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생각 14:27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보수 수구 우파라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관점은 철저히 '개인중심주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시각 자체가 아예 <개인 우선>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죠.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문제에 어느 한 사람이 예민하게 굴어서 사단이 난 것이라고 여기는 한 그것은 그 사람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수구 보수 우파들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파는 개인적 관점에 집중할까요? 사실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모두 지운 다음에 나몰라라 하면 결국 모두가 해피해지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내 일이 아니면 신경쓸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고 외면하면 그만이거든요. 종교와 신앙의 관점에서 '속죄양' '대속' 개념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런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속죄양의 대속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인이 지은 잘못을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어린양에게 '전가'시켜서 그를 희생시키는 방법으로 절대자에게 <속죄 표시>를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백번 양보해서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절대로 공평정대한 방법은 아닙니다. 비겁한 수단이죠.]
그러면서도 약간만 장난을 치면 공동체의 모든 부와 권력을 개인 (혹은 1퍼센트의 특권층)에게 계속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너도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 그룹에 들어올 수 있다는 식으로 환상을 심어주죠. 어느쪽으로 봐도 개인 위주의 관점은 굉장히 쉽고 편리한 해법을 제공해줍니다.
상황이 이런 지경인데 군 내부의 자살 문제를 개인과 공동체 중의 양자택일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어떻게 될까요? 절대로 답 안나옵니다. 계속 똑같은 논란만 되풀이되거든요. 아프로만님이나 제가 누누히 지적했지만 개인과 집단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싸우고 있으면 답이 나오겠습니까?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쪽이 다른 쪽의 변화를 무조건 강요하고 억제하기 보다는 먼저 양보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언제나 더 아쉬운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죠. 그래서 결국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봉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 논쟁은 결국 개인 우선주의 관점이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일단 여론의 흐름부터가 우파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정의란 무엇인가? 결국 집단의 의지가 진보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실현이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고 아프로만님께서 진단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집단의 의지가 진보하고 발전하려면? 개인의 각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죠. 개인과 집단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볼지언정 이런 식으로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일원론이 될 수밖에 없죠.
이런 와중에 공동체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좌파는? 그냥 역할극에 빠져서 핑퐁게임을 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 정도만 해도 일단 본인들의 노선 정체성은 충분히 확보되기 때문이죠. 변화요? 그게 왜 필요합니까? 이것이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의 좌파 진보세력이 봉착한 가장 핵심적인 취약점입니다. 말로만 변화를 외칠 뿐, 실제로 변화를 이끌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게 좌파들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대중들은 이를 직관적으로 꿰뚫고 있죠. 그래서 좌파는 대중을 결코 믿지 않습니다. 파시즘, 전체주의, 광기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매커니즘에 의해 결국 김동렬님의 진단대로 개인이든 집단이든 손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듭니다. 그 손쉬운 방법이 무엇이냐? 항상 모든 것의 원천을 <개인>으로 환원하는 것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려 든다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우파의 방식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문제는 지금처럼 각자도생이 생존의 제1원칙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이 흐름은 어지간해서는 안 바뀐다는 데 있습니다. 이게 정말 무서운 일이죠.
이것이 바로 (김동렬님이 말했던 대로) 사람을 죽이는 방향으로 보수가 결정하게 되는 원리적, 구조적 흐름입니다. 카스트 제도가 인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척 당연한 일이 되는 겁니다.
이런 구조적 흐름이 관성의 힘으로 계속 유지된다면?! 미래는 보나마나 입니다. 안철수가 인용했던 깁슨의 말대로 "종말은 이미 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직 인식하고 있지 못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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