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2月 ☞영적 성숙의 달☜
삼상29:1-30:8절) 절묘한 타이밍
아무리 사나운 맹수라 하더라도 인간이 쳐놓은 덫에 걸리면, 꼼짝 할 수 없습니다. 즉 철사나 쇠로 만든 덫을 끊어버리고 달아나고 싶어도 도저히 이빨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맹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힘이 점점 빠지고, 나중에는 죽게 됩니다. 맹수가 죽으면, 밀렵꾼들이 와서 그 가죽을 벗겨가든지, 이빨을 뽑아가든지 하는 것입니다.
이때 그런 동물을 구조하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동물은 자기를 덫에서 구해주러 가는데도 길길이 날뛰면서 물려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을 구조하는 사람들은 큰 고리 같은 것을 야생동물의 목을 걸어 꼼짝 못하게 만들고, 옳아 매던 올무를 펀치 같은 것으로 자른 후에 그 동물을 풀어줘서 달아나게 합니다.
또 아무리 힘이 쎈 코끼리라 하더라도 늪이나 구덩이에 빠지면, 자기 힘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수십 명의 사람이 와서 코끼리를 구하기 위하여 땅을 파기도 하고, 그 몸에 줄을 걸어서 당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코끼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트럭이나 수십 명의 사람이 동원되어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국 구조하게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기뻐하고, 코끼리는 자기 갈 길을 가게 됩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다 보면, 마귀의 덫에 걸린 것처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있다 보면, 적(敵)의 손에 죽든지, 아니면 죄를 다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산 위에 적(敵)이 있고, 산 밑에도 적(敵)이 있어서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하므로 꼼짝하지 못하고, 잡히거나 죽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산 중간에 도망칠 수도 있는 길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돌 굴(窟)일 수도 있고,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일 수도 있는데, 하나님은 그런 길을 통하여 우리를 도망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가 바로 그랬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쳐서 자기 나름대로는 안전하게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블레셋 전체와 이스라엘이 전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가장 우려했던 일이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무슨 핑계를 대서 블레셋의 편에 서서 싸우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나게 되어 죽임당할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블레셋 편에서 이스라엘을 배반하고, 그 백성을 죽일 수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즉 다윗은 사탄(詐誕)의 덫에 걸리고, 늪에 빠진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무서운 덫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Ⅰ.다윗이 전쟁에서 빠짐
그동안 다윗을 부하로 데리고 있던 아기스는 이번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다윗을 이용해서 이스라엘을 쳐부수고, 큰 명성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기스는 다윗에게 *이번 전쟁에서 나와 같이 나가 싸워서 큰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이때 다윗은 이 전쟁에서 빠져야 하겠는데, 도저히 빠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기스에게 *이번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최선을 다해 싸워서 전공을 세우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블레셋으로 도망친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선지자를 보내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고, 또 두 번이나 사울 왕의 목숨을 살려주게 하신 것은 앞으로 블레셋이 대대적으로 공격할 것을 알고, 그때 다윗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 왕의 관계가 원수였든지, 아니었든지, 간에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할 때, 다윗이 또 나서서 옛날 골리앗을 죽일 때처럼 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을 것이고, 그렇게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전투에서 하나님은 사울 왕을 죽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 전투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友情)이 다시 한 번 큰 승리로 나타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실제로 다윗은 블레셋 가드 왕의 부하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장 어렵고. 위험할 때, 전혀 이스라엘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윗은 블레셋의 올무에 걸려서 전쟁터에 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빠질 수도 없는 처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때 다윗은 마음속으로 막상 전쟁터에 가서는 자신의 방향을 바꾸어서 블레셋과 싸우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윗도 죽고, 사울 왕도 죽고, 다윗의 가족도 죽고, 요나단도 죽고, 모두 다 죽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흥의 불은 이미 꺼졌고 다윗은 그 올무에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올무는 다윗 스스로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올무에 걸려들고 싶어서 걸려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단지 인간의 머리를 의지하고,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섰는데, 알고 보니까 올무에 걸려든 것입니다. 사람이나. 맹수나. 한번 올무에 걸려든 후에는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위기에 빠진 다윗을 도우셔서 그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법은 바로 다윗에 대한 블레셋 장군들의 의심(疑心)이었습니다.
블레셋 지도자들은 각 성읍에서 온 군대를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점호(點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블레셋 군대 안에 자신들의 원수인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29:2-3절)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이 그 수많은 군대 중에서 다윗은 보지 못하고 넘어갔다면, 다윗은 꼼짝하지 못하고, 블레셋 편에서 싸워야 했을 텐데, 블레셋 방백 중에서 다윗을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블레셋에는 이스라엘에서 도망쳐서 블레셋 군대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블레셋 군대에서 도망쳐서 끝까지 다윗에게 충성했던 블레셋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수령들에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연히 가드 왕의 군대를 점검하다가 그중에서 다윗이 그 안에 포함되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왕들은 아기스에게 *이 히브리인 다윗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기스는 *다윗이 원래 사울 왕의 신하였지만 나에게 맹세한 후에는 몇 년 몇 달 동안 한 번도 배반한 일 없이 충성되게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블레셋 왕들이나 장군들의 불신이 폭발했습니다. 그들은 아기스에게 *당신이 아무리 바보라 해도 어떻게 히브리인들의 영웅(英雄)을 자기 부하로 믿으려고 하느냐?*고 하면서 엄청난 불만(不滿)을 쏟아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블레셋 왕이나 장군들은 *다윗을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안심하고 전쟁을 할 수 있다*고 항의했습니다.
29:4-5절)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하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블레셋 왕들과 장군들은 아기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엄청나게 화를 내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블레셋 왕들과 장군들을 벌벌 떨게 하고, 이를 갈게 만들었던 노래가 바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 이로다*라는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만 부르면, 블레셋 사람들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힘이 빠져서 싸울 자신감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블레셋의 최고의 장군, 요즘 말로 치면 최신 병기라고 할 수 있는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간단하게 해치운 다윗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블레셋 왕들과 장군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보물(寶物)이 블레셋으로 저절로 굴러 들어올 일이 없고, 결국 전쟁터에서 우리의 적(敵)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만약 다윗이 사울 왕과 사이가 나쁘다면, 이번에 우리를 죽임으로 화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다른 블레셋 왕들과 장군들이 본 것은 정확했습니다.
이미 다윗은 전쟁터에서 아기스와 블레셋을 배반하고, 이스라엘 편에서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블레셋 왕들과 장군들은 벌써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윗과 싸울 시간이 없으니까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니까 아기스도 어쩔 수 없어서 다윗에게 *다른 왕들과 장군들이 워낙 너를 의심하니까 어쩔 수 없다. 너는 나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이번 전쟁에는 참가하지 못하겠다. 내일 날이 밝으면, 네가 있던 곳으로 속히 떠나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새벽에 다윗과 그의 부하 6백 명은 일찍 시글락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모든 블레셋 왕들과 군대는 이스라엘과 싸우러 이스라엘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다윗의 비애(悲哀)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큰 전쟁을 하는데, 자기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그는 올무에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블레셋 왕들과 장군들이 다윗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해서 일단 그 전쟁에서 빠지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의심(疑心)을 당하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불신(不信)당할 때는 기분이 몹시 나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윗사람에게 불신을 당하고. 의심을 받는 것이 올무에서 벗어나는 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악(惡)한 사람이 나를 미워하거나 불신(不信)한다고 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불신을 당해야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Ⅱ.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싸우려고 출동한 사이에 자기의 가족들이 있는 시글락이 공격을 당하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윗이 없는 틈을 타서 아말렉 족속이라는 광야의 도둑 떼들이 다윗이 사는 시글락을 공격해서 집은 불사르고, 여인들과 아이들을 모두 포로로 잡고, 가축들도 모두 약탈해서 사라졌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전쟁을 통해 블레셋의 다른 왕(王)들이나 장군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블레셋의 모든 왕(王)이나 장군들에게 불신을 받았다는 점에서 기분이 나빴을 수 있습니다. 즉 앞으로 다윗이 블레셋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주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번 전쟁에서는 운(運)이 좋아서 빠졌지만,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면 왕(王)들은 다윗을 체포하려고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다윗은 또 어느 곳으로 도망가야 하겠습니까? 아마 그때는 아기스가 다윗을 돕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번 전쟁이 끝나기 전에 자기는 또 블레셋 땅을 떠나서 어디론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막막했습니다. 도대체 이 넓은 세상에서 어디로 도망을 치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없는 동안 다윗이나 그의 일행들의 가족에게는 엄청난 위험이 닥쳐오고 있었습니다.
30:1-2절)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과 그의 군데가 없는 사이에 아말렉 족속이 시글락을 쳐들어와서 집을 불 지르고, 여인과 아이들과 나이든 사람들을 몽땅 다 포로로 잡아간 것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용사 육백 명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까 집은 불에 타서 모두 시커먼 재가 되어 있었고, 그동안 모았던 양떼나 소떼나 낙타가 하나도 없이 다 사라져버렸고, 여인과 아이들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다 붙들려가고 말았습니다.
30:3-4절)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과 그의 용사들은 어려운 중에서도 자신의 아내나 아이들이나 가축을 보면서 용기 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블레셋 군대에 참가하려고 한 것도 가족과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집에 돌아와 보니, 이런 모든 소망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아내들을 몽땅 도둑맞았습니다.
아마 아말렉 사람들은 여자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먹기 위해서 모두 산 채로 잡아갔을 것입니다. 또 다윗의 용사들이 가지고 있던 양이나 낙타는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싹 다 잡아갔습니다.
다윗과 그의 용사들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이 참상(慘狀)을 보고는 얼마나 땅을 치면서 통곡했던지, 나중에는 모두 울 힘조차도 없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망명(亡命)정책은 완전히 망한 것으로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따라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던 사람들도 모두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고, 재산을 모두 다 잃고,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몰라서 그렇지. 이것은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timing)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고집스럽게 생각했던 것처럼, 만일 다윗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했더라면, 다윗과 그의 용사들은 아내나 아이들을 절대로 도로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날짜가 너무 지나가면, 여자들은 모두 강간(强姦)당하고, 그 다음에는 노예로 멀리 팔려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있는 잔해(殘骸)를 조사해보니까 놀랍게도 시체(屍體)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다윗과 용사의 가족이 모두 다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너무 눈앞에 보이는 결과는 비참했기 때문에 다윗과 용사들은 땅을 치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더 이상 울 힘이 없을 정도로 기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두 소망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었던 이 사람들은 모두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너무 절망한 나머지. 모두 *돌을 들어 다윗을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제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다윗부터 죽이고. *우리 모두 다 죽어버리자*는 뜻이었습니다.
Ⅲ.다윗의 용기
다윗도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잃어버리고. 통곡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셨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의 마음속에는 *셀라하마느곳*이 살아있었습니다.
악한 사탄(詐誕)이 아무리 자기와 가족을 죽이려고 해도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다윗을 돌로 쳐 죽이고, 자기들도 자살하려고 할 때, 다윗은 *잠깐 멈추시오!*라고 하면서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30:6절)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이렇게 절망적일 때,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절대로 이런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끝내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용사들을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여러분이 나를 죽이고 스스로 죽으면 슬픔은 그것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우리 인생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은 곧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제외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다윗과 그의 육백 명이 전쟁터에 끌려갔더라면, 아마 그 시간은 최소한 몇 달은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돌아왔다는 것은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집은 모두 불타고 여자나 아이나 가축은 강도질 당했지만, 죽은 사람의 시체(屍體)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아직 전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단지 문제는 이 넓은 천지 어디에서 그 가족을 찾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때 다윗에게는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이 가지고 온 에봇이 있었습니다. 이 제사장의 에봇은 하나님의 간단한 답을 알 수 있도록 마련된 것입니다.
다윗은 아비아달에게 *제사장의 에봇을 가져오라*고 해서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가족과 가축을 모두 도둑질 당했습니다. 과연 살아있으며. 우리가 찾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에봇은 *예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넓은 천지 어디에서 찾을 것이며, 가족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다윗과 그 육백 명의 용사들이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소망이 다 사라지고. 망한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서 잃어버린 아내를 찾고, 자식을 찾으며, 내 재산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제사장의 에봇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길을 정확하게 인도하셔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 찾게 하실 것입니다. 즉 우리의 잃어버린 가족, 잃어버린 재산, 잃어버린 명예,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젊음을 모두 다 찾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런 확신을 주셨습니다.
30:8절)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이런 확신과 응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402장 *나의 반석 나의 방패*
역사서
☞ 자발적인 신청을 수시(隨時)로 받습니다.
교육 심리학적 방법
※주인식이 아닌. 유대인 교육방법으로 사고(思考)를 끌어내어 고백하게 하는 상담식이므로 소통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연구원 설립때까지 카톡 화상으로 실시).
▣리더(leader)는 1단계 *필수과목* 자격증을 취득해야 공동체가 안전하고, 직분도 반드시 *필수과목*을 필하고 *세례를 받아야*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전 천주교인 포함).
딤후3:13-14절)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