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없는 비판이 문제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일단 대안을 만든다는건 굉장히 더딘 일이다.. 그리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선 일단 많은 비판이 먼저 있어야 한다. 수많은 비판의 과정을 거쳐 일단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방향으로 개선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생기지 않으면 대안은 만들 수가 없다. 따라서 대안 없으면
비판을 하지 말라 그런다면 대안은 앞으로도 나올 수가 없다.
사실 지금 당장 분명하고 검증된 대안이 있다면, 예를
들어서 일제 시대 때 독립 국가 건설이라든가, 해방공간에서 토지개혁,
87년의 직선제 개헌 같이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시도되었기도 하고, 그 당위성이 너무 확실한
분명한 대안이 이미 있는 상황에선.. 그냥 비판만 하고 있으면 안되고 그냥 기존의 것을 완전히 뒤엎고
대체를 하려고 나서야 하는 거다. 즉, 대안이 이미 있다면
구태여 비판만 할 필요도 없다.
진짜 문제는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니라 핀트가 안 맞는 비판, 포인트가 없는 비판, 아무런 부가가치가 없는 비판 등,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데 도움이 안 되는 비판이다. 물론 그 보다
더 심각한건, 대안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착각하거나, 비판과
부정을 착각해서 비판의 대상을 아무런 대안 없이 무조건 부정하고 파괴하려고만 드는 행위이다.
비판이 의미가 있으려면 기존의 비판들과 비교해서 아주 약간이라도 새로운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김연아
지도하는 오서코치가 아주 미세한 부분, 남들도 본인도 다 놓치고 있는 미세한 문제 동작을 찾아내서 지적하고
고치라고 한다면.. 비록 대안은 김연아가
스스로 찾아내야 하지만, 그런 비판 만으로도 오서 코치는 굉장히 큰 공헌을 한 거다.. 근데 만약 "연아! 너는
왜 트리플 악셀 못해! 아사다 마오는 하는데 왜 넌 못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피겨 보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아주아주 진부한 문제를 가지고 비난만 한다든가 "왜
정신력이 그 모양이냐!"같은 뻔한 소리만 하면 정말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비판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무엇이 좋은 비판이고 무엇이 쓸모 없는 비판인가?
라는 것을 판단하는 방법은 카메라등 광학기기의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인 해상력 평가와 비슷하다. 해상력을
평가할 때는, 두 개의 점이 얼마나 가까이 있을 때 그걸 서로 다른 점으로 구분해 낼 수 있는가의
여부로 판가름한다. 저성능 광학장비면 약간만 가까이 붙어도 그냥 하나의 점으로 인식하는데, 고성능 광학장비면 굉장히 가까이 붙어도 두 개는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인식해낸다.
마찬가지로, 현미경처럼 정확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가 기존에는 서로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보던 것들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실마리를 발견해 내는 날카로움이 좋은 비판의 요건이다.
근데, 그냥 반공! 국민통합! 하는 식으로 명확하지 않은 아주 아주 두리뭉실한 개념을
써서 그냥 뭐든지 여기에 끼워맞추는 식으로 비판을 하는 것은 제일 하급의 비판에 속한다.
그리고 역시 가장 최악은 교장선생님 조회시간 훈시처럼 그냥 너무나도 뻔한 좋은 말씀들을 늘어놓는 비판.. 이런
비판들은 그냥 순수한 낭비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남충현/ 페이스북 2013- 2-26
아프로만: 2013-02-26
대안을 만들기 전 필요한 작업은 우선 먼저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발견해내야 하는 겁니다.
차이점이 먼저 포착되야만 대안에 대한 모색이고 뭐고가 논의되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사회는 차이를 용납하지 못해요
이건 진꼴 먹물들이 오히려 더 심합니다. 왜냐면 '당위성'에 빠지기 때문이죠. 무엇 무엇은 의례히 이러 이러 해야만 한다 - 이게 당위성 입니다.
* 남북문제 나오면? 의례히
'통일 그러면서 눈물 주르륵 ~.
여기다가 뭐라고 말 붙였다간 " 그래서
통일하지 말잔 말이냐?" 제까닥~ 반통일분자로 몰립니다
* 제주 강정 해군기지 나오면 무조건 '환경!' ~ 여기다 뭐 더 얘기 못 붙입니다.
본문에 "너무나도 뻔한 좋은
말씀" - 이게 '당위성' 노이로제 때문이에요.
뻔~한 겁니다. 안 봐도 비디오 같은 얘기죠. 천편일률적 이란 말입니다. 차이가 없는 겁니다.
남들 다 한마디 하는데 입다물면 시류에서 소외될 까봐 안 할 수는 없고 그래서 교장선생님 조회
훈시같은 말씀으로 숟가락 하나 더 얹어놓는 '편승' 을 하는 겁니다.
교장선생님 조회훈시 = 누구에게나 무차별로
지당하신 말씀만 하죠 = 당위성 의 표본입니다
그래서 - 하나마나한 들으나마나 한 얘기 - 가 되는 겁니다.
■ 편집 노하우업 - http://cafe.daum.net/knowhowup/Dnqf/735
###
▣ 주제
관련글:
■ 대안없는
비판아닌 하나마나한 비판이 문제다 [남충현]
- http://cafe.daum.net/knowhowup/Dnqf/735
■ ┗ 노무현 정신으로 관장사하는 나는 친노다 [남충현]
- http://cafe.daum.net/knowhowup/Dnqf/736
첫댓글 이곳에 없는 분 거명해서 송구하기는 한데, 필명 두루객 - 이 분글이 대부분 '하나마나한 글' 로 저는 봅니다.
2002년 노무현 홈피 노하우' 때부터 대문 단골~! 필자 였어요. 참 꾸준한 분이죠.
여러 사이트에서 단골로 대문에 걸리는 글을 쓰시는데,
뭐~ 어디 딱히 ~ 트집잡힐 구석 없는 [지극히 당연한 말씀] 만 글로 쓰십니다.
그게 잘못됬다는 지적이 결코 아니라,
읽어보나 마나~ 뭔 말인지 안봐도 훤~ 한 글이라는 겁니다
"대안을 만들기 전 필요한 작업은 우선 먼저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발견해내야 하는 겁니다. 차이점이 먼저 포착되야만 대안에 대한 모색이고 뭐고가 논의되는 것이죠."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의 기준과 흐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살피면서 대화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 진보의 과정이라는 얘기는 제가 작년에 무브온 댓글 모음 글을 통해서 짚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제가 주목했던 것이 바로 생각이 달라지고 갈라지는 <포인트>에 집중하자는 것이었죠.
역시 흐름과 맥락을 잘 살피다 보면 결국 다 같은 지점을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름은 정상이지만 다름을 인정하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 자체가 항상, 진보인 셈이죠
1. [댓글 비망록] '신뢰'가 바탕이 되는 '공론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고미생각 & 막써 & 답답이 / moveon21 댓글 / 2012년 5월 8일) http://cafe.daum.net/knowhowup/Dnqf/390
2. [댓글모음]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진보의 과정' (moveon21 댓글 모음 / 2012년 5월 25일~27일) http://cafe.daum.net/knowhowup/Dnqf/399
독립칼럼쓰는 분중에 '아이엠 피터' 이분도 좀 그러한데,,
매우 꼼꼼히 조사도 하고
남들이 찾기 어려운 자료도 제시하고
대단히 공들인 칼럼인 것은 분명합니다,, 만,
전개와 결말이 뻔~ 한,, 그야말로 결론과 주장하는 예측 100% 칼럼을 씁니다
안봐도 뭔 주장인지 100% 예측 가능하다는 건
- 당위성 100% 에 입각해서 글쓰기 때문 입니다.
이 역시나 그게 잘못됬다는 지적이 결코 아니라, 보나마나한 글 이라는 겁니다
지나치게 독자를 의식해서 그래요..
노무현은 항상 말했죠. 정치가는 언제나 예측 가능한 행보를 취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이 신뢰의 발판이 되어 주고 더불어 정치가의 책임성을 담보하는 역할로도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주장이나 태도가 예측 가능하다라는 것 자체는 그닥 탓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제 의견도 <흐름과 맥락>을 감지하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시류에 편승한 하나마나한 일이 될 소지가 높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마나한 소리란 무엇일까요? 누구나 이미 한번쯤은 지적한 얘기, 문제점을 그냥 동어반복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판단의 기준, 의견 차이의 포인트를 제대로 밝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비겁해지지 말자는 것이죠. 대세 앞에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고 대세 뒤에 숨어서 덩달이 짓, 야바위 짓하지 말라는 겁니다.
덩달이 짓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시류에 편승해서 하나마나한 소리 동어반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야바위짓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정치 자영업자들입니다. 99퍼센트의 대중들은 덩달이와 야바위 짓에 휘둘리는 사람들입니다.
[아프로만 비망록 2012년 7월 21일]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 맞습니다.
그런데 제 지적이 뭐냐면. 그래서 당신은 다수에 속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부동층입니까? 이 질문엔 막상 아무도 대답 못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막상 질문하면 대답하는 색희들이 한 색히도 없어요. 왜냐? 어떻게 에둘러도 결국 '편승' 이거든요.
뭐시냐? 다수를 행사하려하기보다는 다수에 숨으려고 한다 = 이것이 '대세론' 입니다.
99%가 1%에 영원히 '종속' 되는 핵심 이유가 이 때문 입니다. 덩달이들이 대세론에 숨어서 다수결을 주장하니 '종속'되는거죠.
기준을 분명히 하고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자신이 쓴 칼럼의 <파급 효과와 방향>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감당해 내는 것.. 이것이 진짜 칼럼을 쓰고 공론을 말하는 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성>의 최소 범위입니다. 이걸 못하는 것이 이른바 연예인 류는 물론이고 패션 좌파, 강남 좌파라는 사람들입니다. 안철수도 이 부류에 속하죠.
남들 듣기 좋은 소리에만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과 관점을 분명히 하여, 차이를 짚고 넘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마나한 소리, 동어반복에서 벗어나는 핵심적인 요건이라는 점이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이 자신이 평소에 해왔던 말의 흐름과 맥락을 관통해야 하는 것이구요.
변희재같은 꼴짓으로 대중을 의식하는 노이즈성 '초자극' 도 문제지만
독자를 의식하여 비난의 소지가 없는 당위성 편승의 '무자극' 도 문제 입니다.
참~,,, 판단하기가 쉽지않죠...
결론은 그래서 상호작용의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의 안목으로 보는 파급 과 파장의 '방향성' 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프로만 비망록 2012년 7월 21일]
- 다수를 행사하려하기보다는 다수에 숨으려고 한다 = 이것이 '대세론' 입니다.
상기대목 문장을 검색해 보니 이 칼럼 속에 있군요
[보따리정치] 와 [떠보기정치] 의 기회주의
http://cafe.daum.net/knowhowup/Dnqf/452
[미투데이 비망록 2013년 4월 5일]
누구나 수긍하는 '지당하신 말씀'은 결국 하나마나한 얘기일 뿐이다. 모난 의견은 최소한 '자극'이라도 된다지만 지당하신 말씀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상대주의라는 것을 두고 좋은 게 좋은 것, 니 말도 옳고 내 말도 옳다는 식으로 격조있게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착각이다. 기준과 관점을 찾지 못하고 잘못을 반복하면서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신입사원과 대리와 과장과 부장과 임원과 사장의 판단을 똑같은 급으로 놓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도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판단의 자극을 받기 위해 발언권을 동등하게 줄 수 있을 지언정 결정권은 달라야 한다.
왜 그럴까? 판단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 책임을 전가한다는데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잠시 넘어가자. 어쨌거나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슬쩍 넘어간다는 건 책임지지 않겠다는 소리다.
정치란 '책임'과 '신뢰'를 구현하는 영역이라는 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람들일수록 안철수에 열광한다. 정치는 강제의 영역이기 때문에 '책임'이 중요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있으니 안철수에게 다 미루고 손을 털려는 심보이기 때문이다.
이게 뭔가? 편승이고 전가다.. 안철수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바로 저 두가지이다.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의 지식인, 지성인, 오피니언 리더, 파워트위터러라는 사람들의 태반이 저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공론의 영역에서 발언을 하는데 자신은 책임지지 않고 남에게 다 미루겠다? 이게 다 편승이고 전가라고 내가 몇번을 이야기해야 알아들을까? 에효...
기준과 관점을 찾기 위해 다소 야박하게 부딪히는 것을 '모난 태도'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대한민국에서 토론 문화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실은 이해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기 싫은 것이다. - 아프로만 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