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을 분별하라 고전 12장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 2장에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같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함께 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정욕은 다 지나가는 것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같은 세상 것을 구하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눈에 있는 들보를 뺀 후에야 남의 눈의 티를 빼낼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약 우리 자신이 말씀위에 바르게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악령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는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과거에 대한 확실한 회개가 없다면 기본적으로 우리는 영을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혼탁하게 되는 이유는 진정한 회개를 모르는 사역자들이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추구하게 하고 정욕을 구하게 가르칩니다. 성경이 반대하는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있는 신학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세상 것들을 사랑하고 추구하면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불의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이미 고전 6장 9절과 10절에서 경고한 바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로마서 8장 13절입니다.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회개는 죄를 고백하는 것만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죄와 싸워야만 죄를 끊는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죄를 끊기 위해 우리는 먼저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술취하는 자와 사기꾼과 우상숭배자와 동성애자와 간음하는 자와 도적질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한다면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죄와 싸우려 하지도 않고 싸우다가도 곧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영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주님으로 섬기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욕과 탐욕을 따르고 자신을 섬기게 하는 것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하여 성령의 은사들을 나눠주시고 주님의 뜻을 행하여 나아가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고전 12장에서 말하는 성령의 역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별해야 합니다.
첫째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성령의 은사로 봉사하며 덕을 세우고 함께 주님의 뜻을 이 땅에 펼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삶은 자신이 주님이 되었고 교회에 덕을 세우기보단 정욕적이고 이기주의로 분열되어 갑니다. 이 땅의 교회들도 주님의 뜻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뜻과 업적을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이것은 우리의 열매가 악령의 역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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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영분별이 매우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악령의 역사를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의 역사를 따르고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영분별은 무엇으로 하는 것입니까? 12장 3절 말씀입니다.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첫째로 영분별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나와 예수님 사이가 종과 주님으로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깨드리고 인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예수님에 대하여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자로 증거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단은 주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종과 주님의 사이를 불분명하게 만듭니다. 입술로는 주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정욕이 주가 되어 살도록 만듭니다. 내가 주님인지 예수님이 주님인지 불분명한 삶을 살도록 미혹합니다.
사단은 주님과 종의 관계인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훼방하는 자입니다. 결국 악령의 역사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섬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종'이라는 단어는 둘로스입니다. 둘로스는 헬라 시대에 주인이 법적으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일을 시킬 수 있는 최하층 노예를 가리킬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즉, 둘로스는 아무런 지위도 권리도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고, 싫든 좋든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둘로스는 천하고 비참한 노예를 말합니다. 이것은 결코 모호하거나 불분명한 단어가 아닙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없고 다른 사람을 위한 노동으로만 그 정체성이 부여되는 사람입니다. 종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섬기는 자가 아니라 더 높은 권위의 통제와 지시에 절대적,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자, 곧 노예입니다.
종의 반대 개념인 '주'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퀴리오스'입니다. 이 단어는 능력과 소유권과 절대적 명령권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즉 누군가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가진 주인, 곧 노예 주인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어느 날 나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 의 놀라운 사랑 앞에서 눈물로 회개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기꺼이 나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이제는 그분의 종이 되어 살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의 의미 입니다.
영분별은 예수님이 나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는가? 그분을 따르는 종의 삶을 사는 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주님과 종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십니까? 나는 기꺼이 그분의 종으로써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그분을 따르고 있습니까? 악령의 역사에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악령의 역사는 예수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입술로는 예수가 주님인척 하지만 삶과 행동은 예수님이 주님이 아닙니다.
둘째로 성령의 역사에는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와 직분들이 나타납니다.
때로는 성령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 교회안에서 은사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의 역사에는 다양한 은사와 직분이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와 직분이 나타난다는 것은 성령님이 역사 하신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성령의 역사는 당연히 교회안에 은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은 세상 경험과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 할 것은 악령의 역사는 성령의 은사를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더라도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 우리는 한번 더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번째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가로 악령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7절에서 성령의 은사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만약 우리 주위에 은사를 가지고 공동제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에 해를 끼치거나 돈이나 개인의 유익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를 멀리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은사는 종으로 서로가 서로를 섬기라고 주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잘못된 은사자들은 계급처럼 일반 성도들을 무시하고 왕처럼 군림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이런 분들도 가까이 하지 마시고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성령의 은사는 주님의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섬기는 종으로 일하는 목적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도들을 섬기는 예수님의 종으로 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사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종으로 섬기며 상호 보완적입니다.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서로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성령의 역사는 교회의 유익을 생각하며 한 몸 의식을 가지고 서로의 은사와 직분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령의 역사는 서로의 은사를 판단하고 다른 직분을 존중하지 않으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역사입니다.
자신의 은사만 소중하고 다른 은사를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나 자기중심적인 은사의 사용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성령의 은사로 직분을 감당하며 교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런 일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배워가고 닮아가는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살고 있습니까? 복음을 위해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을 따르며 살고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고 나는 그분의 종이 되는 삶속에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는 그분의 종이 되어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그분의 교회를 위해 성령의 은사로 섬기고 덕을 세우며 살아갑니다.
종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자입니다.
종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합니다.
종은 주님께서 주신 은사와 지혜를 가지고 일합니다
종은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