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가 이집트 광산에서 메말라버린 후에 최소 1500년이 흐른 후에 위에 희귀한 조산운동의 충돌이 일어났듯이 구세계와 신세계가 충돌하는 사건이 인류 역사상 역시 일어났다. 물론 이때는 에메랄드가 탄생하듯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착취와 수탈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때 다시 에메랄드라는 보석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이 에메랄드는 유럽이나 중근동뿐만 아니라 별도의 문명권인 남아메리카의 잉카와 아즈텍 문명권에서도 역시 신성한 보석으로 취급되었다.
이집트 근방에서 소진이 된 뒤에 대항해시대를 거쳐 이후는 신대륙에서 발견된 남미의 《 럼비아 》란 지방에서 현재로서는 주로 생산이 된다. 그 중에 콜롬비아의 코르딜레라 산에 있는 무죠(Muzo) 광산과 치보르(Chivor) 광산은 세계적인 질이 좋은 에메랄드 산지이며 브라질, 잠비아, 러시아 등지에서는 아주 소량만 산출되며 품질 또한 남미 산을 따라갈 수가 없다.
여하튼 스페인의 레콩키스타들은 신대륙에서 금과 은, 그리고 향신료 이외도 그곳에서 본 에메랄드도 당연히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질이 좋은 에메랄드 하나만 소유하여도 아마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될 것이다. 그러나 콜롬비아 그곳의 원주민에게도 에메랄드는 마찬가지로 신성시되었기에 비밀을 백인들에게 전해주지 아니하여 처음에는 그 광산의 위치를 잘 알 수가 없었다.
이 에메랄드의 출처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전설에 의하면 《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 》란 인물인데 그는 에메랄드가 두 대륙의 충돌로 생성이 되었듯, 신대륙과 구대륙의 인간의 충돌로 태어난 혼혈이었다.
가르실라소는 스페인의 군인을 이끌고 에메랄드가 존재하는 만타 계곡의 원주민을 학살하고 고문한 끝에 신전에서 많이 모여 있는 에메랄드를 약탈을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광산의 존재는 원주민들이 굳게 입을 다물었기에 알아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에 몇 십 년이 흐른 후에 광산의 위치를 알아낸 인물은 학살과 고문을 자행한 군인들이 아니라 선교를 하러 온 이과도 수사란 자에 의해 밝혀졌는데 그는 한 원주민 소년을 하느님의 길로 인도하였고 그 소년이 비로소 에메랄드 광산으로 인도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스페인 자체의 기록이기 때문에 전부는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이 신대륙에서 쏟아지는 보물들로 인하여 본 국가인 구대륙의 스페인이 흥청망청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witpo
잉카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
잉카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Inca Garcilaso de la Vega, 1539년 ~ 1616년)는 스페인 제국 당시의 페루 부왕령 출신의 연대기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