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용폄호(針龍砭虎) 고사
어느날 청룡(靑龍)에게 치통(齒痛)이 생겼었고 이는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았다. 청룡은 약왕(藥王) 손사막(孫思邈)을 찾아가 치료를 청하였다. 손사막은 청룡에게 병정을 물었다. 그리고 나서 손사막(孫思邈)은 청룡에게 침을 놓아 치료해 주었다. 청룡은 손사막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손사막의 집이 있는 약왕산상(藥王山上)의 태현동 까지 40 리 되는 굴을 뚫어 주었다. 이것이 바로 침용(針龍)고사 이다. 펌호(砭虎)고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손사막(孫思邈)이 한약을 작은 당나귀 등에 잔뜩 싣고 왔다. 그런데 늙은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손사막의 작은 당나귀를 잡아먹었다. 당나귀의 뼈가 늙은 호랑이의 목에 걸려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호랑이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늙은 호랑이는 부득이 손사막에게 찾아가서 치료해 달라고 부착했다. 손사막은 약동(藥童)에게 의령(醫鈴)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의령은 가운데가 텅비어 있는 금속구(金屬球)를 일컫는다. 손사막은 의령을 늙은 화랑이의 입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손사막은 자기 손을 늙은 호랑이의 목구멍 속에 집어 넣어 목구멍에 걸려있는 당나귀의 뼈를 끄집어 냈다. 늙은 호랑이는 손사막에 대하여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늙은 호랑이가 손사막의 작은 당나귀를 잡아 먹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손사막으로 부터 호랑이게 아무런 보복이 없었다.
늙은 호랑이는 손사막에게 "오늘 부터 당신의 작은 당나귀 대신 내가 약을 실어나르겠습니다" 고 말했다. 늙은 호랑이는 당나귀 대신 일함으로써 손사막에게 조그마한 성의를 표시하고 싶었다. 오늘 날 태현동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석방(石坊:아치형으로 만든 기념비)의 서쪽에 "취호평(聚虎坪)" 이라고 부르는 들판이 있는데 이 들판은 "호랑이가 모여드는 들판" 이란 곳으로써 이상과 같은 전설이 발생했던 곳이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부터 손사막은 호랑이의 등을 타고 다니므로 매우 편리했다. 그러나 환자의 집안 사람들이 손사막이 타고 다니는 늙은 호랑이를 쳐다보고 너무나 놀랐다. 그래서 아무도 손사막 앞에 감히 다가설 수 없었다. 손사막은 환자의 집안 사람들에게 한약을 다려먹고 난 후 한약 찌꺼기를 대문 밖 길옆에 버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면 늙은 호랑이는 한약 찌꺼기를 발견한 후 더 이상 나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민간에서 한약을 다려먹고 난 후 꼭 한약 찌꺼기를 문전(問前) 노상(路上)에 버리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여기서 유래한것이다.
중국 3대 명의들중 편작은 다른 의원인 이혜(李醯)에게 질투당해 죽임을 당하였고 화타(華陀)는 조조(曹操)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중국 3대 명의중 손사막(孫思邈)만이 화를 피한셈이다. 그 이유는 그는 권력과 명예를 탐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환자를 사랑하고 돌보는 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병약한 몸으로 태어난 손사막은 아픔을 알기에 타인을 이해하며 치료할 수 있었고 7~8c에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으나 살리는 일을 했던 자는 손사막(孫思邈) 한명뿐이 아니었을까?
醫生應視病者如父兄
他們的痛苦就是自己的痛苦
의원은 환자를 자기 부모나 형제를 대하듯 해야 되며
환자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고통과 같이 생각해야 된다.
-약왕 손사막(藥王 孫思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