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시(21) - 단양으로 부임하다
퇴계는 중앙 정계가 당쟁으로 혼탁해지자 이를 피하려 지방으로 내려가기를 원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시에 이렇게 말했다.
“어떤 늙은 선비가 청송부사가 되어 스스로 청송 백학이라 호 하였다. 내 일찍 청송부사 되기를 구했으나 얻지 못하고 단산(단양)을 얻게 되었다.”
사가독설를 함께 하던 동창생이 열어 준 전별잔치에서 지은 시이다.
赴丹山留贈(부단산유증)
단양으로 부임하면서 독서당 전별장에서 짓다
十載沈疴 怪素餐 십재침아 괴소찬
洪恩猶得 郡附懸 홍은유득 군부현
靑松白鶴 雖無分 청송백학 수무분
碧水丹山 信有緣 벽수단산 신유연
北闕戀懷 分燭夜 북궐연회 분촉야
東湖離思 賞梅天 동호이사 상매천
撫摩彫瘵 疲心力 무마조채 피심력
鈴閣飜應 憶故田 영각번응 억고전
贈(증) - 주다 疴(아) 병 懸(현) - 달다
信 - 정말로 瘵(채) -- 병들다 應 - 응당, 마땅히
연회 - 그리워하다
십년 동안 깊은 병 앓으면서 봉록만 받는 것 부끄러운데
바다 같은 은혜 이 ㅂ어 도리어 군수자리 얻게 되었네
청송의 백학과는 본래 연분이 없으니
짙푸른 물 많은 단양과는 정말 인연 있다네
북쪽 궁궐 그리워 질 때는 촛불을 내리시던 밤 생각나고
독서당 떠나려 하니 매화 감상하던 일 생각나네
시든 백성 쓰다듬노라면 심신이 다 피로해질테니
동헌에서인들 도리어 옛 터전 생각나지 않으랴?
단양 군수가 된 것은 정월이다. 이 해 2월에 경남 단성에 있는 자식이 없던 외종조부 집에 들어가 수양손 노릇을 하던 둘째 아들 채가 결혼한 지 6년 만에 청상과부(둘째 며느리)를 남겨두고 먼저 죽는다.
사적으로는 이런 불운을 당하였지만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지방 수령 생활에 어느 만큼은 만족하였다고 한다. 처가살이를 하는 맏 아들 준 내외와 창원에서 온 소실 부인을 불러오고, 맏손자(완도)를 데려다 효경을 가르치기도 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제사를 임지에서 모시면서 살아계실 때 관리생활을 하느라 봉양하지 못한 한을 풀었다고 한다.
퇴계는 단양의 아름다운 경치를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