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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손가락의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12~1913, 126×107c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 박물관
이 작품에서 특히 재미있는 것은 샤갈이 자신의 손가락을 일곱 개로 표현한 것이다. 그로테스크하고 전위적인 작품 속에서도 화가 특유의 천진난만한 동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샤갈은 어떤 이유로 자신의 왼손가락을 일곱 개나 그린 걸까?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갖는 궁금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샤갈은 어느 인터뷰에서 다섯 손가락이 아닌 일곱 손가락을 통해 상식이 파괴된 세계를 의식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화가의 이러한 관념적인 언급만으로는 작품에 대한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면서 화가에게 있어서 '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작품 해석에 대한 지나친 감상의 비약일까? 실제로 손이 없으면 화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화가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는 예술적 영감을 캔버스에 옮기는 매우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된다. 이 손가락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예술적 영감이 샘솟는다 하더라도 소용없게 되는 것이다.
샤갈은 자신의 작품에서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을 일곱 개의 손가락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회화의 평면성의 극복은 입체파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이룰 수 없는 욕망 같은 것이었다. 샤갈은 손가락이 일곱 개라면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아이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일곱 손가락의 자화상〉에서 손가락만큼 많이 회자되는 부분은 창밖으로 보이는 에펠탑이다. 창문 옆에는 카툰에서나 볼 수 있는 말풍선 같은 것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말풍선 안에는 샤갈의 고향 러시아 비프테스크의 교회가 있다. 그림 속 샤갈 앞에 놓인 캔버스에도 바로 그 교회가 등장한다. 아직 어린 이방인 예술가가 멀고먼 타향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그림 곳곳에 배어 있다.
〈일곱 손가락의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12~1913, 126×107c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 박물관
이 작품에서 특히 재미있는 것은 샤갈이 자신의 손가락을 일곱 개로 표현한 것이다. 그로테스크하고 전위적인 작품 속에서도 화가 특유의 천진난만한 동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샤갈은 어떤 이유로 자신의 왼손가락을 일곱 개나 그린 걸까?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갖는 궁금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샤갈은 어느 인터뷰에서 다섯 손가락이 아닌 일곱 손가락을 통해 상식이 파괴된 세계를 의식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화가의 이러한 관념적인 언급만으로는 작품에 대한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지 않는다.
〈나와 마을〉
이 그림을 보면서 화가에게 있어서 '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작품 해석에 대한 지나친 감상의 비약일까? 실제로 손이 없으면 화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화가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는 예술적 영감을 캔버스에 옮기는 매우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된다. 이 손가락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예술적 영감이 샘솟는다 하더라도 소용없게 되는 것이다.
샤갈은 자신의 작품에서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을 일곱 개의 손가락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회화의 평면성의 극복은 입체파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이룰 수 없는 욕망 같은 것이었다. 샤갈은 손가락이 일곱 개라면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아이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일곱 손가락의 자화상〉에서 손가락만큼 많이 회자되는 부분은 창밖으로 보이는 에펠탑이다. 창문 옆에는 카툰에서나 볼 수 있는 말풍선 같은 것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말풍선 안에는 샤갈의 고향 러시아 비프테스크의 교회가 있다. 그림 속 샤갈 앞에 놓인 캔버스에도 바로 그 교회가 등장한다. 아직 어린 이방인 예술가가 멀고먼 타향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그림 곳곳에 배어 있다.
〈와인 잔을 든 두 사람〉, 캔버스에 유채, 1917~1918, 235×137cm, 프랑스 파리 국립 현대 미술관
〈와인 잔을 든 두 사람〉은 샤갈이 자신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그린 것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특이한 모습의 두 남녀에게서 샤갈 특유의 치기(稚氣)가 느껴진다. 낮게 드리운 지평선 위에 선 두 사람은 넘치는 행복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치 하늘로 떠오를 것만 같다. 샤갈의 아내 벨라 로젠펠트(Bella Rosenfeld)는 러시아에서 온 가난한 이방인 예술가에게 사랑의 기쁨을 알려준 메신저였다. 작품 속 샤갈의 머리 위에 있는 아기천사는 이들 부부의 딸 이다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 벨라의 뱃속에 이다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유독 돋보이는 것은 샤갈이 벨라의 왼쪽 눈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장면이다. 벨라가 무엇을 보고 있기에 샤갈이 그녀의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걸까? 러시아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사람의 눈이 두 개인 이유는 행복과 불행을 모두 느끼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한다. 한쪽 눈이 행복을 본다면 다른 한쪽 눈은 불행을 본다는 것이다. 혹시 샤갈은 사랑하는 아내 벨라의 눈 가운데 불행을 보는 눈을 가린 것은 아닐까? 그로테스크한 화풍만큼이나 샤갈의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끝없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작품 속의 눈과 교감하는 화가의 눈
〈나와 마을〉, 캔버스에 유채, 1911, 192×151.4cm,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
〈달빛 아래 러시아의 농촌〉, 캔버스에 유채, 1911, 126×104cm, 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샤갈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나와 마을〉(국내에서는 '눈 내리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역주)과 〈서커스〉, 〈달빛 아래 러시아의 농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작품 속에는 형태와 공간에 대한 기상천외한 상상이 마치 어린 아이의 생각처럼 펼쳐진다. 아울러 종교에서 느낄 수 있는 경건함과 시의 서정미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특히 〈나와 마을〉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캔버스에 합쳐 놓은 콜라주 기법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 미술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 기법이 되었다. 영화에서 쓰이는 몽타주 편집 방식이 캔버스에 옮겨진 것이다.
샤갈은 이들 작품에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고향에 대한 기억을 서정적인 화면으로 합성하면서 기억 속의 장면을 묶어 상징성을 더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샤갈의 작품들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나와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눈'이다. 소의 눈과 사람의 눈은 마치 서로를 비추는 것처럼 어떤 교감을 나누는 듯하다. 1911년 파리에서 이 그림을 그리던 바로 그 순간 샤갈은 어떤 눈빛을 하고 있었을까? 문득 화가의 눈빛이 궁금해져온다.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샤갈이 그린 벨라
마르크 샤갈 〈누워 있는 시인〉 1915, 보드에 유채, 77.2×77.5cm
자료출처: 자화싱전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러시아 태생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제작자로, 주요 작품은 <나와 마을>과<미국의 창문들>
생애
러시아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다. 1910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하며 본격적인 화가 생활을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표현주의와 입체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회화 이론보다는 내면의 호소력을 이용한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이미지와 개인적 경험을 결합한 작품을 그렸다. 회화뿐 아니라 무대 장치, 동판화, 스레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표현 수단을 통해 작품활동을 했다. 주요 작품은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1911), 〈미국의 창문들(The American Windows)〉(1977) 등이 있다.
작품 특징
회화 이론보다는 내면의 시적 호소력을 이용해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형식 요소들과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현대 미술에서 처음으로 정신의 실체를 나타냈다. 초현실주의 이전에 나온 〈나와 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그는 〈미국의 창문들〉처럼 연극과 발레 무대장치, 성서를 삽화로 그린 동판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 다양한 표현 수단을 사용한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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