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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6장 불교문학
■ 1. 불교시
■ 2. 불교의 서사
불교문학(佛敎文學)의 의의(意義)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문학이란 언어를 매개로 하여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허구이다.
첫째는 불교 경전 및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계되는 저작물 일체가 불교 문학이다.
둘째는 불교적인 것을 표현한 저작물을 말한다.
셋째는 문학형식에 불교사상을 담고 있는 창작물이다.
불교경전문학과 불교 창작문학은 불교문학이라 정의 할 수 있다. 그래서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심어
주어야 한다. 불교의 진리를 대전제로 출발하여 작가의 상상력과 문학적 향기가 더해져 불교정신이 구현되어야 한다. 문학을 도구로 하여 사람들의 가슴에 알게 모르게 불교의 향기가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오랜 역사를 이어온 불교사상이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거부감 없이 자리 잡고 우리들의 생활 전반과 내면적 정신세계에 깊숙하게 뿌리를 내리게 된 데는 그 만금 불교 문학이 기여가 크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불교 문학은 통일 신라시대의 향가에서 비롯된다. 작가가 대부분 승려이거나 신도들이고 내용도 불교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고 있다. 신라인의 노래는 바로 불교를 기반으로 한 지혜와 신비의 표현이었고 수많은 문인들은 창조적 영감과 상상의 원천을 불교에서 구했다. 고려 가요나 민요 설화 구전문학 등에도 불교문학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고려 때 편찬된 삼국유사는 시가와 설화 즉 시문학과 산문문학의 일대 집대성이다. 삼국유사는 역사서이자 불교문학사이며 더욱이 손색없는 문학 교과서이다. 민중의 심성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불교는 근대이후 문학에도 깊이 내재되어 다양한 장르에서 불교의 정신을 문학으로 승화 시키고 있다.
1. 불교시(佛敎詩)
게송(偈頌)
게송이란 불교의 가르침을 함축하여 표현하는 운문체의 짧은 시구를 말한다.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를 비롯하여 무상계(無常戒) 법성게(法性偈),등 경전 상에 나오는 게송만 해도 헤아 릴 수 없이 많다. 초기불교의 숫티니파타는 전문이 짧은 운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밖에도 부처님과 제자들의 문답도 또한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송은 짧은 운문체 시구로 리듬감이 있고 비유를 통한 역설적 강조 혹은 반복을 통한 주체의식을 부각시키는데 탁월하다. 특히 법문을 설하는 전달자의 선지(禪旨)를 들어낸다. 대표적인 게송은 전법게, 오도송, 임종게, 열반송 등이 있다. 전법게는 법을 전할 때 하는 게송을 뜻하며 임종게와 열반송은 입적에 드는 순간에 남기는 게송으로서 한평생 수행의 결과를 제자들과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도송은 깨달음의 순간을 읊은 게송으로서 개안(開眼)의 기쁨과 깨달음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선시(禪詩)
선시는 주제에 있어 보다 선적이며 좀 더 시적인 표현양식이다. 선시는 선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 해낸 것인데 사실 선의 세계는 깨달음의 세계를 어떤 언어나 문자로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체의 형식적인 틀을 거부한다. 어떤 틀에 갇히면 이미 본래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불입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이기 때문이다. 선의 세계는 쉽게 접근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언어를 빼면 달리 소통의 길도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가장 초월적이면서도 파격적인 다른 어떤 문학 장르와도 차별되는 독특한 선시만의 세계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선시는 기본적으로 선시만의 세계가 탄생돼 있다. 언어를 빌리고 있지만 그 본질은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참 뜻이 있다. 선의 세계에는 언어를 빼면 달리 소통의 길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선시는 설명적 기능 보다는 상징적인 기능에 더 충실하게 쓰여 진다. 이렇게 보면 선시는 말해 쓰여 졌다 기 보다는 깨달음의 순간에 저절로 쓰여 지는 경지의 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뚜렷한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선시가 흔히 일반적인 불교한시나 여러 불교적 시들과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시란 단순한 선적 경향이 아니라 선의 본질을 꿰뚫고 있어야함을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선시는 문학적 이해에 앞서 선적 이해와 수행 속에서 만 바른 이해를 구할 수 있다.
불교 한시(佛敎漢詩)
불교적 사상과 그 사상적 세계를 통한 시화로서 미학적 기반 위에 축조된 언어적 응축물이므로 언뜻 선시와 거리감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선시에 비해 선적 감성의 시적 승화만을 집요하게 고수하지 않고 불교적 사연과 깨달음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보이는 시라고 해야 할 듯하다. 저술층이 승려로 한정되지 않는데서 나타나듯이 깨달음에서 오는 법열이나 공안과 같은 역설적 발화만이 시를 지배하는 것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 즉 선시에서 배제된 지식인 혹은 유자 층의 시라할지라도 불교적 교리나 취의성(趣意性)을 반영하고 있다면 이를 불교한시라 할 수 있다.
불교가사(佛敎歌辭)
불교가사란 불교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불려 지던 가사의 형식을 통해서 불교사상과 교리를 설파하는 노래를 가리킨다. 포교 적 기능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무지한 대중들을 대상으로 불교의 신념이나 사상을 알리는데 적합한 양식이다.
내용은 단순한 불교적 교리의 주입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체험을 근거로 세속적인 명예나 권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우쳐 주는데 힘을 쏟았다.
어록(語錄)
어록은 고승들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깨우침의 방편으로 삼아 제자들을 교도할 목적에서 그 문인(門人)이나 시자(侍者) 들이 스승의 법문과 말씀을 채록하여 편찬한 것을 가리킨다. 스승과 제자가 특별한 형식 없이 문답한 것이지만 후학들이 이를 참구하여 깨우침에 이르게 하는 방편적 기능에서 어록의 의미를 찾아 왔다. 형식면에서 온전한 시가라 부르기는 어려우나 시로써 생각의 계기와 함께 이치를 깨우쳐주는 시게 (詩偈)가 포함됨으로 불교 시 로의 편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게송(偈頌), 법어(法語), 소(疏), 탑명(塔銘), 행장(行狀), 제문(祭文) 등 다양하게 혼재해 있으므로 시가(詩歌)로서의 어록은 따로 선별해서 보아야 한다.
현대불교시(現代佛敎詩)
불교시는 한문으로도 우리말로도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시대적으로 우리말이 중심이 되고 현대 시가 보급된 20세기에 들어 와서는 선시(禪詩)나 불교한시 대신 자유시의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불교적 교리 및 불교적 상상력에 의거해 새롭게 창작되기 시작한 현대 불교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시사(詩史)에서 불교시의 수준을 확정한 첫 번째 인물로는 만해(萬海)스님이다. 그는 과거의 전통을 과감히 떨치고 탁월한 수준의 시들을 남김으로써 불교시인으로서 입지를 구축하였다. 그가 남긴 “님의 침묵”은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또 육당 최남선은 최초의 현대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시조집 “백팔번뇌”와 수필집 “심춘 순례“는 그가 평소 지녔던 불국정토의식 혹은 이 땅의 정토 화 의식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한 근대문학기의 대표적 문사인 이광수 는 현대 불교 시 영역에 까지 범위를 넓힌 경우이며 승무의 작가로 알려진 조지훈은 선리 선취 적 분위기가 강한 현대 불교 시인 이다. 이 밖에도 김달진, 오상순, 서정주, 심석정, 이우출 등을 통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교시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2. 불교 서사(佛敎 敍事)
불교 설화(佛敎說話)
불교설화란 불교적 내용을 간직한 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대와 시대를 넘어서 폭넓게 전해지는 이야기라고 정의 될 것이다. 불교설화가 동양은 물론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 원동력은 물론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고 있는 불전이다. 불전에 부처님 말씀은 오롯이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중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에서 출발 하였으며 후세에까지 깨달음의 말을 전하기 위해 설해진 것이 훗날 집결 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 말씀은 대중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가장 쉬운 언어로 표현 되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 되어 있다. 불전문학은 그 자체로 비유와 설법의 보고인 셈이다. 우리나라 불교 설화는 불전에 기원을 두고 전파된 외래설화와 삼국시대 이래 불교적 풍토에서 자생적으로 발원한 설화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본생설화, 비유설화. 방편설화, 인연설화로 나누어지며 불전결집 후 문학화 되어 불교의 포교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한역 된 것 중에서도 “본생경(本生經)” “육도집경(六度集經)” “잡비유경(雜譬喩經)” “현우경(賢愚經)” “백유경(百喩經)”등은 설화가 풍부하게 실려 있는 경전으로 삼국시대 이후 이를 수용하는 한편 나름의 설화 발생에 촉매 적 구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자생적 불교설화의 여러 양상을 살피는데 있어 삼국유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불교설화는 승사(僧事)와 불교철학, 설화미학의 세 가지 요소로 지탱되는 것이기에 불법승 삼보에 걸친 이야기를 구분 짓는 것이 불교설화 정리의 한 방법일 것이다. 이 중 사찰 연기 설화와 불전설화는 근원적 불교설화 일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 설화는 무지한 대중을 교화 하고 흥미를 촉발하기위한데서 출발한 구술문학에 불과 하지만 소설 같은 세련된 장르를 탄생시키는 효시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특히 서사문학적 의의를 과소 평가할 수는 없다. 그만큼 불교설화의 문학적 가치와 그 파급 효과는 밝혀진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면이 더 많은 영역이라고 할 것이다.
승전(僧傳)
승전은 승려의 일대기에 해당하는 전기 문학으로 불교문화의 융성과 함께 싹트고 널리 읽혀지고 창작 되다가 우리시대에 들어와 양식적 소임이 쇠잔해진 서사물이다. 스님의 생애를 기록한다는 것은 그 배경에 불법과 승려를 존중하고 따르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하는 것으로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많은 승전이 지어진 것은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조선시대는 승려의 신분이 급전직하한 시기로 자연히 승전 찬술의 열기가 시들했던 것은 당연 했다. 승려의 문집에 행장 및 승전 등이 첨부되기도 하나 그것은 과거의 승전 찬술 열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 두 가지 종합 체제의 승전이 엮어 졌는데 동국승니록(東國僧尼錄)과 동사열전(東師列傳)이 그것이다. 출현시기가 그러하듯 암흑기를 거쳐 온 불교의 역사나마 지난시대의 승사를 종합화, 체계화해야 한다는 지성들의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불교 고소설(佛敎 古小說)
본격적인 소설이 등장하기는 조선시대 초기이지만 이미 신라와 고려시대에 다양한 설화가 전파 되었고, 이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불교사상과 세계관을 반영한 다수의 소설을 출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한글의 활용 여부를 실험하기 위한 석보상절(釋譜詳節) 등의 서사문학의 출현 또한 불교소설의 창작에 불을 지핀 계기가 되어진다. 특히 불교소설은 민중과 부녀자 층의 홍교나 경전의 이해에 부차적 방편이 될 수 있었다고 보는데 이는 한글이나마 문자를 해득하는 층이 두터워 지면서 함께 일어난 현상이다. 한편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비문학이 문자로 창작되는 분위기가 조성 되었다. 불교소설의 다른 한 부류는 작가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창작에 임해 불교적 주제를 이끌어 내는 경우로 구운몽(九雲夢)이 대표적이다. 현생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삶의 허무감에 사로 잡혀 결국 수행자로 돌아간다는 구성적 회귀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유불선 삼교습합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결국 그 지향점은 불교정신에 두고 있다.
현대 불교 소설(現代 佛敎 小說)
불교소설은 불교적 인연 인과응보를 아우르는 주제를 지향하거나 참된 자아를 찾거나 인간구원이나 생태적 삶을 이 땅에 구현시키고자 하는 작가들의 화두를 공유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불교소설은 시대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문학적 담론의 장이다. 정토사상의 연기설화로 삼국유사에 기술되었던 조신, 이차돈, 원효대사 등의 전설이 이광수에 의해 꿈, 이차돈의 사, 원효대사로 탈바꿈 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불교적 주제를 현대소설에 성공적으로 이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광수에 이어 불교적 주제의 현대소설에 관심을 보인 작가는 김동리이다. 그의 등신불은 교과서에 실릴 만큼 수작이다. 이 밖에도 근대에 와서 불교 세계관이나 교리를 소설적 주제로 택한 작품은 수 없이 많다. 김정한의 수라도, 김 원일의 파라암, 김성동의 만다라, 한승원의 포구의 달, 조정래의 대장경등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불교수필(佛敎隨筆)
과거 문학 중 서(書) 기(記) 발(跋) 표(表) 설(說) 행장(行狀) 소(疏) 논(論) 제문(祭文) 찬(讚) 명(銘) 권선문(勸善文) 사적(事蹟) 기도문(祈禱文) 축문(祝文) 등 실용적 가치가 앞서는 글들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여전히 쓰여 지는 일기(日記) 기행문(紀行文) 편지 등을 수렴시킬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당연 수필일 것이다. 수필은 실용성과 역사성이 두드러지게 반영되어 있어 문학적 가치 외에 주변 학문에 도리어 더 크게 활용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문학적 가치에 대한 세부적 연구는 아주 미미한 실정이다. 그 개념적 테두리가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는 문학성이 높은 불교수필이 적극적으로 쓰여 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분망해지고 복잡다단한 삶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안식이나 자기 성찰적 출구로서 그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격식에 매일 글이 아니라 불교적 사유로 잔잔하게 전하는 그 메시지가 대중들에게 어떤 양식보다 친근감을 주는 것이 아닌가. 법정 스님의 수필은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며 그 밖에 대중의 관심을 고조시키며 불교적 인생관에 이르는 통로 적 역할을 하고있는 여러 스님작가가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 여겨진다.
불교(佛敎)의 금석문(金石文)
인간에게 있어서 삶과 그 자취를 후대에 남기고 싶은 열망은 예나 지금 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금석문이 새겨져 있고 특히 고승이나 사찰의 역사를 돌과 쇠에 새겨 남기려는 전통이 끓임 없이 이어져 왔다. 현재 남아 있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비문은 대부분 당대의 출중한 문인들의 작품이다. 이는 승비(僧碑)가 대상에 대한 전기나 역사적 증언 물임은 물론이고 나아가 전기문학이나 서사문학의 한 영역으로 보더라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일러 주고 있다.
승비는 형식면에서 한 개인의 일생을 압축하여 담고 있어 유가(儒家)의 비문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유가의 것이 주로 유교적 가치관에 의거한 입신양명과 생전의 벼슬이나 활약상을 강조한 반면 승비에서는 탄생의 신이함, 출가 및 각성 과정 대중구원, 그리고 입멸이 마치 단락 화 되듯 순차적으로 기록되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비문의 끝에는 가송 형태의 시를 부언하여 앞에 기술된 전기적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승비는 문(文)과 시(詩)의 결합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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