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는 어떤 종교인가?
누구나 물을 수 있는 질문이다.
불교(佛敎)는 간단히 부처님(佛)의 가르침(敎)이고, 이때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한다.
그리고 불교의 핵심은
우리가 부처님이 됨[성불]이다.
하여 불교란 석가모니 부처님에서 시작해 부처님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 가르침(敎)이다.
힌두교나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들을 보면..
기독교는 예수인 그리스도 Chrit의 가르침인데, 기독교인은 예수처럼 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예수를 따를 뿐이다.
힌두교나 이슬람교도 그들 신의 계율이나 가르침을 전하며, 그것을 그냥 따른다.
그러기에 예수는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지.. 그는 나와 세상을 어떻게 그리고 왜 그리 보고 있는지 등.. 알 필요 없이
예수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불교는 부처가 되려는 종교이기에 부처가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지 알아서
실천 수행을 해야만 한다.
이때 실천 수행은 불교를 기독교와 같은 종교라 하듯이 공통점이 있다. 그 부분은 비교할 수도 있다.
목표는 다르기에 방법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특히 재가 불자의 실천과 타 종교의 실천은 많이 비슷하다.
여기서는 공통점 보다 차이점을 알아본다.
불교는 부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종교이듯,
기독교는 유일신 야훼[하나님]와 그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종교이고,
이슬람교는 유일신 알라를 믿고 따르는 종교다.
힌두교는 수많은 신 가운데 최고의 신을 브라만[범천]이라 부르며.. 시바, 크리스티나 등 여러 신을 섬긴다.
우리 조상님들은 하늘에 계시는 최고의 신을 한님(환인, 하느님, 하나님, 한울님 등)으로 부르며 믿었다.
부처님은 먼저 이천 오백여 년전 인도에서 살아가신 석가모니를 지칭하니..
신을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우위 존재로 보는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인은
부처를 신보다 격이 낮은 자로 보는 경향이 많다. 여러분도 그렇게 보시는지?.
그럴 수도 있는데.. 불교 경전을 보면 놀라운 장면이 나온다.
불교 근본경전으로 여기는 <쌍윳다 니까야> 첫번 째 경에는..
거센 물결 경(S1:1)
Ogh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어떤 천신(하늘사람)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멋진 모습을 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왔다.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스승이시여, 당신은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넜습니까”
"벗이여, 나는 머무르지도 않고 너무 애를 쓰지도 않고 거센 물결을 건넜노라.”
“스승이시여, 그렇지만 머무르지도 않고 너무 애를 쓰지도 않고서,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널 수 있었습니까?”
"벗이여, 내가 멈출 때 나는 가라앉아 버렸다.
내가 (건너려고) 애를 쓸 때 휩쓸려나가 버렸다.
이처럼 나는 멈추지 않고 너무 애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폭류를 건널 수 있었다.”
[천신]
“참으로 오랜만에 완전한 평화 얻은(번뇌를 모두 소멸한) 진정한 바라문을 저는 친견했습니다.
그분은 머무르지도 않고 너무 애를 쓰지도 않으면서 세상에 대한 집착을 모두 건넜습니다.”
그 천신은 이렇게 말하였고 스승께서는 그의 말에 동의하셨다.
그러자 그 천신은 ‘스승께서는 나의 말에 동의하셨구나.’라고 안 뒤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거기서 사라졌다.().
<1. 거센 물결 경> 내용은 천신이 부처님에게 어떤 방법의 수행으로 구경 열반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
세존은 중용적인.. 중도가 아님.. 수행법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대답하신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경에 나오는 장면을 떠 올리면..
하늘에 존재하는 어떤 신이 부처님을 찾아와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는 감동하여 경의를 표하고 돌아간다.
질문자가 석가모니 제자나 사람이 아닌 신이라는 것이 포인트.
부처님 당시 인도에는 수많은 신이 있고 사람들은 그런 신을 존경하고 따른다.
인도인들은 신은 전생에 인간 세상에서 수많은 선행과 수행을 하여 높은 경지에 오르면 그 결과 신이 되어 하늘에 머물며 인간의 수명으로 헤아릴 수 없는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산다고 여겼다. 하여 인간들은 그런 신을 믿고 따르고 있었다.
<쌍윳다 니까야>에 제일 첫번 째 경으로 신이 부처님에게 경배드리는 내용을 수집 정리한 이유도 바로
석가세존의 위치가 어떤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는게 아닌지..
또 다른 근본경전인 <잡아함경>을 보면..
잡. 1294. 무소구경(無所求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얼굴이 아주 잘생긴 어떤 천자가 새벽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있었는데, 그의 온몸에서 나오는 광명은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
그 때 그 천자가 게송으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큰 힘을 가진 자재(自在)로운 즐거움은 구하는 것 얻지 못함이 없는 데 있다.
무엇이 그것보다 더 훌륭한 게 있으랴. 일체 하고 싶은 것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큰 힘을 가진 자재로운 즐거움은 그야말로 구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만일 욕심을 내어 구하는 것 있으면 그것은 괴로움이요 즐거움이 아니다.
구하는 것에서 이미 벗어났다면 이것이 곧 그것보다 즐거운 것이니라.
그 때 그 천자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오래 전에 바라문을 보았는데 그 바라문은 반열반을 얻어
모든 두려움에서 이미 벗어났고 세상 은애(恩愛)까지 모두 벗어났네.
그 때 그 천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곧 사라지더니 나타나지 않았다.().
자유자재한 자재천신이 은근히 자신을 뽐내며 부처님을 시험(?)하는 듯한 내용을 읊으니..
부처님은 지극한 자유자재라면서 구하려는 게 있으면 욕심이 아닌가 하는 것.
그 말은 자유자재한 내가 있다는 것인데.. 내[유아]가 있으면 더 수행해야하는 단계가 아닌가?.
부처라 불릴려면 나라는 아상이 없다.
여기서도 내용도 중요하지만 장면은 <니까야>에 올린 것처럼 최고의 천신이 부처님께 내려와 부처님 답변을 듣고 경의를 표하고 돌아가고 있다.
불교는 신이 아닌 부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종교인데.. 부처님은 신에게 존경받는 스승[천인사]이라는 것.
보통 불자라면 여기까지 듣고 아하.. 내가 의지하고 따르는 부처님은 신에게 조차 스승이 되는 분이구나! 하고
천신처럼 경의를 표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가도 된다.
그리고 어찌 이웃 종교인들은 천인사인 부처님을 훌륭한 인간으로만 보려 할까.. 하며
그들의 무지를 바꾸어 줄 수 있는 방법까지 연구해 보아야 하리라.
한편 불교란 우리가 부처님이 되는 종교라 했듯이..
어떻게 하면 부처님이 되는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