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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와 (나) 는 같은 상황을 묘사한 2개의 글이다.
성사께서 “너는 나로 하여금 오래 살기를 바라는도다” 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나)의 글에 의하면, “이러한 묘한 법을 세상 사람이 다 알지 못하오니 원컨대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널리 알게 하옵소서.” 라는 柳贊明 의 말에 있었다.
그리고는 2개의 시를 외워주셨다. 2개의 시는 누가 보더라도 성사의 化天 을 예고한 것이었다.
<江南 楊進士> 에 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1) 江南 楊進士
『남원양씨대동보』에서 양석룡의 자만시는 찾을 수 없다. 다만 그가 귀향할 때 한성우판 신석희, 판서 김병필, 영상 김병국, 영상 김병학 등이 쓴 송별시 몇 편과 영상 김병학이 쓴 한 편의 만시가 있다. 그가 만년에 순창의 귀미로 돌아와 지내다가 향년 69세(1868)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제자들은 매우 슬퍼하고 만사(輓詞)를 지어 조의를 표하였다. 그 중에서도 김병학이 지은 만사(輓詞)가 유명하다.
김병학은 「挽楊上舍」 “詩中李白酒中伶 一去靑山盡寂寥 又哭湖南楊上舍 芳草雨蕭蕭”33라고 슬픔을 애도하였다. 이 시의 제목이 ‘만양상사(挽楊上舍)’인데, 이 상사(上舍)란 진사(進士)와 같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제는 ‘양진사의 만사’이다. 이 만사는 『전경』의 ‘남원 양진사의 만사’와 비교된다. 두 시의 차이는 又哭湖南楊上舍와 又有江南楊進士(『전경』)로 몇 글자의 착간이 나타난다.
Ⅳ. 맺음말
남원 양진사라는 인물을 고증하기 위해 양사언과 양석룡에 대해 고찰하였다. 두 사람은 조선시대 전기와 말기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로 시(時)와 문장(文章)에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차이만큼이나 그들에게 주어진 삶과 역할은 확연히 달랐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양씨(楊氏)의 성을 가지고 있지만 양사언은 청주, 양석룡은 남원이 본관이다. 관직생활 또한 차이를 보인다. 양사언은 진사시와 문과를 급제하고, 7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여 품계가 통정대부(정3품)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에 반하여 양석룡은 진사시에 합격한 것이 전부였으며 제자들에 의해 현감의 관직을 제의받지만 사양하고 진사라는 신분만을 유지했을 뿐이다. 양사언은 남사고, 이지함 등과 사승관계를 유지하지만 그의 제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아마도 40여 년간의 관직의 책무를 수행하는 한편, 또한 끊임없이 탈속을 꿈꾸며 승경(勝景)을 찾아 나섰던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이미지는 후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추수(追隨)를 받게 된다. 그러나 양석룡은 스승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제자들이 영상(領相)과 판서(判書) 등의 높은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제자들의 힘에 따라 좋은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이백과 유령처럼 그 성격이 호방하여 얽매임이 없고, 술을 대단히 좋아한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양사언과 양석룡은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생존 당시에 이미 그 명성이 대단하였다. 하지만 삶의 태도에서 보여지듯이 자신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각인시키려는 욕구는 없었다. 그들이 남긴 자만시는 찾을 수 없고, 사후에 친구나 제자들이 지은 애도시만 있다. 이달(양사언의 친구)이 쓴 만사와 김병학(양석룡의 제자)이 쓴 만사가 유명한데, 특히 김병학이 쓴 만사는 『전경』의 「남원 양진사의 만사」와 비교하여 내용에서 몇 자의 착간만 보일 뿐이다. 따라서 양진사라는 인물은 본관이 남원이고, 진사시에 합격하여 관직이 없이 진사로 불린 양석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남원 양진사의 만사」는 조선말기 영의정이었던 김병학이 쓴 만시이다.
(중략)
03 상제님 화천 이후에 기록된 『증산천지공사기』나 『대순전경』의 자료를 살펴보면 『증산천지공사기』에는 양진사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대순전경』의 초판에 … 南原 楊進士의 自挽詩를 외우시니 이러하니라 “詩中李白酒中伶 一去靑山盡寂寥 又有江南楊進士 (제12장 화천 20절)라는 기록이 처음 나타난다. 그 후 2판도 내용은 같다. 그러나 3판에 … 南原 楊蓬萊의 自挽詩를 외워주시니 이렇하니라 “詩中李白酒中伶 一去靑山盡寂寥 又有江南楊進士 라고 하여 ‘양진사(楊進士)’가 ‘양봉래(楊蓬萊)’로 구체화되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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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楊進士 에 관해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글을 쭈욱 읽어보면 江南楊進士 는 < 蓬萊 양사언> 이 아니라 <壺隱 양석룡(楊錫龍) > 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저 시를 보면 우당께서 말씀하신 4物 이 생각난다......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2) 4物
종통
1. 본 도(道)의 연원(淵源)은 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宗統)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내려 왔다.
(도헌 제12조) (82. 6. 28)
2. 이 연원(淵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으므로 연운(緣運)과 혼돈해서는 아니 된다.(82. 6. 28)
3. 종통(宗統)은 주고받는 상속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어져오는 천부적인 신성성이며 연속성이다. (87. 4. )
4. 본 종단의 맥(脈)은 상제께서 강세하셔서 교운을 펴신 데에 그 시원(始元)을 두고 있는 것이다. 상제께서 화천하시고 난후 상제님의 계시로 득도(得道)하셔서 종통(宗統)을 세우신 도주님으로 연원(淵源)의 맥이 이어지고, 또 도주님 화천 당시 유명으로서 연원의 맥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89. 3. 18) (87. 4.)
5. 상제께서 강세(降世)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생, 천사(天師)등으로 호칭하였다.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이시며 이 분이 바로 구천상제님이시라고 밝히신 분이 도주님이시다. 여기에서 종통 계승의 연원의 맥(脈)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87. 4. )
6. 종통(宗統)은 도의 생명이며 진리인 것이다. 종통이 바르지 못하면 법이 있을 수 없고 경위가 바로 설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서 생명이 움틀 수 없으며 만물만상을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다. (86. 10. )
7. 전경에 보면 시루산이 있고 부정리, 쪽박골이 있다. 시루, 솥하고 불이 안 들어가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91. 2. 12)
8. 천지의 이치가 일육수(一六水)에 근원하였으므로 선천(先天)의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역리(易理)가 모두 수중(水中)에서 표출된 것을 알 수 있다. (82. 윤4. 24)
9. 진리의 근원은 연원(淵源)이다. 근원(根源)은 물에 있다. 포덕한 연운(緣運)체계로 도통을 받는 것이 아니다. 상제님, 도주님, 도전으로 이어지는 연원(淵源)체계가 진리의 근본(根本)이다. (89. 3. 18)
10. 연원(淵源)이란 구천상제님, 도주님의 연원(淵源)이고 핏줄이다. 중간에 연운(緣運)이 끊어져도 연원(淵源)은 이어져 나간다. 타 종파에는 연원이 있을 수 없다. 우리만이 연원이 있고, 우리의 도통은 연원 도통(淵源道通)이다. (85. 4. 1)
11. 연원이란 포덕한 연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연원을 잘못 판단하여「전도인(傳道人)이 아니면 도통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88. 12. 4)
12. 연원(淵源)이란 못 연(淵) 근원 원(源)이다. 못도 물이요, 원(源)도 물이다. 복희때는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하도(河圖)를 쥐고 나와서 거기에서 진리를 깨달았고, 주문왕 때에는 신구(神龜)가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를 쥐고 나와서 거기에서 천지의 이치를 깨달았다. 금산사의 금불을 모신 자리도 용추못이 있다. 상제님, 도주님의 진리가 나온 곳도 못, 즉 물에서 나왔다는 말이며, 연원이란 원 근본을 가르키는 말이다. (88. 12. 4)
13. 연원도통이란 상제님, 도주님의 진리, 그 이치를 알아야 통한다는 말이다. 도통이란 포덕한 연줄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연원(淵源)과 연운(緣運)은 다르다. 오늘 갓 입도한 도인이라도 연원(淵源)은 누구나 다 같은 것이다. (88.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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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께서는 종통을 4物 로 설명했음을 알 수 있다.
이 4物 은 아래의 그림으로도 확인된다. 이 그림은 우당께서 客 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아래)
그런데, 客을 주제로 한 그림은 하나가 더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3) 2종류의 <開門納客 其數其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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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자락 휘날리는 선비들이 稚兒哭問母何之 의 稚兒 라고 생각한다.
(참고)
7. 이후에 우리도인들이 "속았다, 헛도 닦았다." 하는 말들이 나올 때가 있다. 공자의 七十二현인과 불(佛)의 五百나한들의 고충을 생각해 보아라. 운수는 좋으나 목 넘기기가 어려우니 참다운 성심의 일심(一心)이 나올 때 비로소 삶이 있다.
(80.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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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72현인> 과 불(佛)의 <500나한> 은 현재의 수도인들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운수는 좋으나 목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성사가 읊어주신 시에 의하면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사람인 江南楊進士 마저도 (세속적인 기준에 의하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우당께서는 <이후에 우리도인들이 "속았다, 헛도 닦았다." 하는 말들이 나올 때가 있다.> 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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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se6iCPanG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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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모단체에서는
영대에 4분을 모시다가
갑자기 6분으로 늘려 모시는
포퍼먼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5분의 남자와 1분의 여자.
그것을 모신분이나 따라가는 분이나
참. 딱하기는 매양가지.
^^ 우당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명확합니다.....우당께서는 성사께서 언급하신 理 그 차제이시니까 그렇습니다. .....
(참고1)
理雖高 出於太極无極之表 不離乎日用事物之間
(참고2)
대순은 원(圓)이며 원이 무극(無極)이고 무극이 태극(太極)입니다. 태극은 우주의 본연 법칙으로서 유일무이한 진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일무이한 진리인 태극은 무극이고 무극은 원이며 원이 대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대순이 막힘없이 크게 도는 원(圓)으로 표현된 것은 우주의 주인이신 상제님의 천지인 삼계를 순회하여 살피신다는 의미가 있고 이것이 진리적으로 표현된 것이 해원상생 보은상생의 대순진리입니다. 이는 상제님께서 천지인 삼계를 대순하신 결과인 천지공사에 의하여 실현되는 기틀이 형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