.
당시의 기독교의 확장은 또한 이교도 집단의 형성이라는 문제와도 대치해야 했다. 그 결과로 교회는 자신을 보다 더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 조치가 자체적으로 필요했고, 또한 외부적인 압박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신앙적인 문헌들의 수집(복음서와 서신들)과 보다 정돈되고 보다 구체적인 교회조직(딤전3:1-13), 신앙적인 진술들의 형성(딤전3:16; 고전15:3-5), 그리고 훨씬 발전된 예배 의식(意識, liturgical consciousness)등의 제반작업이 뒤따르게 되었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는데 성실하라고 권면했다(딤후4:1-4).
오늘날 점차 많은 학자들이 사도시대와 속사도시대의 문헌에 예배자료들이 나타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사도들의 작품 안에 교회의 찬송과 세례용 교리문답, 고백적인 진술들, 신앙고백, 송영, 그리고 축도 등이 결합되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 예로서 교회의 찬송이 어떤 특정한 교리를 만들기 위한 논증으로써 사용되었다거나, 서신들의 상당부분이 이미 교회에 알려진 예배자료들을 공들여 정리한 것이라는 생각이 그러하다. 심지어는 복음서조차도 예배적인 배경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요한복음 내에서 “당대의 기독교 예배와 역사적인 예수의 생애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밝히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쉐퍼드(Massey H. Shepherd) 같은 이들은 기독교 예배의 구조가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의 계시의 조직원리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거대한 양의 자료들을 검토해 보면, 속사도 시대는 점차 질서 있는 예배의 정립을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로서 목회서신들은 교회예배에 있어서 목회자직의 역할을 강조한다. 동시에 속사도시대의 교회는 고린도교회의 열광주의와 유대교의 예배형식 및 질서에의 관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속 사도시대에는 예배가 보다 더 정돈되기에 이르렀다. 다음 장에서 제 2세기의 예배를 연구해보면, 이러한 사실들이 잘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VI. 마치는 말
이상으로 신약시대의 예배에 대해 둘로 나누어, 즉 (1) 예수님의 예배이해와 (2) 사도시대, 속사도시대의 예배로 나누어 예배의 발전과정을 추적해 보았다. 사도시대의 예배나 그 이후의 예배는 성전예배와 회당예배라는 두 개의 기본적인 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주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전예배나 회당예배의 내용 등이 구약적인 요소를 대폭 수용한 예배의 정신과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람어 권 예배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헬라적 기독교와 이방인 기독교의 예배로 나갈수록 유대주의 의식을 배척하고 전혀 근본적으로 새로운 적용을 해나갈 때, 그 중에서도 특히 세례와 성만찬이라는 주님이 새로 세우신 예배의 틀들이 독창적으로 중심을 잡아갈 때, 그것은 더 이상 유대종교가 아닌 기독교 예배이었다고 하겠다. 사도시대의 예배에 대한 연구는 예배에 관한 자료들이 단편적이고, 예배에 대한 체계적인 진술도 전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예배의 요소와 형식들이 다소 혼란스런 변화과정 속에서 가변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연구가 어렵고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도 연구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확신을 갖고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예수님은 유대교 예배전통이나 희생제의의 종말을 선포하셨다.
2. 기독교 예배의 공통자료는 그리스도 사건에 뿌리박고 있다.
3. 신약성경에는 완전히 단일한 예배의 상(像)이 없다.
신약성경이 체계적인 기독교 예배의 상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에 제약이 뒤따른 것이 사실이지만, 신약시대의 예배에 대한 연구는 이후 제 2세기이후의 자료연구와의 관련 속에서 함께 계속되어질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주이시요, 교회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의 영을 주신 분이시라는 점과 사도들 직후의 계승자들이 사도적인 예배전승을 유지하는데 힘썼다는 점을 확신하면서 다음 기회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