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가면
손 원
나이가 들어 가면 매사에 신중해 지는 것 같다. 실수를 하게 되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원인을 알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책임성과도 일맥상통한다. 나이 든 사람이 앞장서면 젊은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고 따르기에 혹시 실수라도 하게되면 파장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에너지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 에너지가 딸리고 소진시 재충전도 어렵기에 목적을 향해 에너지를 집중하고 낭비하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선호도도 보수적으로 변한다. 생일 축하파티에도 케익보다 떡케익을 선호한다. 가성비와 실속을 챙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쌀밥을 먹기에 밀보다 쌀이 우선이다. 떡케익에는 쌀이들어가기에 속을 채우기도 더 용이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폭신한 침대보다 바닥이 뜨끈한 온돌을 좋아 한다. 우리의 전통 난방방식이 온돌이고 온돌문화가 정착되었지만 최근 아파트가 대세를 이룸에 따라 알게 모르게 침대를 사용하고 있지만 온돌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에어컨이 싫어지고 시원한 그늘을 좋아하게 된다. 방안에 에어컨을 틀면 오래지 않아 꺼달라고 한다. 여름에는 손자와 한 방에 있는 것이 서로가 고역이다. 나이가들면 찬바람이 싫어진다. 몸이 으시시하여 한기를 느끼고 뻐근해 지기 때문이다. 이를 오해한 젊은이들은 단지 낭비하지 않으려는 어르신의 속성으로만 여기지만 그보다 배려의 마음을 갖도록 해 보자. 주위에 무성한 그늘이 있으면 좋겠지만 여의치 못하다면 트인 공간에 그늘막을 치고 평상하나를 들여 놓으면 어르신들은 좋아한다.
나이가들면 한여름에도 냉커피 보다 따뜻한 커피를 좋아한다. 본래 우리 몸은 체온비슷한 온도의 음료수 섭취가 바람직 하다고 한다. 몸이 노쇠해지면 태생적 상태의 환경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냉면보다 따뜻한 미역국을 좋아한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미지근한 물에 목욕을 하고 다소 더운 곳을 선호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자연을 좋아 한다. 은퇴 후 시골로 이사해서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누구나의 로망일 것이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송순은 면앙정가에서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놓고 보리라."고 노래했다. 자연을 벗하며 살고싶고 자연에 묻히는 것이 순리이고 삶의 지혜인 것이다.
나이가 들면 가시 있는 장미꽃 보다 호박꽃이 더 좋다고 했다. 콘크리트 담장을 장식하는 장미꽃도 좋지만 때로는 시골의 향수를 풍기는 호박꽃이 마음에 와 닿을 때도 있다. 호박꽃은 시골의 정취를 더하는데 한 몫했다. 키보다 높은 돌담장에도 호박넝쿨이 덮히고, 초가지붕위까지 온통 호박넝쿨로 덮혀 탐스러운 호박꽃을 피웠다. 거기다 덩실한 호박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은 전형적인 옛시골집 풍경이다. 여린 호박닢을 삶아 쌈을 싸먹고 애호박은 훌륭한 반찬재료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꽃피우고 먹거리까지 제공하는 호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치세우고 싶다. 여인도 겉모습만 예쁘기 보다 마음까지 실속있고 착하다면 진정한 미인인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장미꽃 같은 여자, 호박꽃 같은 여자로 구분 해 본다면 나를 사랑하고 아껴준 여자는 호박꽃 같은 여자로 여기고 싶다. 나를 감싸주고 사랑해 주는 최고의 여인은 나의 어머니와 아내다. 어머니와 아내는 호박꽃처럼 때로는 가장 사랑스런 얼굴로 심연같은 마음으로 나를 보듬었다. 장미처럼 겉모습만 화려한 것이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주기 까지한 아름다운 호박꽃이 아닐까?
나이가 들면 디지털 보다 아날로그가 좋다. 전자통장 보다는 종이통장이 좋고, 전자화폐 보다도 지갑을 채술 수 있는 현금이 좋다. 전자상품권 보다 종이상품권이 더 좋다. 요즘 신문 볼 일이 잘 없다. 스마트 폰을 켜면 조회수가 많은 순으로 이슈꺼리가 뜨기에 수 십 면의 신문을 뒤척일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화면 두 세 번만 넘도면 톱뉴스를 다 볼 수가 있고 세상일을 알 수가 있다. 모두 세대에서 스마트폰에 익숙해 지는 듯 하다. 앞으로 지면시대는 시들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디지털 시대로 나가고 있다. 시대적흐름이다. 물론 나이들어 선호하는 물건이나 방식이 있겠지만 가급적 시대의 흐름에 익숙해지도록 함이 현명하다고 하겠다.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눈이 어두워 지고, 귀도 잘 안 들리게 됨은 당연하다. 눈과 귀를 보완해서라도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데 최선을 다해야 더욱 편리하고 멋진 노년을 보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짙은 향기보다는 은은한 향기가, 폭포수보다는 그윽함이,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살가움보다는 무던함이, 질러가는 것보다 돌아가는지혜가 필요하지만 때로는 현실에 맞는 발빠른 변신도 필요하다.(2022.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