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동물의 장례를 보면서....
한반도 숲속 나라 동물들은 먹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합니다.
또한 동물들의 능력도 천차만별이어서 먹거리 걱정없이 살아가는 동물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하루, 한달 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러한 숲속 나라에는 여러 모양의 가게들이 있는데, 그 가게에서 일하며
호구지책을 이어가는 동물들이 제법 됩니다.
그러한 동물들의 숲속 나라에 비중있고 영향력 있던 원숭이가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가족의 신고가 동물 순라 마당에 접수되었습니다.
온 나라의 지킴이들이 그 동물을 찾기 위해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수 시간이 흐른 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사인은 자진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무게감 있던 동물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많은 동물들에게는 한가지 의문부호가 생겼는데, “도대체 왜 죽었을까?
죽은걸까? 죽임당한 걸까?” 가 그것입니다.
석연치 않았던 그 날은 세월의 야속함 속에 떠내려가는 듯했습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어느날,
숲속나라의 먹고 사는 문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자가 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평범한 동물들로서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광경들이 그 이후부터 연출되기 시작합니다.
숲속나라에서 부유하기로 손가락에 꼽을 만한 사자의 장례식이
몇 달 전 장례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숲속나라의 왕부터 의례적인 조의 표시만 한다는 느낌을 소시민들 조차
눈치챌 정도로 무성의한 모습으로 체면치례만 하는겁니다.
죽음 자체는 동일한데 그 죽음을 대하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지도자의 모습에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느 쪽에 줄을 섰는가에 따라 죽음을 애도하고 주검을 대하는 과정이 다르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판장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덕목 가운데 하나는 공정한 추와 되입니다.
그것도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와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두라(신25:15) 요구하십니다.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신명기 25:15)
그 어떤 경우에도 성경의 정신은 연합과 일치입니다.
단 복음과 진리 수호 문제는 예외이겠지요.
이는 타협해서도, 타협할 수도 없는 목숨 걸고 준수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사항들을 통해 분열과 편 가르기를 지도자가 교묘하게 조장한다면
그 공동체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같은 해에 일어난 두 동물의 죽음을 지켜보는 이름없는 숲속 동물의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올려져 있는 기분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