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분이 길고 긴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홈페이지 상담신청란을 통해 파란만장한 사연을 보내 온 분의 사연을 읽으며
적혀있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심리상담을 통해 꼭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던 그녀는 최면치료에 관심이 많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기운이 하나도 없다.
집중을 있는대로 해야만 겨우 겨우 들리는 말이 조합이 될 정도로 기운이 없는 듯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딸을 둔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세에 시달려 삶을 놓아버리고 싶다고 했다.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기가 너무 힘들어 일단 상담센터까지 찾아오기를 부탁했더니
한참이나 망설이며 찾아 올 자신도 없으니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느냐고....
한참이나 그녀를 설득해서 약속한 그 날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표정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그녀,
웃지도, 화내지도 않은 그림같은 그녀는 심리검사를 하고 분석된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가늘게 고개만 끄덕일 뿐 별로 말도 없었다.
그녀의 괴로움이란
극성스러운 두 딸을 키우기가 너무 힘이 들고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에 대해 조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화가 치민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을 잃고 아이들에게 매질을 하고 폭언을 하고 집안 물건들을 내동댕이치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지만 도저히 그 수렁에서 벗어나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이 가라앉으면 후회스럽고 아이들 보기도 민망해지는데
요즘들어 두 아이들이 자신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이 느껴지고
작은딸은 밤마다 극심하게 이를 갈기 시작했는데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서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달리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표정이 없고 눈길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침묵같은 자세로 말을 했다.
그녀의 성장배경에 대해 물어보자
극성스럽고 욕심많은 어머니와 무심하고 소심하며 소박한 아버지 아래서 자라게 되었는데
조그마한 식당을 경영하던 엄마는 딸이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하는 인생을 살기를 희망하며
그 어떤 식당일도 시키지 않았으며 그녀는 결혼전까지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성장했다고 한다.
야망이 컸던 친정 엄마는 늘 '공부하라'는 말과 함께 성적에 대단히 민감해서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난리를 치르듯 심한 폭언과 매질을 하셨다고 한다.
그녀는 차라리 식당일을 하면서 마음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더 클 정도로
엄마에 대한 원망과 한이 컸지만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자신만 바라보는 엄마의 기대를 져버리는 것 또한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 늘 괴롭고 우울했다고 한다.
그녀는 박사학위과정을 마치고 여기 저기 대학을 다니며 시간강사를 했지만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친정엄마는 시간강사를 하는 딸이 안타깝고 못마땅해 수시로 질책을 하기도 한다고....
어린 딸들은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은 친정엄마가 도맡아 키워주셔서 감사하긴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는 늘 불안과 긴장, 그리고 아이들로 인해 자신의 일상이 뒤죽박죽 되는 것 같아
삶이 지루하고 혼란스럽고 짜증나고 화가 난다는 것이다.
심리검사 결과는 그녀가 우울증과 함께 잠재된 분노의 수치가 굉장히 높았으며
경계선 장애를 보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도 커 보였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지만 정작 자신은 좋은 아내가 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속앓이도 컸다. 그녀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친정 엄마의 모습을 자신이
그대로 닮아가고 있어서 미칠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녀는 맥없이 이어가는 대화 속에서 아이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언제나 눈물을 비쳤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 우리는 보다 심도 깊은 상담을 했다.
궁극적으로 그녀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그녀가 이루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그녀의 눈을 감기고 깊은 트랜스 상태로 유도하여
그녀 속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트라우마는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욕심이 많은 그녀는 엄마의 눈빛과 기대에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어린아이였다.
그녀의 상처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연약한 내면아이는 작은새처럼 공포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거의 10시간에 달하는 시간을 가지고 4차례의 만남을 통해 그러한 매듭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진정으로 어린 열살의 아이가 되어보는 과정에서 그녀는 많은 울음을 토했다.
역할극을 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놓쳤던 무수한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
그리고 엄마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기 시작했으며 희망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살아 온 모든 과정 속의 아픔과 상처들은 단단한 굳은살이 되어
이제는 그녀를 보호하고 상처로부터 아픔을 무디게 하고 울지 않게 할 수 있는 좋은 약으로 바뀐 것이다.
상담을 종료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상처로 인해 주변을 돌아볼 수 없었던 지난날에 대해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정리를 할 수 있어 의미있고 좋은 시간이었음에 감사했다.
그녀는 이제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 가 더욱 더 가깝고 친밀한 엄마의 역할에 자신감을 내비쳤으며
시간강사라는 일에 대한 자존감의 회복과 함께 삶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잘 그려나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녀의 내적 에너지가 더욱 더 풍성하게 분출되어 행복한 날들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