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평화 운동가 만남 간단 후기
* 만남 후 잊어버릴 것 같아 급히 기록을 남겼습니다. 다시 다듬어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
오늘 짧은 만남이지만 잊지 못할 만남을 가졌다.
송 박사는 우스갯소리로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가 목사가 못(안)된 것이란다. ^^
2011년 강정 마을에 발을 디디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강정 마을에서 뿌리를 내리고 반전 운동과 평화 운동을 하고 계신다.
우리를 제주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계신다면 하나는 자연과 만나는 안식, 두 번째는 그동안 제대로 몰랐던 제주 4.3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 세 번째는 강정 마을에서 잠깐 만난 송강호 박사의 대화 속에서의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이란 지극히 작은 자와 늘 함께하고자 하는 삶이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것을 제대로 확인했다.
특히 정치적으로든, 전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소외든 자와 그 공동체의 고통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는 삶이 너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제주 4·3 이후 70년의 세월 속에 제주 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교회는 70년 동안 고통 속에 있었던 제주 도민의 아픔과 함께하지 않았다. 정확한 근거를 좀 더 알아보려고 한다.
그동안 제주도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겠지만, 제주 민중들의 마음을 보듬고 함께 해 준 교회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교회와 4.3으로 고통받은 제주 민중들과는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동안 교회 숫자는 늘었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토착 교회로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늘었다고 해도 육지에서 들어온 현재 제주 도민의 30% 사람들 일 거다. 원주민은 아마도 별로 기독교로 편입되지 않았을 것 같다. (확인 필요)
강정 마을 내에 해군기지 반대 이전부터 교회가 하나 있다. 그러나 해군기지 반대 운동과 강정 마을 사람들의 입장과 보호 차원에서 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완전히 분리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진짜 안타까운 것은 교회는 강정 마을을 지키고, 평화적 복음을 전하고, 온전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너무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자가 역사적 의식이 없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역사적 타이밍을 모를 수밖에 ㅠㅠ. 아. 참 진짜 바보. ㅠ 우리는 이런 바보짓을 안 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 공부가 필요해. 진짜로.
그러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선교지에 선교사들이 많은 교회를 개척한다. 그러나 선교사는 제주를 생각하며 선교적 교회는 어떤 교회여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70년 동안 제주도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던 것처럼. 그러나 제주도에서 제주 도민의 가장 큰 아픔, 갈등, 고통이었던 4.3에 대해 침묵, 방관 때로는 가해자가 되므로 교회가 교회로서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빛도 짠맛도 잃어버린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럴 때 개척자들, 평화 운동을 하는 개신교를 대표하는 송강호 박사의 삶을 보며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선교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을 통해 개척된 수많은 교회가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 성장 이데올로기와 편협되고, 왜곡된 교회론과 분열된 복음으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복음과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있다면 정말이지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선교지의 사회, 지역, 나라와 민족의 고통, 아픔에 대한 깊은 역사적 인식과 함께 더불어 고통을 나누고자 하는 공의와 정의에 뿌리내린 현장 속에 함께 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이 없이는 여전히 기독교는 주변 종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송강호 평화운동가의 삶을 보며 희망을 보았다. 제주 내 교회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제주 도민의 내적 치유가 작지만, 부분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느낌이다.
복음은 이런 것이야. 복음적 삶은 이런 평화를 만드는 삶이야. 두려움을 극복하고 민중의 깊은 두려움 속으로 같이 들어가는 것,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성령을 의지하고, 공동체가 되어 함께 거하는 것.
그렇지 이런 사람이 제자야, 그리고 제자 공동체가 되어야지 하는 뚜렷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겉만 번지러한 빈 깡통 같은 교회 건물로 남을래, 아니면 겉은 빈 깡통이지만 생명력을 가진 공동체로 남을래?
이들의 고통, 아픔, 깨어진 관계, 가난, 킬링필드의 상처, 정치 권력의 두려움에 우산이 되어야겠다는 마음 또 그런 이삭 공동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