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대한민국에 충성하고 온몸을 바쳐 헌신한 보훈처장 다운 보훈처장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별세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별세,
■ 추도 분향소 운영 : 2024.5.10(금) 12:00 - 5.11(토) 17:00 박정희 광장 대한문
주 최 : 국가비상대책국민위원회(국대위)
주 관 :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
'주은식' 한국전락문제연구소장(육사 36기)의 글(동기생 단톡방)
자기를 핍박했던 정권을 가장 빛나게 만들고 떠나신 박승춘 장군님을 추모하며.
나라와 남을 위해서는 온몸을 바쳐 헌신했지만 월남전 참전 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암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가장 늦게 그것도 부하 직원의 강권에 의해 퇴임 후 2019년에야 유공자로 인정받았던 박승춘 전 보훈처장이 별세하였다. 좌파들과 종북세력들에게는 추상 같았지만 애국자들 현창하고 현양하는 사업에는 모든 것을 아낌 없이 헌신하셨던 보훈처장 다운 보훈처장이었다.
보훈처 창설이래 가장 긴 시간인 6년 3개월간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있어 전심전력 다하였기에 핍박을 받았고 그러한 일 때문에 좌파 정권 집권시 7건의 고소고발을 당해 실형과 연금이 박탈되어 정작 생활고에 시달렸던 전 보훈처장 박승춘장군의 영전에 삼가 애도를표한다. 국가를 위해 봉사했지만 정작 그 보훈에서 소외 되었던 박 장군님의 보훈 사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았던 정권은 아이러니 하게도 문재인정권이었다.
그것은 워싱턴에 건립 되었던 미국에서 “잊어버린 전쟁”으로 알려진 6.25 참전기념비를 세우는데 국회에서 예산을 삭감하자 그 예산 신청서를 예결위원장에게 들고가서 근본도 없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라고 예산서를 찢어서 국회 예결위원장 정모 의원 면전에 던져버렸던 강골과 기개가 있었던 장군다운 장관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당시 트럼프에게 미운털이 박혔지만 이 워싱턴 기념비로 그래도 미국에 감사할 줄 아는 한국인이라는 인상을 주어 그나마 체면을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2차대전 당시 독일 교회가 하나님이 영혼구원을 위해 예수를 보내주셨듯이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 구원을 위해 히틀러를 보내 주었다고 히틀러를 찬양하자 히틀러 우상숭배를 힐난하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어 저항하였고 마침내 체포 되어 수용소를 전전 했고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었던 본 회퍼가 있었다. 당시 본 회퍼의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 이라고 했다. 본회퍼는 많은 독일인들과 사제들이 히틀러를 칭송하고 찬양할 때 비판하고 잘못에 맞서 비판했듯이 우리시대의 좌파물결에 홀연히 맞섰던 선각자가 박승춘 장군 이었다.
영웅의 죽음은 항상 장엄하고 비참하다. 그 이유는 그 영웅의 행적과 업적에 대하여 그 시대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의 영웅의 말년은 비참하고 쓸쓸하게 영면한다. 그러한 영웅에 박승춘 장군도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군생활을 하면서 박장군님과 근무기간은 3개월 스쳐간 기간 밖에 안 된다. 그것은 건군55주년 제병지휘관을 하셨을 때 의전처장을 했을 시기였다. 박 장군님은 행사준비를 하시면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셨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체크하시고 현장 확인을 하셨다.
국군의 날 행사 준비를 하면서 그는 부하들을 항상 칭찬하고 솔선수범하셨다. 어느 날 하루는 애드벌룬을 띄우는 미망인 할머니가 매일 애드벌룬을 띄우는 일이 예산은 적게 책정해 놓고 군에서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 힘이 들며 올렸다 내렸다 높이를 맞추라고 한다며 하소연하자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등 할머니에게 감사하면서 할머니가 힘들지 않도록 묘안을 짜내어 인간적으로 설득하고 합리적으로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1947년 강릉에서 태어나 육사27기로 임관 하셨다. 강릉상고를 졸업 하셨고 강릉상고에 재학 중 전국 럭비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육사에서도 럭비선수생으로 헤드헌팅 (인재선발)되어 화랑대에서도 선수생활을 하여 성격이 호방하고 대인다운 기질이 넘쳐났으며 정의로운 일에 앞장서고 불의에 맞섰던 장교와 장군으로 동기생들이 특히 아끼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보훈처장 재임기간 중 많은 기억에 남을 일을 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대한의병군참모중장으로 불려지도록 힘썼고 그 동상을 세우는 일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좌파정권 시절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반대하여 민주당과 갈등을 빚었다. 7건의 고소 고발로 기소가 되었다. 그는 북부지검에 4건 중앙지검에 4건 등으로 기소되어 실형을 받았고 연금이 박탈되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동기생 두 분이 그의 생활고를 염려하여 십시일반으로 도와 주었다. 그분들은 박 장군의 마지막까지 같이 하셨다 세상이 외면해도 덕불고 필유린(德不孤必有隣) 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에게는 너무 힘든 각고의 시간이었다 국립묘지법에 따르면 실형을 받으면 비록 무공수훈자라도 현충원 안장 심의 대상이 된다. 그는 월남전에 참전하여 국가를 위해 봉사했고 국가유공자를 발굴하여 현양사업을 했다. 그러나 정치편향적인 안보교육을 실시하였다 하여 2020년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사면 복권했지만 연금 혜택은 못받았다. 정작 자신은 국립묘지에 안장되기 위해서는 심사를 받아야 하는 기구한 입장에 처했다.
7건의 고소고발 재판을 받으면서 그는 변호비용으로 가산을 탕진했다. 심지어 심신이 피폐했다. 오색약수터에서 고엽제로 인한 암을 치유하고 건강을 위해 냉온탕을 번갈아 입욕을 하다가 심정지로 세상을 떴나셨다. 국가를 위해 일했지만 좌파정권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던 애국자에게 모욕과 멸시를 안겼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사만 애국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시대와 싸운 진정한 애국자 박승춘 장군님의 서거를 애도하며 영전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우리는 영웅을 홀대한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킨 영웅을 우리가 너무 홀대했다. 드골이 정신박약아였던 그의 딸 안나가 죽었을 때 부인 이본느에게 했던 말이 귀에 맴돈다. “이본느 이제 우리 안나가 정상인과 똑같이 되었다.” 이를 박장군님 영전에 대입하여 말해본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분골쇄신했던 영웅이 이제 다른 사람과 똑같이 되었다 !” 역경에 처했어도 굴하지 않으셨던 박 장군님의 안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