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윤회]는 뻥인가?..
지금 어느토론방에에서 [무아윤회]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수 명에 의해 제시되고 있는데..
아직 [무아윤회]를 옹호하는 시원한 논증이 나타나지 않아서 조금은 서운합니다.
정말 [무아윤회]는 뻥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윤회란..
기억을 포함한 영혼이 새로운 몸을 받는 것으로 보는데..
불교의 무아란 몸을 받을 수 있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니.. 모순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럼에도 경에는 "이 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몸을 받지 않는다" 라고 하니..
뻥이란 말이 나올법 하지 않습니까?
이곳 회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1. 먼저 [무아윤회]설을 부정하는 글들을 보면..
엄연히 있다고여겨지는 나(我)를 별 논증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듯한 불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의 뻔뻔한 짓이 섞여..
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자세를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불자들의 잘못이있으니.. 그들만 탓할 수 없음이 거시기 합니다.
각설하고..
불교는 항상 [지금-여기]에서 출발하는 가르침입니다.
석존께서 활동하던 당시 인도에서는.. 불자든 바라문이든.. 윤회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 일반 상식이던 시대입니다.
그랬기에 불교는 윤회설 위에 출발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닙니까?^^
그리고 세존께서 깨친 바는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이구요.
그러니 불교란?..
윤회에서 무아로 향하는 종교가 아닙니까?
그것을 부정하는 자는 없을거라고 봅니다.
해서 불교는 [무아윤회]설 이라 합니다.
2. 그런데 불자 가운데에는 해자, 학자와 (수)행자가 있어..
해자라면 [무아윤회] 내용을 이해해야 하고..
행자는 [무아윤회]를 깨쳐야 하니.. 그 전에 내용을 역시 이해해야만 하겠지요.
<잡아함 39경>을 보면..
하나의 씨앗 속에는 뿌리가 될 능력(=종자), 줄기가 될 종자, 잎이, 꽃이, 열매가 될 종자가 있어..
조건이 맞으면 각각 뿌리, 줄기, 잎, 꽃이 되고 열매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이때..
씨앗을 보십시오.
그 씨앗 속에 뿌리나 줄기나 꽃이나 열매가 있습니까?..
가능성은 있지만.. 씨앗 속에는 없지요.
그리고
꽃이 피었을 때..
그 꽃에 처음 씨앗이 있습니까?
없지요.
없으니.. 무아입니다.
그렇지만 씨앗이 있었기에.. 꽃이 피었으니..
윤회라 할 수 있습니다.
해서 [무아윤회]가 이루어집니다. ()^^
첫댓글 불교는 윤회에서 무아로 향하는 종교라고 하시니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만일 석가께서 활동하던 당시 사람들이 삶을 일회적인 것으로 믿었다면.. 불교의 출발은 무엇일까요?^^................ 일회적인 삶, 그리고 그것에서 무아를 깨치려는 종교가 되었으리라 봅니다!
신을 믿는 종교는 신에서 출발해 신으로 끝이 나지만.. 불교는 [지금-여기] 나(=유아)에서 출발해 결국 나(=무아)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상견으로서의 윤회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주체가 변하지 않는다 하면 상견이며, 주체가 단멸한다고 하면 단견입니다. 그러니 윤회는 상견과 결합하겠지요.^^ 아트만 같은 존재가 있어 윤회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유아윤회]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에 반해[무아윤회]란.. 무이이면서 윤회한다는 것입니다. 해서 문제가 재기 되는 거지요. ^^ 만일 우유가 버터가 되었을 때.. 우유와 버터를 전혀 다른 실재로 본다면.. 그것은 단멸견이`됩니다.
기준을 현재 여기를보면 윤회를 쉽게 알수 있지요 왜냐면 업에 의해 끔임없이 미래의 현실이 나타나니 윤회 한다고 볼수있고 또한 현재의 나를 자세히 보니 나 라고 할것이 없지요 그러니 무아 있지요 즉 무아 이면서 윤회를 하는것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무아열반!, 유아윤회! 이렇게 되는건가요?
^^().. 좋은데.. 그럴 경우 문제는 무아와 유아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봅니다. ^^()...
무아열반 이면서 무아윤회합니다 그러면 소위 지금 말하는 나는 누구냐? 고 물을수 있지요? 그것은 업으로 형성된 아 입니다 그것은 참 나가 아닌 거짓 나 입니다 그 거짓 나를 유아 라 하지 않습니다 그 거짓 나를 뭐라고 부르냐면 업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무아가 윤회 하는것이지 유아가 윤회 하지 않습니다 ^^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그럼... 무엇을 [(유)아]라고 합니까?^^...
[윤회에서 열반으로 향하는 종교... ] 에서... 윤회란 (유)아, 열반이란 무아와 짝지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뜻입니다. ^^ 그것을 유아윤회, 무아열반이라 한 게 아닌가요?
흠 제가 볼때 유아 윤회는 없습니다 굳이 현재 업으로 형성된 나를 유아로 본다면 마치 유아가 윤회하는것으로 보이겠지만 말입니다 즉 거짓 나를 유아로 봐서 윤회 한다는것은 불교의 교리라 볼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신발님께.. 그럼.. 하사도나 중사도는 불교가 아니라고 하실 겁니까?^^ <잡아함경>만 보다라도 그 안에는 태내설을 예로 든 곳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ㅎㅎㅎ 전에 이야기 했지만 업은 불교가 인정합니다 따라서 업의로 형성된 나 (지금 보이는모습) 는 인정 하지요 이것을 "유아"로 한다면 말이 가능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칫 이 유아가 진짜 있는것으로 오해 할수 있습니다 "무아 와 유아" 에서 말입니다 하사도,중사도 ,태내설 등등...은 유아를 인정했다기 보다는 업으로 형성된 모습을 이야기 했다고 보는것이 타당 합니다 즉 유아윤회는 불교를 잘못 이해 할수있습니다 무아윤회를 이해 했을때 제대로 불교를 이해 했다고 봅니다 ^ ^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본래 무아를 유아로 앎으로 해서 유아로서 윤회하지만 사실은 무아이며, 그 무아를 무아로 알고 유아윤회가 멈추면 무아열반이 되는 것,, 저도 참견했어요.
유아 열반은 이몸은 죽어도 죽지 않는 그놈인 마음이 있어 마음을 낸다고 한다면 유아(유여) 열반이아닐까요?
무아 열반은 대상은 동일 성이 없는 연기된 현상이며 마음도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하여 일어난 것이 마음이기 때문에 무아(무여)열반이라고 생각 합니다
법과 존재의 실상을 예기 하는 것으로 이해 합니다
씨는 씨 그것이 전체 이지 씨가 싹이 된다거나 꽃이 된다고 하면 존재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더고 생각 합니다.
존재라는 말은.. 실체가 있다는 뜻과, 실체는 없으나 현상적으로 있다는 두 가지 뜻으로 시중에서 사용되는 데.. 주로 실체가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본불교] 입장에서는 후자의 뜻으로도 종종 사용하고 있습니다. ^^..
씨는 씨가될 조건이 되면 씨가 되는 것이고 싹은 싹이 될 조건이 되면 싹이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씨나 싹은 각각의 조건에 의해 나타나지만.. 씨는 인이요, 싹은 과임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게 아닌지요?^^..
초심님의 씨는 인이요, 싹이 과라는 것은 사물의 인과관계이고 별님의 인과는 마음의 인과를 비유한것으로 이해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 합니다.부정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씨가 인이고 싹이 과라고 하면 연기법의 동일 성이 없다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구요.씨가 싹만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싹은 싹이될조건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싹이 전체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있어 나타나 현상화 되는 것이 아니라 현상화되어 나타나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닐런 지요?
저는 별하나나하나 님의 의견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대로 인정합니다. 단 이럴 경우 [콩 씨]를 심으면 [콩 싹]이 나오지 [장미 싹]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물의 인과라 하셨는데...) 그것 역시 연기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수긍이 가야할 게 아닌가?.. 해서 질문을 드려 본 것입니다. ^^()..
예 초심님의 뜻을 저도 그렇게 이해 합니다. 그런데 제 이해가 잘못되었는 지는 몰라도 그렇게 되면 인과인 씨가 싹이 되었다고 한다면 연기의 차연성 하고는 틀리다고 생각 하는 대요? 제이해가 잘못되었나요?
연기설명시에 부득이한 인과를 사물의 인과로 설명하는 것 바로 불교 어려움의 한계같아 보입니다. 별님의 지적은 중요한 문제로 생각됩니다.
신발님의 말씀 중에서 무아여야지 윤회가 성립이 된다고 하셨는데요, 그것은 윤회라고 하기 보다는 연기라고 이름 붙혀야 하지 않을까요? 윤회라는 용어는 되풀이 되어서 삶이 나타나는 본인이 생각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닌가 해서요. 물론 그 본인 그 자체는 실지로 보면 무아이겠으나, 자기가 개별적 자아로 계탁하고 있으므로 유아라고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렇게 말이죠. 그러나 스스로 무아임을 깨치면 죽고 사는 것이 죽고 사는 일이 아니니, 그 때는 윤회라고 말할 수 잇는 삶의 되풀이로 여겨지는 것이 생기지 않는다,,, 에구 어렵다.
어느 관점에서 표현하느냐가 문제 같습니다. 중생의 입장이냐, 중생이 느끼는 것을 관찰자가 보는 입장이냐, 그 모든 것의 실상을 말하는 관찰자의 입장이냐.. 예??
^^()..
파초님 글을 읽고 제 글을 다시 보았습니다 좀 잘못 이해한것 같아 씁니다 님은 제가 " 무아여야지 윤회가 성립이 된다고 하셨는데요 " 했는데 제 글은 그런글이 없습니다 제 글의 핵심은 "무아이면서 윤회한다는것입니다 " 유아윤회에 대한 제 글은 위에 잘 쓰여 있으리라 봅니다 "무아이면서 윤회" 와 " 무아여야지 윤회가 성립"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신발님 글에 무아이여야 윤회한다는 글은 없지만 유아윤회는 없고 무아윤회만 있다고 하신 것은 그 뜻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렇습니다 유아이면서 윤회가 아니라 무아이면서 윤회 합니다 ^ ^ 윤회는 유,무아 등등을 비롯한 업에 의해 돌고 있는것을 말합니다 답변 감사드리며...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ㅎㅎㅎ.. (그게 그거인데..) 말을 정리해 보면.. 윤회는 착각이든 뭐든 윤회 주체가 있다고 해야만 가능합니다. 해서 이 몸이 죽으면 다른 몸을 받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윤회] 라고 하는 거지요.^^.. 만일 주체가 없다면(=무아) 라면?.. 윤회는 없습니다. 해서 무아를 깨치면 더 이상 태어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무아를 가르치는 불교에서는 윤회를 부정한다는 것인가?..... 아니! 지요. 꿈에서 깨기 전까지.. [무아]를 체득하기 전까지.. 윤회는 있다고 해야 합니다. 고로 유아라고 할때 윤회가 있고, 무아라고 알면 열반이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앞의 글을 보면 저는 유아를 인정 안합니다 앞에 제 글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업으로 형성된 아는 인정핮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지만 유아가 아닙니다 (실제가 아니기 때문임) 따라서 무아이면서 윤회이지 유아로서 윤회는인정 못하지요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일단 자기 입장에서 정리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정리가 끝나면.. 이제는 상대 입장에서 말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게 그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