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메세지
어린시절 어느날 엄마가 외출 준비로 머리 고대를 하러 갈 때, 우연히 따라 나섰던 동네 미장원.
쫄레쫄레 엄마 손을 잡고 깡총거리면서 걷다가, 큰 길가 어디쯤 이층 층계를 올라갔었다.
문에 들어서자 마자 머리에 이상하고 커다란 비닐 모자를 뒤집어 쓴 아줌마들이 두어 명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실내 한 가운데 난로 위 화덕에는 인두처럼 생긴 기다란 쇠 고대기들이 불에 빨갛게 달구어져 있었다.
미용사가 엄마 머리카락을 한 가닥 잡아 누런 얇은 종이로 말면, 보조 미용사가 달군 고대기를 그 옆에 놓인 젖은 물 수건위에 식혀서, 알맞은 온도로 맞춘 뒤에 미용사에게 건냈다.
납작하게 눌린 젖은 수건은 갑자기 열을 식히느라 ‘치직’ 소리를 내면서 김을 모락모락 내고, 수건 가장자리는 듬성듬성 까맣게 탄 자욱이 있었다. 미용사가 고대기로 엄마의 종이에 싸인 한 가닥 머리카락을 잡고, 뜨거운 고대기로 ‘왈그락 왈그락’ 소리내어 재빨리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그 일을 반복했다.
곧 고대기에서 풀려난 머리카락은 신기하게도 구불구불하게 변해있었고, 그러는 동안 실내는 온통 종이와 머리카락 타는 냄새로 진동했다. 호기심에 가득찬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가게 안에 가득찬 신기한 물건들. 여기저기 바구니에 담긴 처음 보는 분홍색 장난감 플라스틱 뼈다귀처럼 생긴 미용도구와, 조그맣게 자른 누런 종이 쪼가리들, 고무줄 뭉치, 여러개의 실핀들과 다양한 모양의 머리빗들, 그리고 여기저기 널린 노란 세수 수건들.
이곳은 어린 나에게는 정말 처음 접하는 별 천지였다.
세상에나 ~ 엄마는 이렇게 고생을 해서 머리를 모양내고 예쁘게 만드는 구나! 내눈엔 참 희한한 일이었다.
자라는 동안 짧은 단발머리 중.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서 대학 3학년이 될 때 까지 늘 컷트 머리만 했었다.
어느날 엄마의 ‘너도 하면 예쁠거야’ 하면서 살살 꼬드기는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드디어 첫 파마를 하게 되었다. 머리 가닥가닥에 프라스틱 뼈다귀를 감고 파마 약을 꼼꼼히 바르고 비닐 벙거지를 뒤집어 쓰고, 무려 4시간이 넘게 그 냄새를 참고 견디다가 드디어 풀려 났었다.
머리를 감고 거울 앞에 앉기도 전에, 엄마가 나를 보고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너, 꼭 채리 차프린 같다”
결과는 온통 컬로 동그랗게 부풀어 올라, 마치 머리위에 풍선을 쓴거 같은 모양이었다.
거울 앞의 낯선 얼굴, 그 꼴이라니! 낭패감이 이마저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누구나 파마는 한번 하면 거의 똑같은 모양의 뽀글이 ‘라면 파마’였다.
그리고 그 꼬불한 라면은 풀리는데 자그마치 6개월이상이 걸렸다.
그래도 아줌마들은 파마가 쉬 풀릴까봐, 그동안 한번도 머리를 자르지도 않고 버티었다.
마치 가는 오징어 채볶음처럼 더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파마를 하는 미장원을 입소문으로 찾아 다녔다.
또한 미용도구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무허가 미용을 하는 미용사들도 많았었다.
그렇게 무슨 유행처럼 너도 나도 같은 스타일의 파마머리를 하게 되었고, 그런 미장원 덕분에 동네 아줌마들의 얼굴도 다 비슷해 보였다. 결국 그 머리 모양이 그 당시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전형적인 심볼이 되기도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검은 직모가 아닌 곱슬머리를 원했고, 서양인들은 곱슬 머리를 풀어서 길고 윤기나는 직모를 갖기를 원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을 모르고, 내가 가진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는 모양이다.
친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까지 늘 한복 치마에 머리를 쪽 지시고 비녀를 꼽으셨었다.
젊었을 때는 분명 삼단 같았을 검고 윤기나던 머리가, 나이가 드시고 회색으로 변하면서 머리숱도 점점 적어졌다. 장롱에서 꺼낸 작은 반지고리 안에서 손바닥 만한 크기의 색경을 꺼내 앞에 놓고, 참빗으로 긴 머리를 곱게 빗었다. 다 끌어 모아도 손 끝에 겨우 잡히도록 아주 가느다랗고, 모아서 틀어 올려도 크기가 겨우 아기 주먹만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침마다 방바닥에 손수건을 깔고, 이마 한 가운데 앞가르마를 정성스레 가르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은비녀를 그 작은 뒷 머리에다 정갈하게 꼽으셨다.
최고의 단장은 동백 기름을 조금 발라서, 양 손바닥으로 살살 눌러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곤 행여 머리카락이 방바닥에 떨어졌을까봐, 손바닥으로 쓸어 모았다.
동그랗게 모은 그 머리카락을, 할머니는 다시 그 작은 반짓고리 안에 참빗이랑 같이 소중히 보관해 두셨다.
옛 사람들은 손톱이나 발톱, 머리카락을 함부로 버리는 일을 아주 금기시 했었다.
외할머니는 이마에 자꾸 돋아나는 흰 머리를 보는 족족, 족집개로 뽑아버리셔서, 이마가 차차 넓어져서 얼굴이 커 보일 지경이었다. 그정도로 흰머리를 극혐하셔서 늘 염색을 했는데, 문제는 검은 ‘양귀비’표 염색약이 었다.
당시 그 염색약 알러지가 아주 심해서, 염색하고 나면 늘 부스럼이나 가려움증으로 고생하셨었다.
그래도 검은 머리의 유혹은 상표 이름 만큼이나 강해서, 흰머리가 보이는 것을 싫어하셨었다.
누구나 젊어 보이고자 하는 욕망은, 스스로 나이 들었음을 인지 할 때, 비로소 일어나는 욕구반응이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어떤 문제도 내게 닥치는 현실감 없이는, 누구도 절감하기 어렵다.
3살 짜리 손녀는 유치원에 가면, 지 엄마가 아침에 예쁘게 빗어 머리에 찔러준 꽃핀과 고무줄을 다 풀어버리고 산발을 하고 돌아온다. 내가 어느날 유치원에 픽업하러 갔는데, 마침 간식시간이어서 아이들이 둥근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었다. 거기서 나는 손녀가 왜 머리를 풀고 싶어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모든 여자아이들이 긴 머리를 풀고, 머리를 묶은 아이는 한명도 없었다.
저 나이에는 다른 이들과 동일한 모양을 원하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대다수의 현지 아이들과 달리 곱슬기가 없는 손녀의 머리카락은 수시로 눈으로 흘러내렸다.
그래서 설명을 하고 동의를 얻어서, 이마 머리 위만 조금 집어서 묶어주었다.
유교 문화에서는 머리를 푸는 일은 상을 당한 경우가 아니면 흉하다고 터부시 하였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늘 단정한 머리 모양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나 어릴 때 처럼 머리를 묶거나 양갈래로 따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어 졌다. 풀어놓은 긴 머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더 좋아한다. 허지만 그 긴머리를 간수하고 유지하는일은, 보기보다는 많은 시간과 손이 가는 일이다.
오늘 미장원에서 파마를 했다. 여전히 각색의 플라스틱 막대기로 머리를 마는 것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다양한 기술이 생겨났다. 파마도 날이 갈수록 점점, 한듯 만듯한 자연스러운 웨이브가 유행이다.
끝에만 아주 살짝 컬이 있어서 내 눈에는 컷트만 한 것처럼 보이는 파마가 인기인 모양이다.
그러니 예전부터 오랫동안 ‘라면 파마’를 하던 할머니 마음에는 영 시원치가 않다.
미용사는 그 맘을 알고 컬을 제법 많이 넣어주었다. 이 머리는 3달은 족히 갈거 같아 보이니 그런대로 만족이다. 미장원에 오기전 미리 집에서 이마와 귀 옆머리 새치만 부분 염색을 하고 왔는데, 오늘 큰 거울에 자세히 보니까 흰 머리가 그대로 남아있다.
반백의 뒷 머리는 당장 내 눈에 안보인다고 무시하고, 눈가리고 ‘아웅’한 셈인데 그만 들키고 말았다.
그러면 또 어떠냐~ 하는 태평한 마음이다.
십여년 전 처음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는, 호들갑을 떨면서 아이들에게 그 흰머리카락 한 올을 보여주면서 뽑으라고 수선을 떨었었다. 괜스레 누가 속을 썪여서 생긴 것이라면서, 남편 앞에 응석 삼아 뽑은 그 흰 머리카락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흰머리가 반백이 다 되어버리고, 점차 검은 머리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파마가 아니라 염색을 더 자주 하러, 미장원에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이렇게 뒤늦은 후회와 그 당시 내가 젊어서 어리섞었음을 뒤돌아 보게 한다.
검은 머리가 흰 머리로 변하는 것은 세월이 내게 들려주는 ‘이제 차차 알아서 준비를 하라’는 말이고,
정리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나름의 경고인 ‘노란 불’인 셈이다.
내가 고개 돌리고 외면하고 모른 척 한다고 해도, 그 신호는 분명 오래전에 내게 보내졌다.
그 걸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태평한 내 마음과 무관하게...... 메세지는 메세지다.
아침마다 얼굴에 보이는 주름이나 처진 입가 그리고 흰 머리카락을 보면서도, 안 본듯이 무심히 거울 앞을 지나친다. 이것은 단지 젊다거나 늙음의 문제가 아니라, 세월따라 나 자신이 쉼없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도 이 세상 속 그 수많은 작은 존재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자각이 든다.
내가 특별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남을 존중하는 마음도 비로소 열리는 것이다
흰 머리 한 올에서 많은 상념을 엮어 본다.
12.2022
첫댓글 솔직하고 담담한 글 잘 읽었습니다.
파마 머리를 가지고도 이렇게 좋은 글를 쓸 수 있군요. 여성의 섬세한 마음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 부족한 글을 두분 선배님들이 읽어주시고, 댓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로 흰 머리 한 올에서 많은 상념이 담겨 있네요.
일상에서 건져낸 소소한 글.
이런 글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몇 달 전 파머를 한 적이 있는데(아주 약하게)
그때의 어색함 때문에 머리를 자주 감은 기억이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세 여인들의 파머가 대표적인 뽀글이 파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