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 북한의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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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09.10. 16:50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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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북한의 애니메이션
요약 북한 애니메이션은 국가적 차원에서 제작, 관리되어 왔으며 대개 아동용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일반 영화에 비해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옅고, 교양 학습과 교훈 전달을 위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북한의 문예 창작 활동은 예술가의 의지와 취향보다도 북한 정권의 정책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대중적 파급력에 주목해 일찍이 관심을 가지고 관리했던 분야이다. 북한에서 애니메이션은 대개 아동을 대상으로 하므로 교훈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며 소재, 표현 방식이 제한적이다. 한편, 1초당 24프레임을 쓰는 풀 애니메이션 기법을 쓰기 때문에 영상의 움직임이 섬세하고 부드럽다. 북한에서 애니메이션은 ‘아동 영화’, ‘그림영화’, ‘련속그림’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 북한 애니메이션의 출발
김일성은 전쟁 직후부터 아동에 대한 교양과 사상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아동 영화 제작을 독려했다. 1956년,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조선국립영화촬영소 내에 만화영화연구원이 설립되었고, 1960년 북한 최초의 애니메이션인 <쇠도끼와 금도끼>, <신기한 복숭아>가 제작되었다. 1962년에는 식량 증산에 대한 정권 홍보용 애니메이션 <곡물 500만 톤>이 선보이기도 했다. 만화영화연구원은 1960년, 만화제작단으로 확대 개편된 데 이어 1965년, 조선아동영화촬영소로 독립되어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간다.
■ ‘아동 영화’로서의 애니메이션 확립
1970년 조선로동당 5차 대회의 강령에 따라 북한의 영화예술은 노동자들을 주체사상으로 교화하는 ‘력사적 과업’을 수행하도록 요구받았다. 김정일은 1973년 <영화예술론>을 발표해 권력 세습의 정당성을 각인시키고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에 영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영화와 다른 임무를 부여받았다. 김정일은 애니메이션의 움직임과 감정 표현이 실사만큼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항일 유격대원과 인민군이 왜곡되어 형상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김정일은 1972년 내린 교시에서, 애니메이션은 아동의 나이와 심리적 특성에 맞게 제작되어야 하며 아이들이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직접적 표현이 아니라 은유적 표현을 쓸 것을 주문했다.
북한의 애니메이션이 아동용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작품에서 정치성이 희석되고, 북한 체제가 요구하는 교양과 덕성 교육이 우선시되었다. 그 결과, 의인화한 동물 캐릭터를 통해 우화 형식으로 주제를 전달하는 작품이 대세를 이루었다. 당시 남한에서 반공 애니메이션인 <똘이 장군: 제3땅굴편>(1978), <간첩 잡는 똘이 장군>(1979)이 흥행에 성공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 시기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들이 선보였다. <나비와 수탉>(1977년), <날개 달린 룡마>(1983)는 김일성의 동화를, <다람이와 고슴도치>(1977), <호랑이를 이긴 고슴도치>(1984) 등은 김정일의 동화를 각색한 것이다.
<나비와 수탉>의 장면들
이 작품이 김일성의 동화에 토대를 둔 것임을 자막으로 알리며 시작한다.
■ ‘다부작 아동 영화’의 등장과 애니메이션의 전성기
북한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 후반에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해 1990년 이후 연간 20여 편가량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 ‘다부작 아동 영화’라고 불리는 시리즈물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작품도 내용과 형식이 다양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영화년감 1986』의 표현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정서와 심리에 맞는 형상을 창조하는 것’이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최우선 목표로 간주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령리한 너구리>와 <소년장수>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령리한 너구리>는 1987년부터 2005년까지 60편이 넘는 시리즈로 제작된 작품이다. 편당 15분 내외의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인 너구리가 지식을 활용해서 동물 친구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림자를 활용해 높은 장대의 길이를 재는 법이나 관성의 원리 등 영리한 너구리의 설명을 통해 과학, 수학 지식을 흥미롭게 전달한다.
<령리한 너구리> 시리즈 중 ‘못가에서 있은 일’
아래쪽은 “액체나 기체의 어느 한 곳에 가해진 압력은 모든 방향으로 꼭 같은 크기로 전달된다”는 파스칼 법칙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영리한 너구리는 파스칼의 법칙을 이용해 연못에 들어온 고약한 물족제비를 잡는다.
<소년 장수>는 1987년부터 1996년까지 50편으로 제작되었으며, 편당 20분 분량이다. 고구려의 소년 장수인 쇠매가 뛰어난 무사로 성장해 침략자를 물리친다는 내용으로, 동명의 모바일 게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90년에는 장편 애니메이션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가 선보였고, <산삼꽃>(1989), <범을 타고 온 소년>(1989) 등 김일성과 김정일의 창작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도 계속 이어졌다. 이 시기에 ‘아동 영화문학 통신원’ 제도로 일반인의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영화문학은 시나리오를 일컫는다. 아동 영화문학 통신원들은 당의 방침에 따라 학습과 창작을 진행했으며, 현상 응모에 당선된 작품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북한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상당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1985년부터 외국 애니메이션 하청을 맡거나 합작하는 형태로 제작에 참여했다. 이탈리아 몬도사의 <사자왕 심바>, 프랑스 꼬리마숑사의 <레미제라블>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 새로운 모색기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은 군대를 정치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선군 사상(先軍思想)을 표방하며 사상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아동 영화도 선군 사상에 대한 교양 교육의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1996년,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가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에서 분리되어 독립했는데,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는 2004년까지 북한에서 유일한 대규모 애니메이션 제작 기관이었다.
1998년 <셋째의 착한 마음> 일부에 최초로 3D 컴퓨터 그래픽이 도입되었고, 2002년에 20분 분량의 첫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환상 속의 세 동무>가 제작되었다.
<환상 속의 세 동무>의 한 장면
학생소년궁전에서 과학을 탐구하는 학생들의 꿈을 다룬 작품이다.
2000년대에는 집단생활의 도덕교양을 심어주기 위한 작품들이 제작되었는데 <멍멍이의 글씨>(2001), <천년바위를 이긴 물방울>(2002), <전화 소동>(2003)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에 해외 합작도 활발히 이루어져 북한은 러시아,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다. 2004년에는 중국 단동에 중국 기업과의 합작 형식으로 삼지연 창작사가 설립되었다. <령리한 너구리>, <소년장수> 등 북한이 자체 기획, 제작한 작품들이 중국, 동남아시아, 프랑스에 수출되어 호평받기도 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이 2D에서 3D로 넘어가고 하청 제작의 중심지가 인건비가 싼 중국, 동남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여서 북한은 새로운 돌파구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
■ 남북 애니메이션의 교류
1998년 현대그룹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추진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남북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북한의 애니메이션은 1999년에 남한의 iTV에서 <호박 따는 날>과 <음악경연에서 있은 일>이 첫 공중파를 탄 이후 <령리한 너구리>, <소년장수> 등이 잇달아 KBS, MBC 등에서 소개되었다. 북한에서 1970년대 이후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대개 정치색이 노골적이지 않고 남북한의 문화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으므로, 남북 교류 사업에서 우선순위로 거론되었다.
2001년, 남한의 하나로텔레콤이 북한 삼천리총회사와 함께 3D 애니메이션 <게으른 고양이 딩가>를 공동 제작했다.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와 고급 인력을 남한의 우수한 기술력과 결합시키려는 시도였다. 결과는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듬해에 <뽀롱뽀롱 뽀로로>의 공동 제작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평양정보센터와 남한의 민족네트워크가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사업 계약을 체결하면서, 2004년 6월에 평양정보센터 만화영화 창작단이 만들어졌다.
2005년에는 북한 4·26 아동영화촬영소와 코아필름서울, 미국 코아필름이 합작한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이 남북한에서 동시에 개봉되었다. <왕후 심청>은 고전소설 <심청전>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북한 출신의 재미 교포인 넬슨 신이 감독을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왕후 심청>의 포스터
기획과 제작에 6년이 걸렸으며 제작비 70억 원이 투여된 대작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 관계는 냉랭해지기 시작했고, 2010년 천안함 피격으로 인해 교역 중단 및 신규 투자 금지, 지원 사업 보류를 골자로 하는 5·24 대북 제재 조치가 단행되었다. 이후 남북 문화 교류는 사실상 단절 상태에 있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박윤성. 2004. 「북한 애니메이션 영상문화의 동향분석」. ≪디지털콘텐츠학회논문지≫, 5권 4호, 275~282쪽.
홍주옥, 문재철. 2016. 「북한 최초의 애니메이션 작품 연구」. ≪애니메이션 연구≫, 12권 3호, 261~284쪽.
황선길. 1998. 『애니메이션 영화사』. 범우사.
이대연·김경임, 『북한 애니메이션』(파주: 살림, 200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한경 경제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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