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데
2장. 영혼은 존재하는가, 에서 덜컥 멈춰버렸다
이원론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영혼이 있는 존재라고 한다 (다행히 저자는 이 자유의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검증하려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왜 철학으로 넘어가지 않고 심리명상의 길로 들어섰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고대 철인정치를 논하던 플라톤이나 초인 사상을 설파한 니체 등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높이사며, 철학적 인간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위치에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 인간들이 자유의지로 철학자의 반열에 오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역으로 기질적 습의 패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습의 로봇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가 그토록 강하다면 작심삼일이나 기타 수많은 인간들의 문제가 이처럼 끈질기게 우리 인류를 괴롭히지 않을 터이다. 자유의지로 우리의 욕망, 악습 등을 모두 다스리면 될터이니. 그러나 인간은 결코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바로 우리 모두 스스로의 기질적 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들이란 생각이다).
그렇기에 철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는 초인의 반열 혹은 심리명상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질적 습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순히 자유의지로 가능하다기보단 각고의 수행적 노력이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다. 같은 주제를 놓고도 내겐 철학보단 심리명상의 길이 훨씬 더 적절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첫댓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질적 습을 끊어버릴 정도로 수행적 노력을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왜 이리도 좌절을 하고 그래선지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나자신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